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록의 미식로드] 칼칼한 국물로 석탄가루와 애환까지 '후루룩'

동료 광부와 함께 나눠먹던 음식
지금은 태백을 대표하는 음식
고춧가루 줄이고 채소 양 늘려
태백 시내에 10여곳에서 팔아
  • 등록 2020-09-04 오전 6:00:00

    수정 2020-09-04 오전 6:00:00

서울닭갈비의 물닭갈비


[이데일리 강경록 기자] 강원도 태백. 이 고원의 도시를 찾는다면 반드시 맛보아야 할 음식이 있다. 광부의 음식에서 태백을 대표하는 음식이 된 ‘물닭갈비’다. 지금은 태백닭갈비로 불린다. 1980년대 탄광산업이 성행하던 시절, 태백에는 50여개 탄광이 있었다. 광산 근처에만 가도 먹고사는 건 해결된다는 말에 고향을 옮겨온 이들이 자리를 잡은 곳이 바로 태백이다. 이들의 거친 삶을 위로했던 음식이 바로 물닭갈비다.

그만큼 태백 사람들에게는 추억의 음식이다. 일반적인 닭갈비와는 조금 다르다. 양념한 닭고기에 육수를 부어 끓여 물닭갈비라는 이름이 붙었다. 생사고락을 함께한 동료들과 함께 나눠먹기 위해 국물을 더 해 만들었다는 것이다. 여기에 고춧가루를 조금 줄이고, 채소의 양을 늘린 것도 물닭갈비의 특징이다. 이 요리법은 태백에서 식당을 하던 어느 아주머니가 개발했다고 전해진다. 확실히 커다란 철판에 볶아 먹는 춘천닭갈비에 비해 기름기가 적고 맛이 담백하다.

탄광 근로자들은 하루 일과가 끝나면 삼삼오오 닭갈빗집으로 찾아들었다. 석탄가루를 마셔 칼칼해진 목을 가라앉히는 데는 국물을 넣고 끓여낸 닭갈비가 제격이었다. 닭고기가 익을 때까지 허기진 배를 달랠 수 있도록 국물에 채소와 면을 곁들여 냈다. 얼큰한 국물이 있는 닭갈비와 소주 한잔. 이것만으로도 태백 광부들에게 안성맞춤이었다.

물닭갈비에는 배추, 깻잎, 냉이 등 각종 채소가 들어간다. 그중 향긋한 냉이가 여러모로 닭고기와 잘 어울린다. 태백 시내에 자리한 태백닭갈빗집에서는 3월 초부터 5월까지 닭갈비에 태백 냉이를 쓴다. 겨우내 태백의 산과 들에서 자란 냉이가 들어가면 향도 좋고 맛도 좋아진다. 10월부터는 하우스에서 재배한 냉이를 쓴다.

그렇게 광부의 애환을 달래던 물닭갈비가 이제는 관광객들도 즐기는 단골 메뉴가 됐다. 원조는 황부자네 닭갈비, 김서방네 닭갈빗집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모두 30여 년 전부터 광부들에게 닭갈비를 팔아온 오랜 식당이다. 닭갈비를 조리하는 방식은 같지만, 음식점마다 양념을 재는 비법과 맛이 약간씩 다르다. 구수한 맛이 도는 집이 있는가 하면, 얼큰한 맛이 더하거나 덜한 집이 있다. 닭고기와 채소, 사리를 모두 건져 먹은 후 마무리로 닭갈비 국물을 넣고 철판에 밥을 볶아 먹는 것은 어느 식당이나 같다. 이 또한 태백닭갈비의 별미다. 현재 태백 시내에서 닭갈비를 메뉴로 하는 음식점은 10여 곳에 이른다.

서울닭갈비의 물닭갈비 볶음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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