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성진 기자] 지분율 경쟁을 벌이던 MBK파트너스·영풍 연합과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고려아연 임시 주주총회 앞두고 이사회 구성과 선임 방식을 투고 치열한 공방전을 시작했다. 양측이 다투는 핵심 안건은 바로 집중투표제로, 최 회장 측이 “소액주주의 권리 향상을 위해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지만, MBK 연합 측은 “집중투표제를 악용해 경영권을 연장하려는 것”이라고 반박하고 나섰다.
25일 업계에 따르면 고려아연은 지난 23일 임시 이사회를 열고 주주 ‘유미개발’이 제안한 집중투표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정관을 바꾸는 동시에 이를 전제로 한 집중투표도 이번 임시주총에서 실시한다는 계획이다.
|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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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투표제는 주총에서 선임되는 이사 수만큼 주주에게 의결권을 부여하는 방식이다. 1870년 미국 일리노이주 주하원 의원을 선임하기 위한 방식으로 최초 도입된 이후 대표적인 주주친화 정책으로 알려졌다.
예를 들어 새로 선임되는 이사의 수가 5명이라면 주식 1주를 가진 주주는 5표를 행사할 수 있다. 주주는 이 표들을 특정 이사에게 몰아서 행사할 수 있기 때문에 소수주주가 추천한 이사가 이사회에 진입할 확률이 높다. 대주주의 전횡을 견제하고 소수주주의 권한을 향상시킬 수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1998년 상법개정으로 집중투표제를 전격 도입했으나 정관에서 이를 배제할 수 있도록 해 사실상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줄곧 제기돼 왔다.
일반적으로 집중투표제는 행동주의 펀드가 이사회에 외부 추천 인사를 진입시키기 위한 방도로 곧잘 활용된다. 비교적 소수 지분을 보유한 행동주의 펀드가 자신들의 목소리를 직접 반영시킬 수 있는 얼마 안 되는 방법이다. 실제로 올 3월 JB금융지주 2대 주주인 행동주의펀드 얼라인파트너스가 주주추천·제안을 통해 2명의 사외이사 후보를 JB금융 이사회에 입성시키는 데 성공한 바 있다. 또 플래쉬라이트 캐피탈 파트너스(FCP) 역시 올해 KT&G 주총에서 집중 투표제를 통해 자신들이 추천한 사외이사를 이사회에 진입시키기도 했다.
이번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 사태에서는 상대적으로 MBK·영풍 연합보다 더 적은 지분을 보유한 최 회장 측이 집중투표제 카드를 꺼내들었다. 이번에 고려아연 측에 집중투표제를 제안한 유미개발도 사실상 최 회장 일가가 소유하고 경영하는 회사다. 최 회장 측의 특별관계자 수는 50명이 넘어, 만약 집중투표제가 도입될 경우 표 대결이 최 회장 측에 유리하게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
MBK·영풍 측은 “정관 변경(집중투표제 도입) 안건 가결을 조건으로 같은 임시 주총에서 집중투표제 방식의 이사 선임까지 청구하는 것은 상법과 자본시장법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집중투표제를 허용하는 정관 변경이 선행된 후에 이를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고려아연은 이에 대해 “변경된 정관에 따른 주주제안을 하는 것은 법리적으로나 실무적으로 이견이 없다”며 “이와 관련한 다수 선례도 존재한다”고 맞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