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석 무역업을 하는 박모(35·서울)씨는 요즘 할인점 쇼핑이나 가족 외식 말고는 신용카드를 거의 안 쓴다고 한다. 가끔 친구들과 술집에 가더라도 현금으로 더치페이를 한다. 박씨는 “(카드 과소비가 한창이던) 4~5년 전 혼자서 수십만원씩 술값을 냈던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끔찍하다”고 말했다.
29일 본지가 카드대란 때인 2002년 10월과 올해 10월의 LG카드 사용처와 사용액을 비교한 결과, 남성은 술값, 여성은 백화점 쇼핑을 확 줄인 것으로 집계됐다.
◆남성의 술값
2002년 10월 한 달간 LG카드 남성 회원 중 8만4000여 명이 룸살롱이나 단란주점과 같은 유흥주점에서 총 484억원을 카드로 썼다. 1인 평균 57만6000원어치를 카드로 그은 셈이다.
연령별로 보면, 2002년엔 대학생이나 입사 초년생이 많은 20대도 술집에서 51만원씩 겁없이 카드를 썼다. 20대 남성 5800명이 한 달간 총 29억5000만원을 술값으로 계산한 것이다.
당시 20대의 카드 사용처 순위(결제액 기준)에서 유흥주점은 통신요금·주유소·전자결제에 이어 4위를 차지했었다. 그러던 것이 4년 뒤인 올해 10월에는 순위가 8위로 밀려났고, 한 명이 쓴 금액도 35만5000원으로 줄었다.
2002년엔 술집에서 한 달에 60만6000원이나 카드를 썼던 30대도 올해는 44만4000원으로 씀씀이를 줄였고, 40대 역시 같은 기간 55만4000원에서 40만원으로 술값을 덜 썼다.
◆여성의 백화점 쇼핑
여성들도 백화점에서 사용한 카드 지출액이 10%가량 줄었다. 30대 여성의 경우 2002년 10월 22만2000원이었던 것이 올해 10월엔 20만4000원으로 줄었고, 다른 연령대도 비슷한 폭으로 감소했다. 맞벌이를 하는 이모(여·34)씨는 “백화점에서 가끔 팸플릿(DM)이 날아오지만 이젠 아이(eye)쇼핑을 하는 데 만족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성들의 충동구매를 일으키곤 했던 TV홈쇼핑 카드 지출액도 줄었다. 여성 1인당 소비액은 30대는 15만6000원에서 14만4000원, 40대는 16만6000원에서 14만5000원, 50대는 17만4000원에서 14만8000원으로 줄었다. 화장품도 아껴 쓰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령이 높아질수록 화장품을 사는 데 쓰는 돈은 늘었지만, 2002년에 비해 감소폭이 컸다.
예컨대 20대는 13만9000원에서 8만7000원, 50대는 31만5000원에서 19만3000원으로 화장품값을 줄였다.
고려대 심리학과 성영신 교수는 “여성들의 백화점 소비가 줄어든 것은 경기침체에 따른 소득감소가 원인이기도 하지만, 우리나라 여성들의 소비행태가 점차 실용적으로 바뀌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