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세안+3 재무장관회가 남긴 것은

스왑규모 대폭 증액..역내 금융위기 공동 방어
IMF내 발언권 즉각 확대 요구.. AMF 창설 움직임
  • 등록 2005-05-05 오후 1:56:06

    수정 2005-05-05 오후 1:56:06

[이스탄불=edaily 강종구기자] 아시아국가들이 세계 경제와 국제금융세계에서 본격적으로 목소리를 내겠다는 의지를 강력히 표명하는 한편 미래에 닥칠지 모를 역내 금융위기에 대해 공동대응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과 한국 중국 일본 3국(이하 아세안+3)은 4일(현지시간) 터키 이스탄불에서 국제통화기금(IMF) 발언권 확대와 역내 금융위기 공동 대응을 골자로 하는 `합의서`를 발표했다. 아시아국가들이 그동안의 고도성장과 외환보유액 등을 무기로 미국과 국제통화기금(IMF)이 주도하던 국제금융질서에 적극 대응하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각국 재무장관들은 회담 직후 공식 기자회견을 통해 "치앙마이 이니셔티브(CMI)와 아시아채권시장발전 이니셔티브(ABMI)에 중대한 진전이 있었다"며 "동아시아의 금융과 통화 협력이 발전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 역내 금융위기오면 함께 막는다 터키 이스탄불에서 열린 제38차 아시아개발은행(ADB) 총회 중 열린 제8차 ‘아세안+3’ 재무장관회의의 가장 중요한 의제는 `금융위기 재발 방지`를 위한 역내 국가들의 협력강화였다. 그중에서도 핵심은 그동안 실효성이 없다며 폄하돼 왔던 치앙마이 이니셔티브를 강화한 것이다. 치앙마이 이니셔티브는 지난 2000년 11월 체결된 것으로 각 회원국이 보유한 외환보유액을 대상으로 통화스왑(currency swap)계약을 맺어 역내 금융위기가 발생할 경우 지원에 나선다는 약속이다. 회원국들은 현재 395억달러 규모인 스왑규모를 2배인 790억달러로 대폭 증액하기로 합의했다. 뿐만 아니라 각국이 계약에 따라 각자의 판단에 따라 지원여부를 결정한다는 기존의 방식에서 공동결정 공동지원 방식으로 바꿨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 금융위기가 발생했다면 우리와 스왑계약을 맺은 나라들이 모여 지원여부를 논의하고 우리나라 원화를 받는 댓가로 외환보유액에서 한꺼번에 자금지원에 나서게 된다. 현재 우리나라는 일본, 중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태국, 필리핀 등 6개국과 스왑계약을 맺고 있다. 이번 합의로 현재 수혜 80억달러, 지원 60억달러인 스왑규모가 앞으로 수혜와 지원 모두 160억달러로 크게 늘어나게 된다. 최중경 재정경제부 국제금융국장은 "지원이 오히려 어려워질 수도 있고 쉬워질 수도 있다"며 "그러나 일단 결정이 이루어지면 대규모 공동지원이 신속하게 이루어질 수 있고 지원 의사결정에 투명성도 높아질 전망이다"고 말했다. ◇ IMF내 발언권 확대 추진 아세안+3국은 또 국제금융질서의 축 역할을 하는 IMF내에서도 제몫 찾기에 본격 나섰다. 경제규모와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비해 턱없이 낮은 쿼터(IMF 지분율을 의미하며 투표권 비율을 나누는 기준이 된다)를 `긴급히` 재조정해 달라며 공식 요구한 것이다. 특히 이번 합의에는 한국 중국 일본 3국의 입김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을 비롯한 3국의 경우 경제규모에 비해 IMF내 발언권이 유난히 낮았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의 쿼터는 고작 0.76%에 불과하다. 그러나 경제규모 등을 감안해 재조정하면 1.842%로 크게 높아진다. 또 일본이 6.229%에서 8.472%로, 중국이 2.980%에서 4.761%로 대폭 확대된다. 이밖에 싱가포르, 태국, 말레이시아도 역내국가중 발언권이 크게 높아지는 나라다. 반면 2차 세계대전 승전국이라는 후광으로 쿼터비율이 높았던 나라들은 일제히 비중이 낮아진다. 최대 발언권을 가진 미국이 17.382%에서 16.623%로, 러시아가 2.782%에서 1.301%로, 프랑스가 5.025%에서 4.654%로 떨어진다. 인도네시아, 파키스탄, 인도, 호주, 사우디아라비아 등도 쿼터 비율이 하락해야 할 나라에 속한다. 발언권 재조정은 각국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사안이라 쉽게 성사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또 조정이 이루어진다고 해도 여전히 미국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최 국장도 "상당기간 진통이 필요한 문제"라며 "앞으로 실무자급을 중심으로 장기간 협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시아가 국제금융질서에서 연합세력을 구축하고 `힘`을 과시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상징적인 의미는 매우 큰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 아시아통화기금(AMF) 초석 놨다 아시아국가들은 IMF내 영향력확대와 함께 궁극적으로는 아시아통화기금(AMF) 설립을 장기 목표로 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97년 외환위기 이후 IMF의 지원을 받은 것을 계기로 사실상 미국이 주도하는 IMF의 `명령`을 받는 듯한 굴욕적인 모습에서 탈피해 아예 자체적으로 통화 및 금융협력기구를 만들겠다는 심산이 깔려 있다는 해석이다. 아세안 국가들이 통화스왑을 맺기 시작한 것은 외환위기 이전이고 2000년 이후 한국 등 동북아 3국이 참여하면서 치앙마이 발의로 확대됐지만 실제로는 효과를 장담할 수 없었다. 스왑규모가 작을뿐더러 각국이 자체적으로 지원여부를 결정해야 했다. 특히 IMF가 금융위기로 규정짓고 자금지원에 나서야 동반 지원이 가능했다. 회원국들은 그러나 이번 합의를 통해 IMF와 연계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규모를 스왑계약규모의 10%에서 20%로 확대했다. IMF에서 금융위기라고 판단하지 않아도 지원이 가능해진 것이며 앞으로 상황변화에 따라 그 비중이 더 높아질 공산이 크다. 공동지원도 마찬가지로 해석된다. 비록 의사결정기구가 별도로 생기는 것은 아니지만 국가대 국가의 쌍방계약에서 벗어나 스왑계약을 네트워크로 연결해 다자주의(multilateralization)를 표방했기 때문이다. 기구만 없단 뿐이지 IMF의 지원방식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일본이 주창한 아시아 채권시장 발전을 위한 국가간 정보공유나 중앙은행들이 달러표시 채권을 대상으로 하는 아시아채권펀드1(ABF1)에 이어 역내 통화표시채권을 투자대상으로 하는 아시아채권펀드2(ABF2)를 설립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정부에서도 AMF의 창설 가능성을 부인하지 않고 있다. 최 국장은 "AMF 창설이 이번 회의에서 의제로 다뤄지지 않았다"면서도 "통화스왑 확대가 장기적으로는 AMF 창설을 위한 초석을 세운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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