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세연 기자] “보통 1년 단위 계약을 9~10월 정도에 많이 하는데 평소보다 계약 시기가 많이 늦어졌습니다. 새해 계획을 세우는 데 차질이 불가피한 상황입니다.”
| 기사 내용과 무관함.(사진=게티이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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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8년 차 인공지능(AI) 기반 스타트업 대표 A씨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A씨는 업종 특성상 10월 중에 계약을 마무리하고 보통 연말이 지나기 전에 다음 해 예산을 짠다. 하지만 지난해에는 경기 불황이 지속된데다, 연말 정치적 불확실성까지 맞물리며 거래처가 계약을 머뭇거리거나 시기를 늦췄다고 설명했다. 그는 “주머니가 다 얼어붙어서 어쩔 수 없는 것 같다”며 “투자 시장 뿐만 아니라 전체 상황이 안좋다”고 토로했다.
스타트업 투자 혹한기가 이어지는 가운데 경기불황이 계속되면서 대기업과 벤처투자사(VC)들이 투자를 머뭇거리고 있다. 이들과의 계약 혹은 투자로 먹고사는 스타트업은 새해 예산계획이나 회사 운영계획을 짜기 어려운 것은 물론, 존폐 위기까지도 걱정하는 모습이다.
바이오 빅데이터 전문 스타트업 바스젠바이오의 김재원 이사는 “지난해 12월에 투자를 하겠다고 약속했던 VC 세 곳이 모두 2,3월로 투자 시기를 미뤘다”며 “50억원 규모로 투자를 유치했는데 아직 한 푼도 못 받은 상황이다. 다행히 지난해에는 매출이 조금 나와서 그걸로 버티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올 4월이면 정부가 적극적으로 지원해주는 ‘창업기업’ 기준인 7년을 넘어서서 정부 투자도 받기 어려워진다. 5~6월 이후까지도 계속 투자가 지연되거나 들어오지 않으면 존폐를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걱정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상대적으로 사정이 나은 딥테크 분야 스타트업들도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거대언어모델(LLM) 스타트업 관계자 B씨는 “딥테크 쪽은 전략적으로 투자를 하다 보니 아직 영향은 없다”면서도 “중장기적으로 불황이 계속될까 저희도 긴장하고 있다. 올해 초에 허리띠를 졸라매기 시작하면 우리에게도 여파가 있을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딥테크가 전략 투자 분야이기는 하지만 필수 지출분야도 아니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 언제든 계약이나 투자를 줄일 수 있다는 불안감이 있다는 게 B씨 입장이다.
| 연도별 신규 결성 펀드 규모 통계.(사진=한국벤처캐피탈협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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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벤처캐피탈협회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자금 유동성이 떨어지기 시작한 2022년 이후 투자 재원 자체가 쪼그라들었다. 투자를 위해 결성된 펀드 규모는 2022년 11조 641억원에서 2023년 6조8051억원, 2024년 11월 기준 5조 1437억원으로 줄었다. 2023년 11월 기준(5조6465억원)과 비교해도 8.9% 감소한 수치다. 펀드 결성 이후 실제 투자가 집행된 금액은 지난해 11월 기준 전년 동기 대비(4조 7693억원) 약 9000억원 증가한 5조 6411억원으로 회복세를 보였지만 펀드 결성 금액이 계속해서 감소한 것으로 미루어볼 때 올해 신규 투자 집행 금액도 다시 줄어들 우려가 있다.
형경진 블리스바인벤처스 대표는 “2022년 5월 이후로 세계적으로 유동성이 축소돼 우리도 펀딩하기 힘들어진 것이 사실”이라며 “아무리 기술이 좋다는 얘기를 들어도 생긴 지 얼마 안 된 회사는 펀드 결성 시 큰 자금이 안 모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