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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국배 기자] 2010년 5월 22일. 프로그래머 라즐로 헨예츠는 암호화폐인 비트코인 1만개로 피자 두 판을 사는데 성공한다. 당시 시세론 약 40달러였다. 이 거래는 비트코인으로 구매가 이뤄진 첫 사례가 됐다. 이후 암호화폐 지지자들은 이날을 ‘비트코인 피자데이’로 기념하고 있다. 그로부터 11년이 지난 오늘, 비트코인의 위상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투자 자산으로 자리 잡아…화폐 역할은 ‘글쎄’
비트코인은 2008년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가명을 쓰는 인물이 제안해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계 경제가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어려움을 겪던 시기다. 금융기관의 도덕적 해이가 판을 치자, 은행이 필요없는 암호화폐가 등장한 셈이다.
그러나 비트코인이 나온지 12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효용성이 없다는 의구심도 많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는 지난 21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에 기고한 칼럼에서 “투기의 수단 외에 암호화폐가 사용되는 곳은 돈 세탁이나 해커의 금품 요구와 같은 불법적인 분야 뿐”이라고 꼬집었다. 비트코인이 아직도 화폐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럼에도 전문가들은 ‘디지털 금’이라 불리고 있는 비트코인이 새로운 투자 자산으로 이미 자리잡고 있다고 평가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비트코인은) 화폐의 지위와는 거리감이 있다”면서도 “하지만 대부분의 알트코인이 투자자산 가치를 확보하고 있지 못한 반면 비트코인은 (투자 자산으로서) 꽤 인식이 정립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비트코인 가격은 최근엔 많이 떨어지긴 했으나, 기관투자자들이 진입하며 작년보다 많이 오른 상태다. 김서준 해시드 대표는 “자기 자산을 지키거나 증식하는 수단으로 돈을 무언가로 바꿔야 하는데, 그런 부분에 있어 비트코인은 중앙은행이 함부로 개수를 늘려버릴 수 없는 ‘하드 에셋(hard asset)’으로 이해되고 있다”고 말했다. 자산 속성이 강하다는 뜻이다.
다만 화폐 역할에 대해선 회의적인 시각이 나온다. 가격 변동성이 큰 데다 중앙은행이 독점해온 화폐 발권력에 도전할수록 견제가 심해질 수 있어서다. 오히려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디지털 화폐(CBDC)가 대체 가능성이 크다. 황 위원은 “화폐가 되려면 비트코인을 통한 상거래가 활발히 이뤄지고, 가치가 안정적으로 움직여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못하다”며 “또 달러 패권에 도전한다면 정부와 중앙은행의 반발도 심할 것”이라고 했다.
시가총액 2위 암호화폐인 이더리움의 쓰임새가 늘어나고 있지만, 비트코인을 대체할 가능성도 적다. 목적이 달라서다. 이더리움은 앱스토어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는 플랫폼 기능을 갖고 있다. 대체 불가능 토큰(NFT), 디파이(탈중앙화 금융) 등이 모두 이러디움 위에서 구현된다. 반면 비트코인은 대안 화폐로 등장했지만, 금과 같은 자산적 성격이 커져 버렸다. 가장 오래된 암호화폐이다보니 가격을 떠나 안정적으로 여겨진다. 금보다 반짝거리는 금속이 있다고 금보다 낫다고 인정하진 않는다는 것이다.
표철민 체인파트너스 대표는 “금이 다른 귀금속보다 딱히 기능이 많아서 금인 건 아니다”라며 “선물, 옵션 등 파생 시장이 커져야 기초 자산(비트코인)의 변동성이 떨어지는 것인데, 그때까진 가격이 출렁이겠지만 파생 시장의 성장으로 결국 변동성도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처럼) 존재 목적을 어느 정도 증명한 암호화폐는 5년, 10년 뒤에도 살아남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승주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도 “시장에서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건 확장성이 큰 이더리움이 될 것”이라면서도 “비트코인은 암호화폐 시장의 기축 통화 역할을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