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믹스릴러 ‘삼도봉 美스토리’

“다 유에스에이 탓이여” 웃음으로 풀어놓는 농촌현실의 고단함
  • 등록 2009-02-10 오후 12:00:00

    수정 2009-02-10 오후 12:00:00

[경향닷컴 제공] “인생이 먼데? 엊그저께 맹키로 어제를 살고 어제 맹키로 오늘을 사는 거가 인생이가? 오늘보다 나은 내일, 내일보다 나은 모레. 이기 사는 거 아이가. 그란데 내는 엊그제보다 어제가 더 몬하고 어제보다 오늘이 더 몬하고 오늘보다 내일이 더 몬하고….” 한 농부의 푸념이 예사롭지 않다. 곡물창고에서 일어난 방화살인 사건.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 4명의 농부는 저마다 농촌현실의 고단함을 4인4색으로 쏟아낸다.

‘미국쌀 수입 반대’ ‘태풍 피해보상’ ‘농촌총각 국제사기결혼’ ‘농어민 융자’ 등등. 그런데 충청·경상·전라·강원도의 걸쭉한 사투리로 버무려진 대사와 엉뚱한 상황 전개로 웃음이 난다. 적나라한 농촌현실을 소재로 대학로에 등장한 코믹스릴러 <삼도봉 美스토리> 얘기다. 최근 정치·사회 세태를 풍자한 연극이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농촌현실 풍자로 가세한 작품이다.

경상·전라·충청도의 경계가 맞닿은 촌동네 삼도봉. 이곳에 ‘미국산 양곡창고’가 들어섰다. 어느날 이곳에서 방화살인 사건이 일어나고 마침 현장에 있던 4명의 농부는 취조실에 불려왔다. 자신들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상황재연에 나선 노상술(충청)과 갈필용(전라), 배일천(경상), 김창출(강원). 이들이 한밤중에 양곡창고를 찾은 사연은 무엇일까.

홀어머니와 사는 배일천. 장가를 가기 위해 결혼상담소를 통해 베트남 처녀와 선을 봤으나 농촌총각을 전문으로 하는 ‘국내산 꽃뱀’에게 잘못 걸려 돈만 날렸다. 어머니와의 다툼 끝에 분풀이 겸 창고를 찾은 것이다. 수입쌀 부대를 노려보고선 외친다. “이기 다 니 유에스에이! 니들 꼬라지 때문 아이가. 느들 땅에서 난 것은 느들 땅에서 처묵어야 되는 거 아이가. 와 우리 밥그릇을 들었다놨다 지랄이가 지랄이.”

또다른 남자 노상술은 태풍에 날아간 지붕을 보상받으려다 30년간 살아온 집이 무허가라며 도리어 철거명령을 받은 터다. 태풍이 불어닥칠 때마다 제대로 된 수해복구는커녕 탁상공론으로 고통을 겪어온 그의 아내 질금댁은 이참에 집을 나가버린다. 질금댁은 “품앗이 한다치고 위자료나 쪼까 부쳐줘요. 인자 농협은 싫어유, 우체국이 낫겄슈” 한다. 노상술은 아내를 붙잡지 못하고 어린 아들과 살아갈 현실에 술 한잔 걸치고 창고에 왔다.

농부 4명은 열심히 사건재연에 나서지만 도통 실마리는 보이지 않는다. 홧김에 쌀부대에 낫질을 하고 불을 지르려고 한 것은 사실이지만 부대 속에서 발견된 머리없는 토막난 시체에 대해선 아는 바가 없다. 농부들도 각자 ‘대가리’ ‘대그박’ ‘대갈빼기’가 어디로 갔을까, 궁금해하며 서로를 의심한다.

마침 강원도 사나이 김창출은 “대가리 만내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아오?”하며 대가리를 만나고 싶어 이곳에 온 사연을 털어놓는다. 재해가 생길 때마다 행정당국과 제 배만 불리는 건설업자 틈에서 피멍든 사연이 많다. “문제는 대가리래요, 왜 대가리가 문제냐 하면요. 대가리끼리 거래하고 노나 묵고 대가리끼리 장단 맞춰서…. 해마다 태풍 갸는 오고 비는 쎄리 퍼붓는디 쓸려가는 거는 우리 가슴팍이래요.” 이제 마지막 사연을 남겨둔 갈필용은 “다 내가 엎어 쓸라니까”를 연발하는데….

속도감 있게 펼쳐지는 재연이 연극 한편인 셈이다. 취조실과 창고 회상 신을 담은 무대는 모던하게 꾸며졌다. 연출가와 배우들은 연습에 앞서 삼도봉에 원정을 다녀오기도 했다. 김신후 작가의 창작 초연작. 감각적인 대사와 연출로 인기를 끌고 있는 고선웅이 각색과 연출을 맡았다. 고선웅은 “전라도 무안 출신으로 농촌현실을 그린 작품에 이끌렸다”면서 “농촌 얘기를 사실주의로 풀어낸다면 치열하고 우울한 작품이 되겠지만 이번 공연은 가상의 공간인 곡물창고를 통해 우화적으로, 관객 스스로 느낌을 가질 수 있도록 여백을 뒀다”고 말했다. 오는 10일부터 동숭아트센터 소극장. (02)766-6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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