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은행 횡령사고, 은행장·회장에 책임 물으면 없어질까

이용우 경제더하기연구소 대표
이해상충 없는 회계부정 조사 필요
외감법 개정해 제도 실효성 높여야
  • 등록 2024-07-05 오전 8:30:00

    수정 2024-07-05 오전 8:30:00

[이용우 경제더하기연구소 대표(더불어민주당 전 국회의원, 경제학 박사)] 얼마 전 우리은행 직원이 100억원 이상을 횡령한 사건이 발생했다. 2년 전인 2022년 우리은행에서 처음에는 500억원 규모의 횡령 사건이 발생하였는데 조사 과정에서 횡령 금액이 늘어나 617억원 정도가 됐다는 것이 밝혀졌다. 작년 9월과 12월 경남은행에서는 약 3000억원의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횡령 사건이 일어났다. 은행뿐만 아니라 저축은행 등 고객의 자금을 취급하는 금융기관에서 횡령 사건이 잊힐 만하면 발생하고 있다.

왜 이런 일이 계속해서 발생할까? 일반적으로 은행의 내부통제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한다. 내부통제는 은행의 모든 업무가 각종 규정에 맞게 이뤄지는지를 사전적으로 점검하는 체계를 말한다. 은행을 비롯한 모든 금융회사는 내부통제 제도를 두고 있다. 횡령사건이 내부통제의 허점이나 운용 미숙에서 발생했다면 그 책임은 내부통제 제도를 담당하는 임직원이나 경영진의 책임이라고 볼 수 있다.

내부통제는 회사 전반의 운영과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담당 임직원만의 문제가 아니라 최고경영진을 포함한 경영진의 문제다. 이런 의미에서 횡령 사건이 발생하면 내부통제를 강화해야 하고, 이를 지키지 못한 최고경영진의 책임을 묻겠다고 하는 감독 당국의 태도는 당연해 보인다. 최근 금융감독원장이 우리은행 횡령 사건이 발생한 후에 내부통제 검사 착수와 함께 법령상 허용하는 범위에서 최고경영진의 책임까지 묻겠다고 한 것은 당연한 조치로 보인다.

우리은행 전경. (사진=우리금융)
주목해야 하는 것은 ‘법령상’이다. 횡령 사건을 내부통제 장치를 통해 은행 내에서 발견했고 검찰 고발과 함께 금감원에 통보했기 때문이다. 물론 검사를 통해 이 보고가 잘못이거나 허위일 경우 문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은행의 내부통제 장치에 강제수사권이 없고, 은행이 횡령 사건을 적발하고 수사 의뢰와 금감원 보고가 이뤄졌다면 내부통제 장치가 작동하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최고경영진의 책임을 묻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 든다.

우리가 ‘법령상’이라는 것에 주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은행 등 금융회사의 상품은 매우 복잡하다. 예전에는 단순한 대출이나 예금을 다뤘지만 금융기법이 발생함에 따라 선물, 옵션 등 파생상품이 포함된 복잡하게 구조화된 상품을 다루고 있다. 주가연계증권(ELS), 파생결합증권(DLF) 뿐만 아니라 PF 대출상품에서의 메자닌, 후순위 등 너무나도 복잡하다. 복잡다기한 상품에 대해 담당하는 직원이 아닌 내부통제 부서에서 잘 알고 그 절차를 잘 지키고 있는지 점검할 수 있을까?

내부통제의 기본은 견제와 균형(check & balance)이다. 회사의 모든 행위는 숫자로 재무상태표 등 회계보고서에 담기게 된다. 회계법인이 분기별로 회계감사를 하고 그 변화를 추적하고, 주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재무상태표 등의 승인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데 회계법인과 회사가 이해관계가 일치한다면?

2001년 파산한 엔론의 대규모 회계부정이 발생한 원인 중 하나가 회사와 회계법인의 유착이었다. 회계법인은 회계감사(audit)와 컨설팅 업무를 하고 있다. 회계감사는 회사의 재무상태에 대한 감시 업무이며, 컨설팅은 회사의 재무 및 전략에 대해 조언을 하는 업무이다. 자신이 컨설팅한 것을 스스로 감사할 수 있을까? 엔론 회계부정의 결과 회계법인인 아더 앤더슨(Arthur Anderson)은 해체됐다. 이어 회계감사와 컨설팅 업무는 엄격히 분리돼야 하고 독립성을 유지하는 것이 요구됐다.

나아가 회계부정을 방지하기 위해 회계감사를 수행한 회계법인의 재무자료의 검증(forensic) 업무의 중요성이 부각된다. 지난해 경남은행은 3000억대 횡령 등 회계부정이 발생하자 회계부정을 조사해 문제점을 찾고 내부통제 제도를 개선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그런데 그전에 내부시스템을 구축한 회계법인을 선임하려고 했고, 문제가 되자 그제야 다른 조사인을 선임하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발생했다.

이는 전형적인 이해상충이다. 어떤 건축물을 짓는데 시공사와 감리회사를 같은 회사에서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윤 대통령이 그토록 강조하는 카르텔의 폐해가 발생하는 것 아닌가?

(자료=증권선물위원회)
핵심은 제도를 통해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금감원장이 “법령상” 가능한 최대한의 조치를 한다고 하지만 제도가 그것을 뒷받침하지 못한다면 실효성이 없고 앞으로도 동일한 횡령사고를 막을 수 없다. 선의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제도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물론 제도를 만든다고 해서 모든 사고를 막을 수는 없다. 그럼에도 제도를 만들고 새로운 우회로가 나오면 그 제도를 수정·보완하는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 제도를 만드는 일은 정책 및 입법 사안으로 금융당국의 적극적인 자세가 요구된다.

2017년에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외감법)이 개정돼 ‘회계부정 조사제도’가 도입됐다. 외부감사인이 중대한 회계처리기준 위반 사실을 발견하면 ①회사의 감사 또는 감사위원회 등 내부감사기구에 통보하고 ②감사 또는 감사위원회는 외부전문가를 선임·조사한 뒤 ③조사 결과 및 시정조치 결과를 즉시 증권선물위원회(증선위)와 외부감사인에게 통보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시행연도인 2019년부터 2022년까지 증선위에 보고된 회계부정 조사보고 사례는 44건에 불과하다. 한편 코스피·코스닥 상장사의 회계처리기준 위반, 의견거절, 횡령·배임 등으로 거래소에 공시된 사례는 2022년말 기준 이전 5년간 260건에 이른다. 이러한 차이는 증선위 보고의무가 회사의 내부감사기구에만 있고 이를 위반해도 제재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감독당국이 상황을 파악할 수도 없어 실효성이 떨어지는 것이다.

필자는 이런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외부감사인이 중대한 회계부정을 발견하면 회사 내부감사기구에 통보할 뿐 아니라 이 사실을 증선위에 보고하도록 하고, 일정기간 내에 회사로부터 조사 결과를 제출받지 못하면 증권선물위원회(증선위) 보고를 의무화하는 내용의 외감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이 개정안은 21대 국회 회기 종료에 따라 폐기됐다.

그러나 다행히도 박상혁 민주당 의원이 같은 취지의 법안을 발의할 예정이다. 빠른 시일 내 법안 심의를 마치고 통과되길 기대한다. 특히 회계부정 조사인을 선임할 때 이해상충이 없는 조사인을 선임해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잘 지켜지도록 제도를 운영하는 책임은 금융당국 즉 금융위원회에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우리나라 자본시장이 저평가됐다는 인식 아래 금융당국은 밸류업 정책을 본격적으로 준비하고 있다. 그 출발점은 회계의 투명성이다. 모든 자본시장 참가자가 회사의 경영 상태를 잘 알 수 있게 공시하고 제도를 정비하는 것이다. 그 출발점 중 하나가 외감법 개정을 통해 ‘회계부정 조사인’의 독립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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