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로부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고, 거부들은 돈을 싸들고 이 펀드를 찾았다. 은행들도 앞다퉈 돈을 빌려주겠다고 나서면서 펀드 자산은 순식간에 불어났다.
그러나 이 펀드는 4년만에 1000억달러라는 천문학적인 돈을 날리고 파산했다. 전세계 금융시장을 뿌리채 뒤흔들어 놓았던 롱텀캐피탈매니지먼트(LTCM)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시스템 위기까지 야기할 수 있는 헤지펀드의 위험성이 각인됐고, 규제의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 드림펀드의 몰락
천재들이 꾸린 이 꿈의 펀드가 한순간에 깡통계좌로 전락한 이유는 바로 시나리오와 달리 극단적인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 데에 있다.
당시 LTCM의 전략은 무위험 차익거래. 시장이 합리적이라는 절대적인 믿음 하에 서로 다른 채권간 이자율 격차(스프레드)는 언젠가는 반드시 줄어들 것이라는 예상에 베팅한 것이다. 이에 따라 LTCM은 러시아 국채선물을 대거 매입하고 미국 국채는 공매도했다.
이같은 전략으로 LTCM은 설립후 4년동안 185%의 수익률을 올리면서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시장은 그들이 굳게 믿었던 합리적인 방향으로만 흘러가지 않았다.
1998년 8월17일 러시아의 모라토리엄 선언으로 상황은 180도 변했다. 러시아 채권은 휴지조각으로 변했고 투자자들은 패닉에 빠졌다. 안전자산인 미국 국채로 자금이 몰리기 시작하면서 미 국채 금리는 급락(가격 급등)했다.
여기에 과도한 레버리지가 화를 키웠다. 더 큰 돈을 벌기 위해 자산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돈을 빌린 것이 전체 금융시스템을 뒤흔들었던 것이다.
러시아의 모라토리엄 선언 사흘째인 8월21일 하루동안만 LTCM은 5억5000만달러의 손실을 입었고, 손실은 갈수록 눈덩이처럼 불어나 한달동안 19억달러를 잃었다.
이후로 감독 사각지대에 있었던 헤지펀드에 대한 규제가 논의되기 시작했고, 금융시장에서는 리스크 관리가 하나의 중요한 영역으로 자리잡았다.
◇ 줄이은 제 2의 LTCM
이후에도 제 2의 LTCM 사태로 거론되는 헤지펀드 파산이 여럿 있었다.
LTCM 파산 즈음인 1998년 헤지펀드 업계의 전설적인 인물 줄리안 로버트슨이 운용하던 타이거펀드 역시 1999년 닷컴시대가 도래했을 때 전통 굴뚝주에 집착하는 실수를 저지르면서 몰락했다.
`가치 투자`라는 원칙 하에 1980년 설립된 이후 1998년까지 1987년 한해에만 손실을 냈을 뿐, 연평균 26%의 높은 수익률을 올렸다. 그러나 증시 주도주가 첨단기술주와 인터넷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는 우를 범했다. 1999년 한해동안 19% 손실을 냈다.
한쪽 방향에 대한 과도한 베팅과 지나친 레버리지가 위기의 원인으로 꼽혔다.
헤지펀드 업계에서 로버트슨과 쌍벽을 이뤘던 조지 소로스는 1990년대말 첨단 IT주에 과도하게 투자했다가 닷컴버블 붕괴로 엄청난 손실을 입었다.
◇ 위기마다 용의선상
2006년에는 애머런스가 천연가스 선물에 투자했다가 60억달러의 손실을 입고 파산했다. 2000년 설립된 이후 상품선물시장에 주로 투자해 상당한 투자수익을 거뒀지만 동절기와 하절기 천연가스 선물가격간 스프레드 확대에 베팅한 것이 실수였다.
실제 가격이 정반대로 흘러가면서 90억달러였던 투자자산의 3분의 2를 일주일 만에 날렸다. 이는 LCTM 파산 이후 가장 큰 규모로 금융시장을 긴장케 했다.
물론 LTCM만큼 파장이 크지는 않았지만 레버리지나 공매도 등 헤지펀드의 투자기법이 세계 금융시장에 큰 리스크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은 더욱 높아졌다. 따라서 무모하게 베팅하거나 과도하게 차입하는 전략을 자제하는 모습을 보였다.
헤지펀드 자체로서는 성공했지만, 세계 금융시장을 망가뜨린 주범으로 지목받는 경우도 많다.
92년 영국 파운드화 폭락, 94년 멕시코 금융위기, 97년 7월 태국 바트화 폭락 사태로 시작된 아시아 외환위기 등의 배경에는 빠짐없이 헤지펀드 주도의 핫머니가 등장했다.
최근 서브프라임 쓰나미로 전세계 금융시장이 쑥대밭이 된 상황에서도 헤지펀드는 빠지지 않고 위기의 주범으로 몰리는 상황이다. 특히 같은 전략을 쓰고 있는 헤지펀드들이 동시에 포지션을 청산하면서 전세계 신용경색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는 지적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