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2년을 보상하라" vs. "군에서 인생을 배웠다"

예비역들이 말하는 ''내 인생에서의 군대''

  • 등록 2005-11-13 오후 3:06:16

    수정 2005-11-13 오후 3:06:16

[오마이뉴스 제공]
▲ 5일 밤, 친구들과의 군대얘기가 자못 진지하다. 모두 예비역2년차로 왼쪽부터 최낙영, 용동원.
ⓒ2005 안윤학
GP 총기난사 사건, 28사 공포탄 사건, 훈련병 인분 사건, '멸치장군' 신 준장 폭행사건, 그리고 얼마 전 전 국민들을 안타깝게 했던 고(故) 노충국씨 사건에 이르기까지, 최근 세간에 가장 뜨거운 화두는 아마도 '군대'인 듯하다.

사실 '군대얘기'라면 예비역 남자들이 모이는 술자리에선 언제나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안주거리다. 예비역들은 "3년도 안되는 경험으로 30년 동안 재미있게 말할 수 있는 게 군대"라고 말한다. 그렇기에 "술자리에서 술술 나오는 예비역들의 이야기에만 귀를 기울였어도 최근의 불상사는 터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한 선배의 자조 섞인 말도 꽤 설득력 있게 들린다.

지난 5일 밤, 오랜만에 모인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도 군대얘기는 뜨거운 감자였다. 최근 군대에서의 불행한 사건들 때문이었을까. 재미난 에피소드들은 잠시 모습을 감췄고 진지한 이야기들이 오고갔다.

"군대 가면 철든다...하지만 2년은 너무 길다"

"군대를 갔던 게 정신적인 측면에서는 분명 도움이 됐지."

먼저 입을 연 것은 부대 특성상 마치 수험생들처럼 하루 3~4시간씩 자면서 군 생활을 했다는 김태욱(25, 예비역 2년차)씨. 그는 힘든 일들을 경험해 봄으로써 인내심, 자신감, 집중력, 의지력 등을 기를 수 있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가장 많이 배웠던 것은 '꺼진 불도 다시 보자'였어. 무슨 일을 하든지 대강, 대충 하는 게 없어지고 반드시 끝마무리를 제대로 하게 되었던 거지."


▲ 전경출신 용동원. 미대를 다니는 그는 군생활이 사회생활을 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2005 안윤학
미대를 다니고 있는 용동원(25, 예비역 2년차)씨도 김씨의 의견에 맞장구를 쳤다. 그는 "비록 군대에서의 사고방식이 발상의 전환을 가로막고 창의력을 떨어뜨리기도 했으나 사회생활을 하는 데에는 좋은 경험이 됐다"고 말했다.

"하루하루 지나면서 자아성찰의 시간도 가져보고, 가족들이나 친구들의 소중함도 새삼 깨닫게 됐어. 계급이 오를수록 리더십이나 추진력을 자연스레 체득해 나가기도 했지. '군대가면 거지부터 왕까지 다 해 본다'는 말이 있듯 경험의 폭을 넓혔던 것 같아. 또 무슨 일을 하게 되든지 전보다 더 적극적으로 덤벼들게 되더라고."

그러나 혈기왕성하고 '머리가 잘 돌아가는' 젊은 친구들에게 2년이란 시간은 결코 만만치가 않다.


▲ 최낙영. 병장이라고 다소 풀어헤친(?) 모습이 보인다.
ⓒ2005 안윤학
최낙영(25, 예비역 2년차)씨는 '군대 갔다 오면 철든다'는 말이 부분적으로 맞을 수도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군대는 기회비용이 너무나 큰 곳"이었다고 말한다.

"2년이나 자유를 박탈당한 채 폐쇄적인 공간에서 희생하는 것 치고는 얻는 게 거의 없다고 봐. 다양한 경험을 꼭 군대에서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복무기간은 딱 6개월 정도면 적당하지 않을까 싶어."

'군대가 인생에 도움이 됐다'고 생각하는 친구들도 대부분 "군대는 1년이면 충분하다"고 입을 모았다. 그들은 또 고참이 될 수록 하는 일이 줄어들어 "1년쯤 지나니까 정신적인 측면에서는 오히려 망가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고 자평하기도 했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 곳에서 2년 살다보니 깡이 생기더라"

7일 오후 점심시간 무렵. 요즘 한창 입사시험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99학번 '꽉 찬' 복학생들에게도 군대 얘기는 빠질 수 없는 레퍼토리다.


▲ 이영민(예비역3년차). 해병대 출신인 그는 더 이상 사회가 무섭지 않다!
ⓒ2005 안윤학
해병대 출신인 이영민(26, 예비역 3년차)씨는 군 생활이 큰 도움이 됐다고 말한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 곳에서 2년을 살다보니 사회생활이 오히려 쉽게 느껴진다"는 것.

"군대에서 가끔씩 훈련 나올 때 주민들에게 김치를 구걸하기도 했는데, 미국에서 1년간 공부를 할 때도 한인교회를 찾아다니면서 똑같이 행동하게 되더군. 돈이 부족하니 그럴 수밖에. 군대 갔다 오지 않음 그런 '깡'이 어디서 생기겠어? 어려운 난관에 봉착할 때마다 '이보다 더한 일도 했는데 그 까짓 것'하며 자신감이 생겼지."

그러나 그는 "학업에 부담이 느껴질 때면, 뒤처진 2년이란 시간이 아깝게 느껴질 때도 있지"라고 털어 놓았다.

다양한 아르바이트 경험을 가지고 있는 정시면(26, 예비역 3년차)씨도 "군대가 사회적응을 하는 데 큰 도움을 줬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그러한 장점도 '개인적인 차원'에 국한된다는 단서를 달았다. 최근 군 관련 사건들이 "사회는 빠르게 변화하는 데 군대는 변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했던 것"이라는 것.


▲ 안재완(예비역3년차). 선배는 과방에서도 항상 기타를 들고 있었다. 군대에서도 변함없는 모습
ⓒ2005 안윤학
'군대는 추억이다'라며 중립(?)을 선언한 안재완(26, 예비역 3년차)씨는 '체제 문제'만큼은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군은 월급도 올리고 의료·복지 시스템도 향상시키는 등 전반적인 체질개선에 나서야 해. 모병제로 가는 것도 중요하지. 모병제라면 사병들이 지휘관들 취향에 따라 '오늘은 나무를 심고 내일은 꽃을 심는' 일을 하며 아까운 젊은 날과 전투력을 낭비하겠어? '멸치장군'도 모병제로 가면 없어질 거야."

한편 김모(26, 예비역 3년차)씨는 군대에서 배운 것이라고는 "욕과 담배 뿐"이라며 "욕으로 10분간 노래할 수 있는 친구도 있다"고 쓴 웃음을 지었다. 그는 군대 동료들의 연락처를 자신의 핸드폰에 '잃어버린 2년'이란 이름의 폴더를 만들어 저장시켜놓고 있었다.

"2년이면 하고 싶은 공부를 맘껏 했겠지. 제일 괴로웠던 때는 생각이 단순해져가고 있다는 걸 느낄 때였어. 사회에 나와 적응할 때도 힘들던 걸. 굳은 머리로 다시 학업을 시작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 정신 교육할 때도 힘들었어. 내 사상과는 다른 획일적인 생각들이 주입될 때, 속으로는 '이건 아닌데'하면서도 시험 볼 때는 나도 모르게 100점을 향해가고 있었지."


▲ '잃어버린 2년'. 이 폴더는 김모(예비역3년차) 선배의 군대 동료들을 위한 것.
ⓒ2005 안윤학
전투경찰 대대 의무병 출신인 김모씨는 최근 고 노충국씨 사건으로 드러난 군 의료체계의 문제점에 대해서도 짤막한 경험담을 들려주었다.

"우리 의무병들 사이에서는 '배 아프면 소화제, 머리 아프면 타이레놀'이란 말이 있었지. 단순하게 '부작용 없는 약'만 주는 거야. 일단 그렇게 아픈 사람 약 주고, 계속 아프면 군의관에게 가게 하거나 외진을 받게 하는 거지."

사회에서의 군필자와 미필자의 차이


▲ 김보민(예비역5년차). "일 시켜보면 예비역들이 빠릿빠릿하죠."
ⓒ2005 안윤학
제대 후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 선배들이 보는 군필자와 미필자는 어떤 모습일까. 서울 강서구의 한 종합할인매장에서 식품 코너와 직원들을 관리하고 있는 김보민(29, 예비역 5년차)씨는 "그래도 군대 갔다 온 사람이 더 낫다"고 말한다.

"아르바이트 하는 학생들 일 시켜보면 군대 갔다 온 친구와 그렇지 않은 친구 간에는 확실히 차이가 나. 대체로 예비역들은 일도 더 열심히 하고 책임감 있는 모습도 더 많이 보여주지. 인간관계 맺기도 더 수월하고."

김씨는 개인적으로 군대에서 배운 점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제대하고부터는 가족에게 손을 안 벌렸던 것 같아. 스스로 번 돈으로 생활하려고 열심히 일했지. 군대 가기 전에 흥청망청 돈을 낭비하는 습관도 사라졌었지."

그러나 대대장 공관병(당번병) 출신의 강우성(28, 회사원·예비역 5년차)씨는 "군대에서 배운 거라고는 과일 깎고 장식하는 것과 난에 물주고 잎사귀 닦는 것밖에 없었다"며 "군대는 백해무익했다"고 말한다.

"군대 갔다 와서 일 더 잘한다는 거는 선입견이다. 안 갔다 와도 일 잘하는 젊은 친구들 많더라. 2년 동안 졸업하고 일하며 경력 쌓는 게 더 낫다. 군대가면 철든다고? 그것도 입대해서 6개월이지 1년 정도 지나면 '도로 아미타불'이더라. 아참! 높은 사람 비위 잘 맞추는 것도 배운 거라면 배운 건가?"

'독' 같은 군대를 '약' 같은 곳으로 바꾸려면?

인터뷰를 했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군대에 바란 것은 '복무기간 단축'과 군대 내에서의 '충분한 자기 계발 시간'으로 정리된다.

'군대가 전반적으로 유익했다'고 본 예비역들도 대부분은 "안 갈 수만 있다면 안 가는 게 좋다"라고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24개월이란 긴 시간 동안 사회와 격리된 채 하고 싶은 말, 하고 싶은 일 참아가며 시간을 죽이고 싶지 않다는 거다.

김보민씨는 "군대 가서는 과대망상증을 조심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군대가 사회와 격리되어 있고 자기계발을 전혀 할 수 없는 곳이다 보니 자칫 자기 능력 이상의 허황된 목표를 설정하게 된다는 것. 막상 제대 후 사회에 나와 그 목표가 실현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닫고 쉽게 좌절한다는 설명이다.


▲ 영화 < DMZ, 비무장지대 > 한 장면. 대한민국 젊은이들에게 군대는 '약'이 될 수도 '독'이 될 수도 있는 존재다.
ⓒ2005 이규형 시네마
또 예비역들은 현재의 대한민국 군대에 대해 '독'이 될 수도, 때론 '약'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영민씨는 그 고되다던 해병대를 갔음에도 불구하고, 군대에서 독서를 많이 할 수 있었고 또 한자 및 컴퓨터 관련 자격증도 충분히 공부할 수 있었다고 한다. 주말이면 넉넉한 휴식시간이 주어졌고 또 '착한' 중대장이 구민회관에서 직접 책을 빌려다 주기도 했다고. 반면 김태욱씨는 고3 수험생보다도 더 혹독한 시간을 보냈다. 그는 부대 특성상 입대 후 거의 1년 동안은 하루 3~4시간만을 자면서 근무와 작업을 반복하다시피 했다고 한다.

모두에게 다 똑같이 주어진 소중한 2년, 무엇이 이런 차이를 만들었을까. '군대에서는 줄을 잘 서야 한다'는 말이 있다. 흔히 조금 덜 힘든 곳으로 자대가 배치되거나 간부 혹은 선임을 잘 만나야 군 생활이 잘 풀린다는 말이 이를 뒷받침한다. 결국 답은 사병 생활의 표준화다.

"언제쯤 '국방의 의무가 아닌 국방의 권리'라고 생각할 날이 올까"라는 예비역들의 말이 허투로 들리지 않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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