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국회 손놓은 형법 개정, 학자들이 직접 나섰다[만났습니다]②

■만났습니다- 한상훈 한국형사법학회장
72명 형법 전문가들 1년간 머리 맞대고 논의
올해 형법총칙, 내년 형법각칙 개정안 마련
디지털 환경 변화·특별법 정비 등 반영 기대
  • 등록 2024-11-20 오전 5:00:00

    수정 2024-11-20 오전 5:00:00

[이데일리 성주원 기자] “정부와 국회가 해야 할 일을 못하고 있어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습니다. 시급한 형법 개정을 위해 학자들이 직접 나서기로 했습니다.”(한상훈 한국형사법학회장)

한국형사법학회가 최근 형법 전면 개정안을 마련했다. 범죄론과 형벌론을 다루는 형법총칙의 개정안을 올해 완성한 데 이어 내년 1년 간 개인적 법익, 사회적 법익, 국가적 법익과 관련된 개별 범죄를 망라한 형법각칙의 개정안까지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한국형사법학회는 형법전면개정연구위원회를 5개 분과로 구성해 각각 형법총칙(범죄론, 죄수론·형벌론)과 형법각칙(개인적·사회적·국가적 법익에 대한 죄)에 대한 형법전면개정안 마련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개별 분과에서 검토한 결과는 확대총괄회의를 통해 다른 분과위원들도 함께 검토한다. 사진은 지난 8월 확대총괄회의에 참석한 위원들 모습. 앞줄 왼쪽부터 시계반대방향으로 노수환 성균관대 교수(5분과위원장), 한상훈 연세대 교수(1분과위원장), 황태정 경기대 교수(3분과위원장), 하태인 경남대 교수(3분과위원), 이근우 가천대 교수(5분과위원), 최준혁 인하대 교수(5분과위원), 김혜경 계명대 교수(3분과위원), 홍승희 원광대 교수(3분과위원), 안성조 제주대 교수(1분과위원), 김봉수 전남대 교수(5분과위원). 한국형사법학회 제공.
낙태죄, 비동의간음죄 등 사회적 쟁점에 대한 논의가 주목된다. 한상훈 한국형사법학회장(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은 19일 “낙태죄의 경우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에도 후속 입법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생명권과 여성의 신체결정권을 극단적으로 대립시키지 않고 적절한 합의점을 찾는 방향으로 개정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디지털 성범죄 증가와 함께 논의가 활발해진 비동의간음죄도 개정 대상이다. 현행법상 성폭력 범죄가 여러 특별법으로 분산돼 있어 체계적 정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전자화폐, 모바일 신분증 등 디지털 환경 변화도 개정안에 반영된다. 현재 판례는 이미지 파일 형태의 문서는 형법상 ‘문서’로 인정하지 않고 있어 법적 공백이 발생하고 있다.

한 회장은 “1980년대 복사문서가 등장했을 때처럼, 디지털 문서도 형법에 포함시킬 시점”이라며 “전자문서와 전자유가증권 개념을 새롭게 도입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직권남용죄의 경우 현행법은 ‘직권’이 있는 경우만 처벌하지만, 개정안은 ‘지위 남용’까지 처벌 대상에 포함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피의사실공표죄도 개정이 필요한 조항으로 꼽힌다. “수사기관이 자신들의 행위를 수사하고 기소해야 하는 상황이라 사실상 사문화됐다”고 한 회장은 설명했다.

그는 이어 “각종 특별형법에 흩어져 있는 처벌 조항들을 최대한 형법전으로 통합할 방침”이라면서도 “정보통신망법처럼 전문적 용어와 절차가 필요한 경우는 별도 존치가 불가피하다”고 덧붙였다.

한국형사법학회는 올해 완성한 총칙 개정안에 이어 내년까지 각칙 개정안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개정안이 나오면 입법청원을 통해 국회에 제출하고, 여야 의원들을 설득해 입법화를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한상훈 한국형사법학회장(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이 이데일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 김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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