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전원생활을 꿈꾸는 이들을 위한 조언

박원갑 KB국민은행 수석 전문위원
  • 등록 2023-11-28 오전 6:15:00

    수정 2023-11-28 오전 6:15:00

조지장식 필택기림(鳥之將息 必擇其林)이라는 옛말이 있다. 새조차 쉬려 할 때 반드시 숲을 고른다는 말이다. 미물인 새가 쉬는 곳까지 가리는데,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은 오죽하랴. 노후 들어 주거지 선택은 중차대한 문제이다. 유럽에서는 “은퇴 설계는 집에서 시작해서 집에서 끝난다”고 할 정도로 주거계획은 노후설계의 핵심이다. 은퇴하거나 나이가 들면 생활 범위가 집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흔히 70대는 70%, 80대는 80%의 삶이 주거지를 중심으로 이뤄진다는 말이 있다. 그렇다면 노후의 삶은 전원이 좋을까, 도심이 좋을까.

서울 목동 아파트에 사는 이형국(59·가명)씨. 은퇴후 미세먼지 없는, 공기 좋고 조용한 강원도 일대에 전원주택을 짓고 살고 싶지만, 막상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최근 그는 전원주택 용지를 고르기 위해 홍천과 춘천 일대를 다녀왔다. 하지만 주변에 쾌적한 환경만 보고 탈서울을 감행하는 게 옳은지 회의감이 생긴다. ‘평생을 대도시에서 부대낀 내가 한적한 시골 생활에 적응할 수 있을까.’ ‘혹시 나 자신이 이미 도시 생활의 편리성에 중독된 게 아닐까.’ 더욱이 아내의 시큰둥한 반응도 이씨의 고민이 깊어지게 하는 또 다른 이유다. 아파트 부녀회 간부로 활동하고 있는 사교적인 성격의 아내는 목동에서 벗어나는 것을 싫어하는 눈치다. 이씨는 “전원행은 내 행복을 위해 아내의 행복을 빼앗는 게 아닌지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이씨처럼 누구나 바쁜 도심을 떠나 평온한 전원의 삶을 즐기고 싶지만 많은 사람이 냉엄한 현실 앞에 갈등이 깊어진다. 설문 조사를 하면 나이 들어 전원생활을 하겠다는 응답은 높게 나타난다. 실제로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서 10명 중 6명이 ‘시골 또는 교외에서 전원생활을 하고 싶다’고 답했다. 하지만 언덕 위의 하얀 집에 살기 위해 막상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은 많지 않다. 연애와 결혼생활이 다르듯이 꿈과 현실은 엄연히 다르다. 전원 거주 의향이 높게 나타나는 것은 답답한 현실의 탈출구로써 전원생활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전원생활을 하겠다는 설문 조사의 응답이 실제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볼 때 전원의 꿈은 과대 계상된 셈이다.

요즘 중장년층은 이미 도시의 라이프스타일에 익숙해져 있는 데다 병원을 자주 이용해야 하는 나이 특성상 전원행이 많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은퇴가 늦어지면서 일자리를 쉽게 구할 수 있는 도심을 빠져나가기 어렵다는 분석도 없지 않다. 오히려 수도권이나 교외 지역을 선택하는 비율은 은퇴 이후 연령집단이 아닌 35~44세 집단에서 가장 높게 나타난다. 주위를 보면 절은 층의 전원행은 자녀들의 아토피 치유나 대안학교 교육 등의 목적이 많다.

도심과 전원의 중간 절충방안을 찾는 것도 현실적인 대안이 될 것 같다. 예컨대 대도시 안의 전원마을이나 전원형 아파트, 혹은 대도시 인근의 신도시에 거주지를 마련하는 방법이다. 이런 곳은 기반시설이 잘 갖춰져 불편함이 없는 데다 거주지 이동에 따른 문화적 충격이 덜하기 때문이다. 이런 곳은 태어나 한 번도 대도시를 벗어나 살아 본 경험이 없는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현실적인 노후 거주지가 아닐까 싶다.

전원행을 시도했던 일부 사람들은 쓰라린 실패를 맛본다. 이런 시행착오를 줄이는 방법은 무조건 부동산 매입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버리는 것이다. 부동산은 공산품처럼 반품이 쉽지 않다. 서둘러 집을 덜컥 짓기보다는 전세나 월세로 빌려 써본 뒤 매입 여부를 결정하는 게 현명하다. 실패에 따른 후유증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일종의 완충장치를 둘 필요가 있는 것이다. 시골 생활 적응에 실패, 벗어나고 싶어도 이미 사들인 부동산의 매몰 비용에 대한 부담으로 진퇴양난에 빠질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함부로 선투자하는 것은 신중할 일이다. 내 것이 있어야 성공적인 전원생활이 될 것이라는 선입관부터 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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