佛·獨 가상화폐 규제안 나온다…내달 G20 논의 ‘촉각’

  • 등록 2018-02-16 오후 3:00:00

    수정 2018-02-16 오후 3:00:00

[이데일리 박종오 기자] 다음달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회의에서 프랑스와 독일 정부가 공동으로 가상 화폐(암호 화폐) 규제안을 제안하리라고 국책 연구기관이 전망했다. 가상 화폐 규제의 국제 공조를 위한 것으로 향후 시장에 미칠 영향에 관심이 쏠린다.

佛·獨, 내달 G20서 가상화폐 규제안 공동 제안

한 시민이 지난 7일 서울 중구 명동의 가상 화폐 거래소 벽면에 설치된 가상 화폐 시세 전광판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최근 발표한 ‘가상 통화 관련 주요국의 정책 현황과 시사점’ 보고서에서 “프랑스와 독일 정부가 오는 3월 개최할 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에서 공동으로 규제안을 제안할 예정”이라며 “우리 정부도 관련 논의에 미리 참여하고 우리나라 입장을 적극적으로 반영시킬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G20 회의는 다음달 19~20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개최한다. 주요 정책 공조 의제를 사전 점검하기 위한 실무 그룹 회의는 이미 지난 1월 24~25일 시동을 건 상태다. 홍남기 국무조정실장도 지난 14일 “가상 통화는 국경이 없는 문제로 최근 G20을 중심으로 국제적 논의가 시작되고 있다”며 “우리 정부도 적극적으로 참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개별국 대응으론 가상화폐 못 잡아”

국제 사회가 가상 화폐 공동 규제에 관심을 보이는 것은 개별 국가의 정책 대응만으로 시장을 적절히 통제하기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연구원은 “가상 통화의 익명성과 국경 간 거래의 수월성으로 인해 개별 국가의 가상 통화 관련 정책이 실효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국제 공조가 필수적”이라며 “주요국 정책 당국이 가상 통화의 익명성을 이용한 자금 세탁 위험과 버블(거품) 발생에 따른 투기 가능성을 인식하고 국제 공조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금융 당국 고위 관계자도 “한쪽이 규제로 막히면 가상 화폐 취급 업자들이 밖으로 나가 다른 시장을 건드리는 등 전 지구가 돌아가면서 몸살을 앓는 것”이라며 “결국 G20 등에서 국제적으로 규제를 강화하는 공조 방향을 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지난해 1월 기준 세계 비트코인 거래량의 95%(코인데스크 집계 기준)를 차지했던 중국에서 거래소를 전면 폐쇄(작년 7월)하자 일본이 비트코인 거래량 세계 1위 국가로 올라선 것이 대표적이다. 한 나라에서 거래를 옥죄면 다른 나라로 거래가 옮겨가는 ‘풍선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다.

이에 따라 브뤼노 르메르 프랑스 재무장관은 앞서 작년 12월 18일 “가상 화폐가 자금 세탁, 마약 거래, 테러 자금 지원 들 불법적인 활동을 감출 수 있다”고 지적하며 올해 G20 회의에서 가상 화폐 공동 규제 대응을 제안했다. 독일과 이탈리아 정부도 프랑스 입장에 지지를 표명했다. 연구원은 “유럽연합(EU)의 경우 자금 세탁 및 범죄 자금 융통 방지를 위한 공통 지침을 가상 통화 거래소 및 전자 지갑 업체에도 적용하는 내용 등을 포함한 개정안이 현재 입법 과정에 있다”며 “개정안은 가상 통화 거래소와 전자 지갑 업체의 등록을 의무화하는 방안도 포함했다”고 설명했다.

유럽 가상화폐 거래 ‘잠잠’…한·미·일이 ‘빅3’

홍남기 국무조정실장이 지난 14일 정부의 가상 화폐 규제에 반대하는 청와대 인터넷 홈페이지 청원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다만 프랑스, 독일 등 유럽의 가상 화폐 시장은 한·미·일 3개국보다 훨씬 잠잠한 편이다. 따라서 가상 화폐 규제 국제 공조에는 유럽 당국보다 버블 발생 우려 등이 현실로 표면화한 한·미·일 3국의 입장이 더 중요하다는 관측도 나온다. 실제로 비트코인의 경우 최대 유로화 거래소인 크라켄의 하루 거래 규모가 1억7000만 달러 수준으로 달러화·엔화·원화 등에 비교해 현저히 낮다고 연구원은 지적했다.

다른 나라의 가상 화폐 제도를 살펴보기 위해 국외 출장을 다녀온 기획재정부의 한 관계자는 “독일 등 유럽은 가상 화폐 거래를 향한 사회적 관심이 생각보다 매우 낮았다”면서 “정부의 가상 화폐 정책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른바 ‘빅3’ 국가는 세계적으로 한국과 미국, 일본 정도”라고 귀띔했다.

현재 한·미·일 정책 당국의 가상 화폐 관련 정책은 나라별로 제각각이다. 미국 연방 정부는 현재까지 가상 화폐를 규제하기 위한 별도 법안을 제정하거나 시행령을 마련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기존 법 범위에서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한국, 미·일보다 정책 대응 늦어

지난달 30일 서울 중구 NH농협은행 본점에 가상 화폐 거래 실명 거래 절차를 설명하는 안내문이 놓여 있다. (사진-연합뉴스)


미연방 정부 기관인 금융범죄단속국(FinCEN)은 지난 2013년 3월 자금세탁방지법(Bank Secrecy Act·BSA)의 규제·감시 대상에 가상 통화(Virtual Currency)를 포함하는 내용의 지침서를 발행했다. 미 국세청(IRS)도 2014년 3월 지침서를 통해 가상 화폐를 자산으로 보고 소유 시점을 기준으로 공정시장 가치를 적용해 이를 전체 소득에 합쳐 신고하도록 했다. 매수·매도 과정에서 발생하는 차익에 양도소득세를 부과하겠다는 것이다. 작년 말에는 가상 화폐와 법정 통화 간 거래가 아닌 가상 화폐끼리의 거래도 양도세 과세 대상에 포함하는 내용의 세제 개혁안이 통과됐다.

일본의 경우 2014년부터 가상 화폐 규제 도입을 검토해 지난해 4월부터 이른바 ‘가상통화법’이 시행에 들어갔다. 가상 화폐를 ‘재산 가치를 가진 결제 수단’으로 인정하고 가상 화폐 교환 업자에게 거래소 등록, 이용자 정보 제공, 이용자 재산 및 업체 자산 분별 관리, 거래 시 인증 요구 등 의무를 부여한 것이 핵심이다. 또 작년 7월부터 가상 화폐 구매·거래 시 소비세(세율 8%)를 면제하고, 이달 중순부터 가상 화폐 투자 수익을 신고받아 수익 규모에 따라 15~55% 세율로 세금을 물리기로 했다.

한국 정부 대응은 미국, 일본보다 많이 늦은 편이다. 지난 2016년 11월 ‘디지털 화폐 태스크포스(TF) 회의를 처음 가동하며 비트코인 등 디지털 화폐 법적 정의, 거래소 등록제, 자금 세탁 방지, 외환 규제 등의 논의에 착수했지만, 이후 진척이 없었기 때문이다. 정부는 작년 9월 ‘가상 통화 관계기관 합동 TF’를 재가동해 올해 1월 말부터 가상 화폐 거래 실명제, 자금 세탁 방지 가이드라인 등을 본격적으로 시행했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대통령 탄핵과 새 정부 출범 등으로 정책 추진 일정이 약간 미뤄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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