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코인거래소 숫자의 딜레마

거래소 숫자 줄이는 게 능사 아냐…자칫 독과점 방조
"특정 거래소 배불리고, 소비자 권익 침해 소지 있어"
은행이 책임 모두 떠안는 구조에선 인가받는 거래소 나오기 힘들어
금융위 현장 컨설팅 진행, '명분쌓기' 불과
  • 등록 2021-06-13 오후 1:37:42

    수정 2021-06-13 오후 9:51:27

[이데일리 김국배 기자]
김국배 IT과학부 기자
“현재 상황이라면 은행 실명 계좌를 보유한 4개 암호화폐 거래소 정도만 영업권이 보장되고, 소비자 권익은 침해될 소지가 큽니다”. 암호화폐 전문가인 한 변호사의 말이다.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 유예기간 종료(9월 24일)가 약 100일 앞으로 다가왔다. 벌써부터 업계에선 “특금법 이후 살아남는 거래소가 많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사업자 신고의 핵심요건인 실명 계좌를 내줘야 할 은행들은 암호화폐를 화폐나 금융상품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금융당국의 눈치만 보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특금법이 시행된 지 석 달이 다 돼 가지만 아직 사업자 신고를 한 거래소는 단 한 곳도 없다.

최근 금융위원회가 거래소들과 만나 사업추진계획서에 반영할 권고사항을 안내하며 ‘핀셋 검증’을 예고하자, 4개 거래소 외 한 곳 정도만 더 살아남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물론 애초에 역량이 부족한 거래소들은 이참에 정리되는 게 투자자 보호에는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업계나 법조계에선 거래소 수를 무조건 최소한으로 유지하는 게 능사는 아니라는 말도 나온다. 자칫 독과점 시장에서 한 두 개 거래소의 배만 불려주는 일이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암호화폐 광풍에 따른 부작용에 거래소를 모두 없애야 한다는 과격한 발상도 당연히 현실적이지 않다. 국내 거래소가 없어진다고 투자자들이 사라지지 않는다. 바이낸스, 코인베이스 같은 해외 거래소로 이동할 뿐이다. ‘풍선 효과’만 나타날 거라는 얘기다. 거래소를 크게 늘리기도 어렵지만, 마냥 줄이는 것도 해법은 아닐 수 있는 셈이다. 암호화폐 거래소 숫자의 딜레마다.

[이데일리 김정훈 기자]


당장은 거래소가 늘어나기 어렵더라도, 중요한 건 적어도 새로운 사업자가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구조는 만들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은행이 거래소 문제의 책임을 모두 떠안는 듯한 현재 구조로는 실명 계좌를 내주는 데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금융위가 14일 신청한 거래소들을 대상으로 실태를 점검하고, 사업자 신고 보완 사항 등을 안내해주는 현장 컨설팅에 나선다고 하지만 실명 계좌 발급과 연계되는 것도 아니다. 금융위의 행보가 ‘명분쌓기’에 불과하단 생각이 드는 이유다.

거래소들도 떨어진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지난 11일 업비트는 5개의 코인을 원화마켓에서 제거하고, 25개 달하는 코인을 한꺼번에 투자 유의종목으로 지정한다고 밝혔다. 업비트의 내부 기준에 미달한다는 이유다. 업비트 뿐 아니라 다른 거래소들도 서둘러 코인 정리에 나서고 있다. 하나같이 ‘투자자 보호를 위한 조치’라고 하지만, 특금법이 시행되고 나서야 활발해진 자정 작용 같아 뒷맛이 개운치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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