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민간 주도라더니…농식품부 ‘답정너 출자’ 지시

[삐걱대는 정책펀드]
농식품부 주도 민간모펀드, 자금 댈 기관 사전 지정
사실상 출자 지시...민간 자금모집 취지 무색
잇딴 정책펀드 모금 실패 의식한 듯
“민간 금융사 팔 비트는 관치금융” 지적
  • 등록 2023-08-14 오전 8:48:32

    수정 2023-08-14 오후 12:57:10

[이데일리 지영의 기자] 농림축산식품부(농식품부)가 농식품 산업 투자를 위해 민간 중심으로 조성하기로 한 3000억원 규모 펀드에 자금을 댈 출자자(LP)를 내정한 것으로 파악됐다. K바이오백신펀드 등 최근 정부 주도 전략적 산업 육성 펀드가 민간자금 유치에 실패한 사례를 의식한 농식품부가 자금 공급자를 사전 지정한 것이라는 평가다. 시장에서는 정부 부처들의 민간 자본 유치 행태가 관치금융으로 흘러가는 모양새라며 우려의 시각을 드러내고 있다.

13일 금융권에 따르면 농식품부는 정책자금 없이 민간기금만으로 운영되는 농식품 산업 전용 투자 펀드 조성을 추진 중이다. 오는 2027년까지 1000억원 규모의 ‘민간 모펀드’를 먼저 조성한 후 이를 기반으로 자펀드를 포함해 총 3000억원 이상의 규모로 확대하는 방향이다.

민간 모펀드란 정책자금 지원 없이 민간에서 끌어모은 출자금만으로 펀드를 조성해 벤처펀드(자펀드)에 출자하는 재간접 펀드를 말한다. 정부는 모태펀드 예산을 줄이면서 시장 충격을 상쇄하기 위한 대안으로 민간 모펀드 확대를 전략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그래픽=이데일리 문승용 기자]
문제는 농식품부가 내부적으로 농식품 산업 투자용 민간 모펀드에 자금을 댈 LP로 농협금융지주를 사전 지정해뒀다는 점이다. 정책 계획 자체가 농협금융지주 산하 계열 금융사인 농협은행과 NH투자증권 등이 각 수백억대 자금을 출자해 1000억원의 모펀드 결성을 마무리 짓는 방식으로 구성됐다. 현재 농식품부의 방침을 하달 받은 농협금융지주가 내부에 태스크포스(TF)를 꾸리고 계열사로 계획을 전달할 준비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민간 자금 유치 형식이지만, 정책 방향에 민간 금융사가 필요한 자금을 의무적으로 출자하는 모양새다.

이를 두고 시장에서는 ‘하향식 출자 지시’로 펀드 자금을 메웠다는 비판이 나온다. 정부에서 벤처 육성을 위해 민간 주도의 투자 생태계를 조성하겠다고 선전하고 있는 취지와 달리, 관 주도의 계획에 민간 금융사를 끼워맞추는 방식으로 운영하려고 한다는 지적이다. 고금리 및 전반적인 리스크 확대로 인해 어려워진 시장 여건을 관치금융으로 압박해 풀어나가고 있다는 이야기다.

한 금융사 고위 관계자는 “정책자금을 줄인 이후 각 부처에서 점차 민간 자금을 끌어모을 펀드를 잇따라 내놓고 있는데 현실성이 너무 없다”며 “최근 정부 주도 펀드에 출자할 투자자가 없어 자금 모집이 녹록지 않으니 금융기관 팔을 비틀어 참여시키는 방식으로 가는 듯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런 방식으로는 정말 키워야 할 산업에 민간 자금이 흘러드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농식품부 관계자는 “최종 확정된 안은 아니지만 (출자자로) 농협을 염두에 둔 것은 맞다”면서도 “농협을 잠정 선정한 것은 농협이 농식품 투자 분야에 자체적으로 펀드를 만드는 등 관심이 많은 곳이었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이어 “정책을 만들면서 농협 쪽에 이야기를 해보니 향후에도 투자펀드 조성 계획이 있다고 하기에 모펀드의 정책 방향을 설명했다”며 “농협 측에서도 모펀드 법제화가 되고 나면 참여하겠다고 자발적으로 의사를 밝혀서 이렇게 진행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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