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확대경]MP3와 가상화폐의 평행이론

  • 등록 2017-12-19 오전 6:06:06

    수정 2017-12-19 오전 6:06:06

[이데일리 피용익 기자] 1948년 처음 등장한 롱-플레잉 레코드(LP)는 1980년대까지 음반 시장의 주류를 이뤘다. 그러나 1982년 컴팩트 디스크(CD)가 상용화되자 LP는 급속히 자취를 감췄다. LP의 자리를 꿰찬 CD의 전성기도 오래 가지 못했다. 반영구적인 음반으로 각광받던 CD를 한순간에 시장에서 몰아낸 것은 디지털 음악 파일인 엠피쓰리(MP3)였다.

우리나라에선 2000년대 초반부터 MP3가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그동안 LP나 CD를 통해 음악을 접하던 대중은 새로운 미디어의 등장에 환호했다. 음반을 사러 레코드 가게에 가지 않아도 컴퓨터만 있으면 쉽고 빠르게 음악을 접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MP3에 회의적인 사람들도 있었다. 디지털 파일은 실체가 없기 때문에 음반으로 인정하기 어렵다는 주장이 잇따랐다. 컴퓨터가 고장나면 MP3 파일이 사라지는 문제를 지적하며 불안해 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디지털 파일의 특성상 음원 손실 없이 복제가 이뤄져 저작권을 침해하는 문제도 속속 발생했다.

그로부터 20년 가까이 흘렀다. 그동안 디지털 음악 시장은 빠르게 성장했다. MP3는 LP는 물론 CD보다 훨씬 많이 유통되며 음반 시장의 구도 자체를 바꿔놓았다. 아예 MP3를 저장하지 않고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를 이용해 음악을 듣는 사람도 많아졌다.

갑자기 MP3 얘기를 꺼낸 것은 최근 주목받고 있는 암호화폐와 닮은 점이 많아서다. 암호화폐는 미래의 통화가 될 것이라는 가능성이 부각되며 투자자들을 끌어모으고 있지만, 이같은 현상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실체가 없는 가상화폐를 돈으로 인정해야 하느냐는 지적이 대표적이다. 암호화폐 거래소가 해킹을 당하거나 폐업할 경우 투자한 돈은 어떻게 되느냐는 불안감도 존재한다.

그러나 암호화폐의 핵심기술인 블록체인은 4차 산업혁명의 대표적 신기술로 꼽힌다. 블록체인은 거래 정보를 기록한 일종의 장부다. 지금까지는 금융·물류·의료 등 데이터가 대형 서버 한 곳에 저장됐기 때문에 해킹이나 고장에 속수무책이었다. 이에 비해 블록체인은 데이터를 네트워크 사용자 모두에게 분산해 저장한다. 사용자 수만큼 복사본이 생겨난다고 보면 된다. 안전하고 투명하며 신속하다는 장점이 있다. MP3가 음반 시장의 구도를 바꿔놓았듯이 암호화폐는 지급·결제 시장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이 높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회재정부 장관이 “한편으로 보면 금융이나 거래에 있어서 혁신인 측면도 없지 않다”고 말한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신기술은 기대와 동시에 우려에 직면한다. 장점과 함께 부작용이 드러나기도 한다. 그러나 새로운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과도한 규제로 이어진다면 시대적 흐름에 역행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만약 정부가 저작권 침해 우려 때문에 MP3 이용 자체를 금지했더라면 한국은 음반 시장이 디지털로 변화하는 시대적 흐름에서 뒤쳐졌을 것이다. 암호화폐에 대한 규제 역시 도박이나 투기 같은 사회적 문제를 방지하는 선에서 최소한으로 이뤄져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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