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당장 재벌 규제를 전면 개편할 경우 시장에 큰 혼란이 발생할 수 있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IT기업 분류..고객예수금도 포함해 공정자산 계산
인수위 경제1분과는 24일 정부세종컨벤션센터에서 공정거래위원회, 기획재정부로부터 업무보고를 받는다. 인수위 측은 이번 업무보고에서 재벌규제 전반에 관해 집중적으로 파고들 계획이다. 국민의힘 핵심 관계자는 “윤석열 정부가 규제 완화 등을 통해 기업의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하겠다는 의지가 강하다”면서 “인수위가 업무보고 사전 조율과정에서도 모호한 동일인 규정부터 대기업집단(재벌)규제 문제점을 집중적으로 질의한 것으로 안다. 오늘 업무보고에서도 주요 쟁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인수위 측은 암호화폐거래소 대기업집단 지정과 관련해 부정적인 입장인 것으로 전해진다. 공정위는 오는 5월1일 암호화폐거래소를 운영하는 두나무와 빗썸코리아를 대기업집단으로 지정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
공정위는 대기업집단의 공정자산이 5조원 이상이면 공시대상기업집단으로 분류하고 각종 공시의무와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씌운다. 10조원 이상이면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으로 분류하고 상호·순환출자 금지, 채무보증금지, 금융보험사 의결권 제한 등 보다 강도 높은 규제를 적용한다. 자산규모가 규제의 주요 기준점이다.
은행과 증권 등 금융 보헙업의 경우 자본금 또는 자본총계(자본금+잉여금) 중 큰 것을 공정자산으로 분류한다. 고객예수금은 고객돈인 만큼 공정자산으로 분류하지 않고 순수 자본총계만 공정자산으로 계산한다.
업계 관계자는 “고객 예수금은 고객 돈이라 새로운 투자자금으로도 쓸 수 없기 때문에 은행, 증권처럼 금융보험업으로 분류돼야 하는데, IT기업이라 역차별을 받게 됐다”며 “법이 시장과 괴리됐다”고 꼬집었다.
이 같은 규제 방식은 과거 재벌의 `경제력 집중`을 막기 위해 설계된 목적과 한참 벗어나 있다. 과거 많은 대기업들은 친족을 중심으로 계열사를 만들고 상호·순환출자, 내부거래 등 ‘선단식 경영’을 통해 경제력을 집중하는 방식으로 기업을 키우고 총수일가의 부를 축적해 왔다. 특히나 무리한 `문어발식 확장`으로 생태계가 망가지는 폐해가 나타나자 1987년 재벌 규제가 도입됐다.
목적과 어긋난 규제...투자자 보호책은 금융위 소관
하지만 이런 규제는 과거 대기업과 다른 형태의 지배구조를 가진 네이버 등 IT 대기업의 등장 등으로 ‘녹슨 칼’이 되고 있다. 이들 IT기업의 지배구조와 의사결정은 과거 대기업집단과 달리 총수가 아닌 이사회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는데다 부당지원 및 일감몰아주기나 상호·순환 출자 등 과거 폐해가 나타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재벌 규제를 적용하기보다는 시장지배적 지위를 활용해 새로운 플레이어를 막는 행위나 각종 불공정거래 행위 등을 포괄한 ‘플랫폼 갑질’ 문제에 좀 더 집중하는 게 글로벌 트렌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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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착오적 규제` 적용에 두 업체는 대기업집단 지정이 유력한 상황에서 동일인(총수)의 특수관계인(6촌이내 혈족, 4촌이내 인척) 수백명을 대상으로 주식소유현황 등 자료를 수집하는 데 애를 먹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공정위는 사실상 집단을 지배하는 동일인을 지정한 이후 특수관계인과 임원 등을 중심으로 계열사 범위를 확정하기 때문에 관련 자료를 제대로 제출하지 못하면 최악의 경우 동일인이 고발을 당할 수 있다. 재계 관계자는 “암호화폐거래소에 재벌 규제를 씌우는 것은 시대착오적 규제의 `끝장판`”이라면서 “대기업집단 규제의 틀 전반을 근본적으로 뜯어볼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했다.
재벌규제 전면 개편 일러…지배주주 견제책 선행돼야
공정위는 이번 업무보고에서 대기업집단 규제를 전면적으로 뜯어 고치는 것은 시기상조로 보고, 일부 특수관계인 범위를 좁히는 등 대안을 제시할 것으로 전해진다. 혈족 범위 4촌 이내, 인척 범위 ‘배우자 직계존비속’으로 완화하는 방식이 유력하다. 다만 특수관계인 범위에 배우자 사실혼 관계에 있는 포함하는 방안도 담길 것으로 보인다. 일부 대기업 총수들이 사실혼을 맺는 상황이 나타나 `규제 사각지대`가 발생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이 같은 방안이 인수위 측을 충분히 납득 시킬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일부 규제완화 모습을 띠고 있긴 하지만, `낡은 울타리를 새 것으로 바꾸지 않고 덧칠만 하는 꼴`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인수위 측은 상법을 보다 개정해 비(非) 지배주주 견제장치를 활용한 자율 감시를 유도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최상목 경제1분과 간사는 지난해 `경제정책 어젠더 2022`를 공동저술하면서 “기업 지배구조에 있어서 집중투표제나 비지배주주의 이사 선임권 부여 등을 통해 비(非)지배주주에 의한 견제장치를 늘리는 방안을 더 강구할 필요가 있다”면서 “대주주 가족 중심의 경영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대기업집단제도 규제 등을 폐지하고 상속세율도 경쟁국 수준으로 조정할 수 있다”고 제언한 바 있다. 정부에서 경직된 사전 규제를 적용하기보다보다는 시장에서 이해관계자의 다양한 목소리를 키워 지배주주를 견제하는 게 글로벌 트렌드라는 얘기다.
공정위도 이번 정부에서 공정거래법, 상법, 금융그룹통합감독법 등 3축으로 재벌규제를 적용했다. `촘촘한 그물망`을 여러겹 씌워 사각지대를 줄이겠다는 취지다. 공정거래법이 보다 유연해지려면 상대적으로 상법, 금융그룹통합감독법이 강화돼야 한다. 다만 국내에서는 여전히 주주소송제 등이 미약한 만큼 재벌 규제가 담긴 공정거래법 규율 수준을 대폭 완화하는 건 쉽지 않다는 지적이 적지 않은 상황이다.
익명을 요구한 경쟁법 학자는 “재벌 규제 틀을 바꾸자는 데 이제는 대체로 공감대가 서 있는 것은 맞지만, 당장 전부 뜯어고칠 경우 혼란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일부 규제를 완화하고 전면 개편은 중장기 과제로 선정해 신중하게 다루는 게 맞는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