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투표제’가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의 향방을 가를 최대 변수로 떠오른 것에 대해 국내 한 지배구조 전문가가 내놓은 평가다. 소액주주 목소리를 확대하는 ‘확성기’ 역할의 집중투표제를 경영권을 방어하는 입장의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이 도입하자고 나섰고, 사모펀드인 MBK가 오히려 이 제도에 반대하는 상황이 펼쳐져서다.
집중투표제는 일반적으로 지분이 적은 사모펀드들이 자신들이 추천한 이사를 이사회에 진입시키는데 유리한 제도지만, MBK가 대주주 영풍과 손잡고 40%가 넘는 지분을 차지하게 되자 이런 구도가 만들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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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대주주가 50% 이상의 지배력을 갖고 있다면 이사 선임은 대주주 뜻대로 가능하지만, 집중투표제가 도입된 상태라면 소액주주들도 표를 몰아서 행사해 자신들이 지지하는 이사를 이사회에 진입시킬 수 있다. 우리나라는 1998년 상법개정으로 집중투표제를 전격 도입했으나 정관에서 이를 배제할 수 있도록 해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줄곧 제기돼 왔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고려아연과 MBK의 경영권 분쟁도 명분 싸움으로 흐르는 양상이다. 속뜻이야 어쨌든 최 회장이 집중투표제 도입 목적을 ‘거버넌스 개선과 주주가치 제고’라고 밝힌 만큼 확실한 명분은 챙긴 셈이다. MBK도 주주친화 정책인 집중투표제에 무작정 반대하긴 어려워 “집중투표제가 도입된다고 하더라도 소수주주를 위한 신규이사 선임 자체가 불가능하다”라는 논리로 맞서고 있다.
집중투표제 도입 땐…분쟁 초장기화
만약 집중투표제가 도입된다면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이 초장기전으로 흐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MBK·영풍은 14명의 신규이사를 선임해 이사회를 장악한다는 계획인데, 이 계획이 이번 주총에서 무산될 경우 양측의 불편한 동거가 한동안 지속될 수 있어서다. 현재 고려아연 소액주주 지분은 7~8% 수준으로 추정되며, 지분 4.51%를 보유한 국민연금과 함께 이들 소액주주의 표심 향방에 분쟁 승패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