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득 칼럼]홍 부총리의 줄타기와 벽타기

  • 등록 2021-02-05 오전 6:00:00

    수정 2021-02-05 오전 6:00:00

기업의 CEO(최고경영자)중 회사 금고 속을 자주 들어가지 않는 이들이 있을까? 스마트 폰 안에 있건, 아니면 PC 안에 있건 금고의 형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지구 반대쪽에서도 24시간 회사 내부를 들여다 볼 수 있게 된 오늘날, 기업인들은 마음만 먹으면 자다가도 사이버 금고를 열고 속사정을 체크할 수 있다. 얼마가 새로 들어오고 나갔는지, 시재금은 넉넉한지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겉치레와 노는 데 관심이 더 커 회사를 말아먹을 사람만 아니라면 기업인들은 거의 누구나 이런 스타일로 회사를 이끈다. 몸에 밴 위기의식 때문이다. 그래서 기업인, 특히 오너 경영인들이 조직 내에서 가장 믿을만한 사람을 보내는 곳은 금고(곳간)다. 금고지기의 공통된 특징은 숫자에 밝고, 보수적이고, 충직하면서 입이 무겁다는 점일 것이다.

증권사 CEO 출신의 주진형 열린민주당 최고위원이 최근 한 라디오 방송에서 홍남기 부총리를 향해 “경리 출신의 사고방식이 머리에 배었다”고 화살을 날렸다. 주 최고위원은 “재난 전쟁이 났는데 돈이 있느냐 없느냐를 따지는 것은 답답한 얘기”라며 “홍 부총리를 잘못 뽑았다”고 말했다고 한다. 홍 부총리가 직접 들었다면 어떤 표정을 지었을지 궁금할 정도로 면박에 가까운 표현이다.

홍 부총리를 두둔하기 위해 이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에서 홍 부총리만큼 매를 많이 맞고 왕따를 당한 각료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명색이 경제사령탑인데 청와대와 정부·여당 내부에서도 그를 향한 펀치와 조롱은 ‘툭’하면 날아든다. 문 대통령이 최근 손실보상제 검토를 기재부를 제치고 중소벤처기업부에 맡긴 것이 한 예요, 정세균 국무총리가 ‘개혁저항 세력’이라고 공개적으로 몰아붙인 것도 매운 회초리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곳간지기 구박한다고 뭐가 되냐”며 ‘창고나 지키는 사람’으로 깎아내렸다. 여당과 맞서는 듯 하다가 꼬리를 내리고 ‘8전8패’한 그를 동료, 후배 공무원들이 ‘홍백기’‘홍두사미’라고 부른다는 소문은 새로운 이야기도 아니다.

왜 그랬을까? 홍 부총리와 일면식도 없는 필자는 그의 인품과 스타일을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나의 판단은 나라 곳간 지킴이 일이 그를 ‘동네북’신세로 만든 주원인이라는 것이다.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중장기 국가발전전략 수립, 경제·재정 정책의 수립·총괄 및 예산·기금의 편성과 집행의 최고 책임자다. “쓰고 보자”는 이들이 득실대는 상황에서 곳간 열쇠를 지키다 보니 매를 벌고 따돌림을 당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경리직 같다”는 그의 운신 폭은 따지고 보면 주위가 요구한 것이기도 했다. 과거 경제위기 때마다 국난 극복의 중심에 섰던 스타급 경제 수장들에게는 대통령을 포함한 주위의 탄탄한 신뢰와 권한이 주어졌던 것을 우리는 기억한다. 이름을 댈 필요도 없다. 그러나 홍 부총리가 대통령은 물론 여당 실세 정치인들과 관료 사이에서 소신과 능력을 마음껏 펼 수 있는 배경과 기회를 부여받았다고 볼 수 있을까? 그가 입각한 2018년 12월 이후 기재부 정책은 청와대·여당의 퍼주기 선심과 비어가는 나라 곳간 사이에서 끙끙댄 것 이외에는 별 성과가 보이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의 초슈퍼 예산과 선거를 앞두고 휘몰아칠 포퓰리즘 공세를 고려한다면 고민은 더 깊어질 수 밖에 없다. 4차 재난지원금 방식 등을 둘러싸고 최근 “어렵다”며 이낙연 대표에게 반기를 들긴 했지만 넘을 수 없는 벽을 향한 더 큰 싸움은 사실 이제 시작이다.

거두절미하고 말하자면 홍 부총리는 억울하고 그의 경리식 사고가 잘못된 게 아니다. 문제의 근원은 국민 혈세를 폼나게 쓰고 생색내려는 사람들에게 있다.그리고 이런 이들은 계속 더 나올 것이다. 그런데 그마저 없다면 곳간은 누가 지키고 소는 누가 키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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