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원전 폐기물 시설 포화 코앞...방폐장 특별법 말뿐인가

  • 등록 2024-11-19 오전 5:00:00

    수정 2024-11-19 오전 5:00:00

국내 원자력발전소 가운데 최초로 1978년 상업운전에 들어간 부산 기장군 고리원전의 사용후 핵연료(고준위 폐기물) 저장시설 포화율이 90%를 넘어섰다. 한국수력원자력에 따르면 고리원전에 쌓인 고준위 폐기물이 저장시설 용량 대비 지난해 말 89.1%에서 올해 9월 말 90.8%로 늘어났다. 이런 추세라면 8년 뒤인 2032년에 100%에 이를 전망이다. 고리원전에 앞서 전남 영광군 한빛원전은 2030년, 경북 울진군 한울원전은 2031년에 완전 포화된다. 경북 경주시 월성원전과 신월성원전도 각각 2037년과 2042년에 완전 포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고준위 폐기물은 현재 원전 내 임시 저장시설에 쌓아두고 있다. 이는 임시 저장시설이 완전 포화되기 전에 중간 저장시설로 옮겼다가 영구 저장시설로 다시 옮겨야 한다. 하지만 중간 저장시설과 영구 저장시설 둘 다 건설이 지연돼 임시 저장시설 완전 포화를 바라보고만 있어야 하는 상황이다. 완전 포화로 더 이상 폐기물 저장이 불가능해지면 원전 가동을 멈출 수밖에 없다. 그러면 원전 산업이 큰 타격을 입을 뿐 아니라 에너지 대란이 일어날 수도 있다. 원전 수출에 차질이 빚어질 우려도 있다.

중·저준위 폐기물 저장시설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경북 경주시에 건설돼 가동에 들어갔지만, 고준위 폐기물 저장시설은 아직 입지 선정조차 못 하고 있다. 1980년대 이후 정부가 경북 울진·영덕군을 비롯해 모두 9곳에서 입지 선정을 시도했으나 주민 반대에 부닥쳐 번번이 실패했다. 이에 2016년 이후에는 특별법 제정을 통한 신속하고 효율적인 고준위 폐기물 저장 시설 건설이 논의돼왔다. 일반법에 앞서 적용되는 특별법으로 주민 보상을 강화하고 관련 행정력을 집중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국회에 발의된 관련 법안들은 처리되지 못하고 잠만 자고 있다. 정치인들이 선거에서의 유·불리를 따지며 미적거려왔기 때문이다.

이래서는 ‘원전 강국’은커녕 ‘원전 유지’도 어렵다. 국회가 21일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법안소위를 열어 폐기물 저장시설 관련 법안을 심의할 예정이다. 이번에야말로 여야가 입법 논의를 확실하게 진전시켜야 한다. 여기서 더 눈치를 보고 꾸물거리는 것은 무책임한 임무 해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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