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박성의 기자] 편의점을 ‘한끼 때우러 가는 곳’이라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구(舊)세대 ‘셀프인증’이다. 편의점은 변했다. 거창하게 말하자면 진화했다. 적어도 먹거리에서는 말이다. 이제 짤랑이는 오백 원짜리를 쥐고 컵라면 호호 불어먹던 편의점은 옛말이 됐다. 국밥 하나에도 6000원을 내야 하는 이 잔인한 시대에, 편의점은 무려 ‘계란을 넣은 봉지라면’을 팔고 있다.
편의점에 봉지라면을 즉석에서 조리해주는 기계가 등장했다. ‘뭐 별거야?’라고 말할 수 있다. 사실 그렇다. 별건 아니다. 다만 이 단순한 조리기계는 한강 둔치 빼곤, 시내 편의점 내에 몇 군데 없다. ‘희귀템’인 셈이다. 지난 21일, 즉석라면 기계가 있다는 최신식 편의점 ‘위드미 충무로 2호점’을 찾았다. 신용카드의 ‘퍼가요’ 탓에 통장도 기자도 같이 배를 곪던 날이다.
| ‘위드미 충무로 2호점’에 설치된 즉석라면 조리기계. (사진=박성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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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 조리기계는 편의점 2층에 있었다. 조리기계 앞에 서면 형형색색 봉지라면이 반긴다. 주저 없이 국민라면 ‘S라면 매운맛’을 집어 들었다. 라면을 들고 조리기계 옆에 설치된 무인계산대 앞에 섰다. ‘이거 어떻게 쓰나?’ 3초 정도 머뭇거렸다. 그 찰나 앞에 서 있던 드론을 든 초등학생 김진하(11) 군이 새치기해 왔다. 반항할 새도 없이 김군은 도도하게 ‘S모 페이’를 이용해 봉지라면을 계산했다. 능숙했다. 4차 산업 혁명은 이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기자도 김군의 동선을 따라 계산을 마친 뒤, 조리기계에 라면을 올렸다. 위드미가 설치한 라면 조리기계의 사용법은 간단하다. 봉지라면을 일회용 조리 그릇에 올리고 기계의 버튼을 누르면, 알아서 끓여준다. ‘우리 집 냄비’ 아니면 라면 물 조절에 실패한다고 자조할 필요도 없다. 기계는 친절하다. 일반라면, 짬뽕라면, 볶음라면, 짜장라면 등 라면 종류에 맞는 최적의 물량이 각각 설정돼 있다.
| 계란 소포장 상품인 ‘계란 한알’. 이름 그대로 계란 1개를 포장해 판매하는 제품이다. (사진=박성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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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이 보글보글 소리를 내며 끓는 중, 앙증맞은 계란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상품명은 ‘계란 한 알’. 감히 말하건대, 이 계란의 등장이 편의점의 지위를 ‘때우는 곳’에서 ‘식사하는 곳’으로 격상시켰다. 컵라면만 먹는 것과 반숙 계란까지 풀어서 봉지라면을 먹는 것은 ‘클래스’가 다르다. 전자는 한 끼 ‘때운’ 사람, 후자는 한 끼 ‘먹은’ 사람. 포만감의 차이는 크다. 계란 한 알을 사서 라면에 투하했다. 편의점에서의 첫 ‘한 끼 식사’가 완성됐다.
| 편의점에서 즉석라면 조리기계와 ‘계란 한 알’을 이용해 한끼 식사를 해결할 수 있었다. (사진=박성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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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6시 22분, 편의점에 들어가 봉지라면(720원)과 계란 한 알(550원), 조리기계 사용료(500원)를 합해 1770원으로 저녁식사를 끝냈다. 라면을 구매하고 라면이 꼬들꼬들 익는 데까지는 6분이 채 안 걸렸다. 빨리 먹고 싶어서 컵라면을 선택할 필요가 없어진 셈이다.
조류인플루엔자(AI) 사태의 후유증일까. 500원이 넘는 계란 한 알의 가격에 다소 놀라긴 했지만 봉지라면을 조리해주고, 계란 한 알을 살 수 있는 편의점이 주위에 있다는 것은 ‘혼족’(1인가구)에겐 일종의 복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