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설치는 대한민국… 인구 30%가 수면장애

20대 여성 수면장애 7년새 6.7배 증가
  • 등록 2009-09-28 오전 8:45:37

    수정 2009-09-28 오전 8:45:37

[조선일보 제공] 보험 매니저 김형승(29·경기도 수원시)씨는 매일 밤 침대 옆에 놓인 기계에 연결된 마스크를 쓰고 잠자리에 든다. 숙면을 도와주는 '양압기'라는 장치다. 그는 지난 2006년 해외 생활을 하는 동안 체중이 18㎏이나 불었고 그때부터 많이 자도 아침에 몸이 무겁고 낮에 조는 경우가 많았다. 김씨는 '술자리가 많고 스트레스를 받아 피로가 누적됐나 보다'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병원은 이름도 생소한 '수면 무호흡증' 진단을 내렸다.

세계적인 '수면부족국' 대한민국에선 오늘도 많은 사람이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내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수면무호흡증·불면증 등으로 잠을 제대로 못 자는 '수면장애' 환자가 2001년 5만1000명에서 지난해엔 22만8000명으로 7년 사이 4.5배 증가했다.

전문가들은 이마저도 저평가된 수치라고 말한다. 홍승봉 삼성서울병원 교수(신경과)는 "하지 불안증후군(잘 때 다리를 떠는 것), 기면증(일상생활 중 갑자기 잠이 드는 것) 등을 합치면 전체 인구의 30%가 수면장애를 앓는 것으로 추산된다"고 말했다.
 

 
안 그래도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적게 자는 편인 나라다. 지난 5월 OECD 발표에 따르면, 18개 조사대상 회원국(평균 수면시간 8시간22분) 중 한국인의 수면시간이 7시간49분(영유아 포함)으로 가장 적었다.

성인의 약 70%는 밤 12시 이후에 잠자리에 들고, 평균 6시간18분(권장수면시간 7시간30분)을 잔다는 조사도 있다(고려대 안산병원 수면센터 2008년 조사). 하루 3~4시간만 자는 유명인사를 칭송하며 '잠 줄이기'를 근면성의 상징처럼 여기는 분위기도 있다.

하지만 만성적 수면부족은 집중력·기억력 저하를 유발해 교통사고나 학습·업무장애를 낳고, 비만·당뇨병·심장질환·우울증 발생률을 높인다(홍승봉 교수). 역사적으로는 엑손발데즈 기름유출사건(1989년), 체르노빌 원자력발전 사고(1986년) 등이 수면장애 때문에 발생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앞서의 김형승씨네는 가족 전체가 수면장애에 시달리고 있다. 아내(28)는 기면증, 아버지(59)는 수면무호흡증 진단을 받았다. 생각보다 많은 주변 사람들이 수면장애에 시달리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전했다.
 

◆성인 남성 25%가 수면무호흡증

수면무호흡증은 드문 질병이 아니다. 코를 드르릉 골다가 순간 '학'하고 숨을 멈추고 다시 '푸'하고 숨을 내쉬는 것이 바로 수면무호흡증이다. 1시간에 5회 이상 숨을 쉬지 않으면 의학적 진단이 필요한 환자에 해당되고, 성인 남성 4명 중 1명꼴로 이런 증상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동선 숨수면센터 원장은 "체격이 좋고 목이 굵은 남성, 턱 골격이 작은 경우 등에서 수면무호흡증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박 원장은 "방송인 강호동씨와 유재석씨가 전형"이라며 "이들이 실제 어떤 진단을 받았는지 모르겠으나 TV 프로그램에 나오는 두 사람의 수면습관을 보면 수면무호흡증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수면무호흡증은 해부학적으로 상기도(코에서 목까지 이르는 공간)가 좁은 사람에게 자주 나타나고, 비만과도 상관관계가 있다. 박 원장은 "만성적으로 수면에 어려움을 겪게 되면 포만감을 느끼게 하는 '랩틴' 호르몬이 떨어지면서 식욕을 억제할 수 없게 된다"고 말했다. 수면 전이나 잠자는 동안 다리를 가만두지 못하거나 근질근질한 느낌, 쿡쿡 쑤시는 통증 등의 증상이 나타나는 하지불안증후군 환자는 성인의 7.5%이고, 일상생활하는 동안에도 자꾸 잠이 드는 기면병 환자는 4만명 정도로 추산된다.

수면부족은 일상생활이나 건강에 악영향을 줄 가능성이 크다. 단기적으로는 기억력이 감퇴하고, 머리가 맑지 않으며, 대처능력이 떨어지는 증세로 연결된다. 박 원장은 "장기적으로는 고혈압·부정맥·당뇨·뇌졸중·심정지·심근경색 등 2차적인 합병증이 발생할 가능성이 3~8배 정도 높다"고 말했다.




◆적게 자기를 권하는 사회

건보공단 조사에 따르면, 수면장애 환자 중에 특히 20대 여성의 증가세가 두드러져 2001년 대비 2008년 환자 수가 6.7배 이상 늘었다. 박상진 건보공단 일산병원 교수(정신과)는 "경제난과 취업난에 따른 불안과 우울증·불안장애·스트레스 등으로 수면장애가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서울 송파구에 사는 정모(37·인쇄업)씨는 최근 '꿀맛 같은 잠'의 중요성을 절실히 깨닫고 있다. 지난 5년간 불면증에 시달려오다 약물치료를 받기 시작한 후부터다. 정씨는 "경제적 문제와 일의 스트레스로 점점 밤에 잠을 이루기가 어려웠었다"며 "만성두통과 집중력 감퇴, 소화 장애 등이 생기면서 악순환이 계속됐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씨처럼 적극적으로 불면증 치료를 받는 사람은 많지 않다. 실제 불면증 치료를 받으러 오는 사람들은 전체 환자의 5%에 불과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잠을 잘 못 자는 것'을 질병이라고 여기지 않고, 오히려 적게 자는 것을 좋게 생각하는 사회 분위기가 여기에 한몫하고 있다.

미국에선 오래전부터 '수면의학'이 하나의 산업으로 성장해 왔다. 미국의 일부 주는 트럭 운전사나 기관사가 자격증을 유지하려면 수면장애가 없다는 진단을 받도록 하기도 한다.

수면장애가 의심될 경우에는 이비인후과·신경과·정신과 전문의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일부 대학병원은 수면센터를 운영하고 있고, 개업의 사이에서도 이비인후과를 중심으로 4~5년 전부터 수면클리닉이 속속 생겨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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