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명이다, 산 그림자를 찾아라! - 괴산 낙영산(落影山)과 질마재(VOD)

박종인의 여행 편지 9
  • 등록 2008-11-07 오후 12:00:00

    수정 2008-11-07 오후 12:00:00





▲ 충북 괴산 땅에 당나라 황제를 매료시킨 산이 숨어 있다. 낙영산이다. 질마재 고개에는 인심 넉넉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 / 조선일보

[조선일보 제공] 산 그림자가 떨어진 것이다

어느 날 아침 세숫물 받아놓고 얼굴 씻을 준비를 하던 당나라 황제 고조(高祖) 대야 위로 천하일미(天下一美)의 산 그림자가 비치는 것이었다. 황제가 당장 화가를 불러 자기가 본 산을 그리게 한 후 중국 대륙을 샅샅이 뒤지게 하명했으나, 황명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도 산 그림자의 정체를 알아내지 못 하였겄다.

어느 날 밤 황제 앞에 동자승이 나타나 이리 말하고 사라졌다. “산은 동방의 신라국에 있다.” 신라로 파견된 사신들이 각고의 노력 끝에 찾아낸 산이 과연 그림 그대로였으니, 그 산을 ‘그림자가 떨어진 산’이라 하여 낙영산(落影山)이라 했다. 세월이 흘러 2008년, 낙영산에는 공림사(公林寺)라는 새롭되 고색창연한 절이 서 있게 되었고, 산 너머 우람한 고갯길 질마재에는 맘씨 좋고 넉넉한 사람들이 살게 되었다. 그 산을 갔다. 정말 중국 황제를 매혹할 정도로 아름다운가? 과연 그러했다! 




낙영산은 숨어 있는 산이다. 충청북도 괴산에서 보은으로 이어지는 37번 국도에 숨어 있다. 숨어 있다 함은, 그 등산로 입구가 ‘사담마을’이라는 마을 상가 옆에 보일 듯 말 듯 열려 있다는 말이다. 입구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공림사 가는 길’. 공림사(公林寺)?

서기 873년 신라 경문왕 때 창건된 절이다. 조선 중기까지 속리산 법주사보다 융성했지만 임진왜란 때 대웅전과 요사채만 남고 다 탔다가 중건된 절이다. 6·25 때는 인민군에 의해 점령됐다가 안타깝게도 국군의 작전으로 전소됐다. 1965년 재중건이 시작돼 1981년 지금의 모습으로 자리잡았다. 자, 불과 26년 된 젊은 절집이지만 그 역사는 깊고 절집 생김 또한 역사만큼 고졸스럽다. 휘황찬란한 단청 대신에 세월에 풍화된 고색창연한 분위기가 물씬하다.


▲ 가을날 아침, 공림사


상가 옆으로 난 좁은 시멘트길은 곧 숲길로 변한다. 너른 숲 가운데에 오도카니 선 일주문을 지나면 멀리 낙영산이 보이고 그 아래 공림사 느티나무 숲이 나타난다. 느티나무들은 울긋불긋한 가을색을 담고 있다. 국보도 보물도 없는 절이지만, 꾸미지 않은 고졸미를 즐기기에는 충분하다. 공림사 오른편으로 수령이 990년 된 느티나무 노거수가 서 있다. 땅을 몇 톤씩 파내고 지반을 다진 노력 끝에 나무는 그 긴 세월을 버티고 서 있다. 등산로는 공림사 왼편 오솔길에서 시작한다.


▲ 990년을 견뎌온 공림사 느티나무


숲길에 가을이 반짝이는 것이다

지금, 산은 가을로 뒤덮였다. 잘 정비된 등산로를 따라 걸으면 낙엽들이 수북이 깔려 폭신폭신한 쿠션 역할을 한다. 등산화를 신지 않으면 미끄러울 정도다. 제법 평탄한 길을 걷다가 고개를 돌려보면 햇살에 반짝이는 나뭇잎들의 광채로 눈이 어지러울 정도다. 길은 조금씩 급해지고, 숨은 가빠온다. 인근에 있는 군부대의 헬리콥터와 전투기 소리가 자주 들리지만, 개의치 말자.

등산로는 참으로 모범적이다. 발 디딜 곳 찾을라 치면 거기에 오목한 바위가 앉아 있고, 가파르다 싶으면 오래된 나무 뿌리들이 칡넝쿨처럼 계단을 만들어놓았다. 30분쯤 지나 숨이 목까지 찰 무렵, 눈 앞에 쇠난간이 보이더니 하늘에 도착했다. 정상에 앞서 능선에 도달한 것이다. 거기에서 한숨. 여기까지는 그리 다른 산과 차별되지 않는 그저 그런 산이다. 실망은 절대 금물. 이제부터 당 고조를 현혹한 그 미학이 출몰하니까.

바위들이 나를 매혹하는 것이다

능선 갈림길에서 오른편길을 택한다. 가운데 직진길은 옆에 있는 도명산 가는 길이다. 거기까지 가려면 왕복 5시간은 잡아야 한다. 낙영산은 왕복 2시간. 오른쪽 길을 따라, 가을을 밟고 오른다. 예의 나무뿌리 계단들이 등산객을 조용히 기다리고 있다. 숨이 가쁘다.

15분을 걸었더니, 어라, ‘정상’이라 한다. 바위들이 모인 한 가운데에 ‘낙영산 684m’라는 비석이 서 있다. 뭐라고? 역시 실망은 금물. 조망도 좋지 않은 이 정상을 보려고 여기까지 오지 않았다.


▲ 정상을 지나 나오는 바위군(群). 추상파 조각 작품 같다

▲ 바위에 기대고 선 소나무


정상을 지나 5분 정도만 가면 커다란 바위가 나온다. 그 바위에 오르면 아래로 공림사가 내려다보인다. 옆에는 나이를 알 수 없는 커다란 소나무가 몸을 비틀고서 바위에 기대어 있다. 거기에서 조금만 전진해 공림사쪽을 내려다 보면 그 풍경이 이렇다.


▲ 공림사를 배경으로 작은 암봉이 솟아 있다.


해발 700m도 되지 않는 작은 봉우리가 이런 풍경을 숨겨놓았다니 정말 놀랍다. 이게 다가 아니다. 평탄한 오솔길을 이어가다 보면 도처에 바위들이 튀어나와 숨을 막히게 만든다. 아래를 보시라. 이 바위들은 뭔가. 


▲ 혹자는 상어라고 했고 혹자는 돼지라고, 부처라고 했다. 자기 마음 생김처럼 보이는 법이다


▲ 세월의 풍화 속에 암호를 새겨넣은 듯한 모습으로 변했다


그렇게 암골미(岩骨美)에 흠뻑 빠져 가을을 마셔 보시라. 이후 헬리콥터 착륙장에 가면 왼편 계곡 너머로 이런 풍경이 나타난다.


▲ 그 형성 원인이 무척 궁금한 산자락. 꼭대기에 마치 그물 같은 무늬가 보인다


길이 끊길 쯤이면 산악회들이 걸어놓은 이정표가 나오니, 길 잃을 염려는 없다. 하지만 하산길에서 조심해야 할 일이 하나 있으니, 암벽이다. 아까까지 우리를 매혹했던 바위들이 하산길에는 제법 위험한 장애물로 변해 있다. 그런 곳에는 나무와 바위에 매듭을 지어놓은 로프가 걸려 있으니 주의해서 내려오시라. ‘전망대’라 흔히 부르는 암반지대에 도착하면 반드시 한숨을 돌리고 뒤를 돌아봐야 한다. 봉우리 전체가 하얀 바위덩이인 거대한 암봉이 하늘로 솟구치고 있다. 장관이다.

로프 몇번 타고 내려오면 처음 시작했던 오솔길과 비슷한 분위기의 평탄한 길이 나타나고, 곧이어 공림사 부도탑이 보인다. 산은 거기에서 끝. 절에 양해를 구하고 수돗물로 땀을 씻은 뒤 이번에는 질마재로 간다.


착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것이다 - 질마재 

▲ 이영림은 질마재에서 된장을 만든다. 이름은 호산죽염된장
질마재는 증평과 화양동을 잇는 고개다. 충청도답지 않게 구절양장인 큰 고개다. 짐을 손으로 들고 오르지 못하고 반드시 짊어져야 한다고 해서 질마재다. 증평쪽에서 질마재를 넘으면 너른 고원지대가 나온다. 거기에 이런 사람들이 산다. 우선, 된장장수 이정림.

낙영산에서 내려와 화양계곡쪽으로 가다가 괴산쪽으로 틀어 한참 가면 호산죽염된장이라는 간판이 보인다. 황토 기와집에 분수와 물레방아가 있는 집이다. IMF 폭탄을 맞고 완전히 거덜났던 집을 맨주먹으로 부활시킨 된장장수 이정림씨 가족이 사는 곳이다. 죽염으로 된장을 만들고, 그 된장과 간장으로 식당을 운영한다. 먹거리에 예민한 요즘, 이곳 식당에서 산행 후 요기를 하면 딱 좋다. 삼겹살부터 산채까지 다 있고 산책로, 찜질방, 노래방까지 다 있다. 된장 판매도 한다.

하나 더. 주인 이정림씨는 IMF 때 대표적인 귀농(歸農) 성공 사례로 인기를 끌었다. 이 시대, 세상 살기 힘든 분은 정림씨에게 가서 길을 물어보시라. 절망의 나락에 떨어졌다가 맨주먹으로 살아난 지혜를 배울 수 있다.

▲ 질마재 응달마당 풍경. 주인 이재숙씨도 갯수 파악이 불가능한 옛것들이 쌓였다

그리고 응달마당. 찻집이다. 거기에 다재다능한 여주인 이재숙씨가 살고 있다. 서예가, 화가, 그리고 수집가. 20년 넘도록 전국을 돌며 모아놓은 민속품들이 응달마당 찻집 안팎에 쌓여 있다. 차만 파는 곳이다. 용도를 물어보면 재숙씨가 세세하게 알려준다. 산에서 눈을 즐기고, 된장집에서 배를 채우고, 그리고 이곳 응달마당에서 산수유차를 마신다. 공간을 가득 채운 옛것들로부터 호기심을 충족하고 그리고 돌아온다. 질마재의 유장한 드라이브를 즐기며 이정표 따라 차를 몰면 다시 우리는 도시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 나들이는 여기서 끝.

::: 여행수첩

가는 길(서울 기준): 중부고속도로 증평IC '화양계곡' 이정표 따라 증평 읍내 지나 592번 도로로 직진. 교차로가 나오면 계속 화양계곡 이정표 따라갈 것 험준한 고갯길이 나오면 질마재다. 질마재를 다 넘으면 곧바로 오른쪽에 응달마당. 거기에서 3㎞를 가면 왼쪽에 호산죽염된장 공림사와 낙영산은 화양계곡과 보은으로 갈라지는 삼거리 나오면 보은쪽으로 우회전 청천사거리에서 보은쪽으로 좌회전, 11㎞정도 가서 왼쪽에 휴게소 보이면 사담마을. 속도를 확 줄여서 왼쪽을 잘 보면 ‘공림사 가는 길’이라는 작디 작은 길이 보인다. 거기로 들어갈 것. 공림사는 길 끝에 있다.

호산죽염된장: (043)832-1388~9. www.ihosan.com 각종 장류 통신판매도 한다. 방문해서 된장을 구입하면 백반 공짜. 된장 1.5㎏ 2만원부터. 삼겹살, 엄나무닭, 산채 등 메뉴 다양하다. 며칠 전 올 김장을 했으니 이번 주말에 가면 맛있는 겉절이가 덤이다.

응달마당: (043)832-6639. 반드시 전화로 영업 여부를 확인한 후 들를 것. 따로 쉬는 날이 있는 건 아니지만, 카페가 비는 경우가 있다.

여행팁: 낙영산 산행은 반드시 등산화를 신고 할 것. 암벽이 많고 가을 낙엽이 쌓여 있어 제법 미끄럽다.


▶ 관련기사 ◀
☞"칠십 평생 소리만 혔지"… 육자배기 ''달인'' 마을
☞6천년 태고의 신비 간직한 ''산중(山中) 스펀지'' - 울주 무제치늪
☞야생이 숨쉬는 ''생명의 땅'' - 태안 두웅습지


이데일리
추천 뉴스by Taboola

당신을 위한
맞춤 뉴스by Dable

소셜 댓글

많이 본 뉴스

바이오 투자 길라잡이 팜이데일리

왼쪽 오른쪽

스무살의 설레임 스냅타임

왼쪽 오른쪽

재미에 지식을 더하다 영상+

왼쪽 오른쪽

두근두근 핫포토

  • 몸짱 싼타와 함께 ♡~
  • 노천탕 즐기는 '이 녀석'
  • 대왕고래 시추
  • 트랙터 진격
왼쪽 오른쪽

04517 서울시 중구 통일로 92 케이지타워 18F, 19F 이데일리

대표전화 02-3772-0114 I 이메일 webmaster@edaily.co.krI 사업자번호 107-81-75795

등록번호 서울 아 00090 I 등록일자 2005.10.25 I 회장 곽재선 I 발행·편집인 이익원 I 청소년보호책임자 고규대

ⓒ 이데일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