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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이 최근 다보스포럼 기고문을 통해 밝힌 친환경 해운사 진출 선언의 배경이다. 무탄소 선박의 과도기 격인 액화천연가스(LNG)·메탄올을 중심으로 한 친환경 선박이 신주의 70%를 차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선주들이 첨단 선박 발주를 주저하고 있다는 게 김 부회장의 기고문 요지다. 그는 “친환경 대체연료의 부족과 막대한 자본투자 탓에 선주들이 주문을 주저한다”고 짚었다. 한화그룹이 조선에 이어 해운업 진출을 선언하며 ‘퍼스트 무버(First Mover)’를 자처하는 이유다.
선사들의 친환경 선박 발주 부진의 이유는 친환경 연료 공급망에 대한 불확실성이 크기 때문이란 지적이다. 선사들이 청정 연료와 에너지 사업에도 뛰어드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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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부터 해운업 탈탄소 규제로 인한 타격은 본격화할 전망이다. 일정 규모 이상(5000GT)의 유럽연합(EU) 역내 운항 선박은 EU 배출권거래제(ETS)을 구매해야 하고 온실가스 배출 규제인 탄소집약도지수(CII)에 따른 등급도 오는 4월 첫 발표된다. 이에 따라 D등급 이하 선박의 폐선이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해상 운송은 전 세계 무역 상품 이동 수단의 90%를 차지하고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3%를 차지하는 주요 탄소 발자국의 원인이다. 국제해사기구(IMO)는 온실가스 배출 감축 전략을 수정해 2050년까지 넷제로 도달을 약속했다.
바이오매스 또는 재생 에너지에서 포집된 탄소 및 수소로 생산되는 그린 메탄올은 기존 화석 연료에 비해 컨테이너선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60%에서 95%까지 줄일 수 있다. 그러나 그린 메탄올 등 청정 연료 확보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선사들은 적극적인 첨단 선박 발주를 꺼리고 있다.
그린 메탄올을 탈탄소 수단으로 낙점한 머스크의 해운그룹이 친환경 연료 사업 진출까지 나서는 배경이다. 머스크의 대주주인 덴마크 산업 그룹 A.P. 몰러 홀딩(APMH)은 지난해 하반기 청정 연료 생산을 위해 C2X를 설립했다. 머스크는 20%의 지분을 확보하고 있다. 수에즈 운하 경제구역에서 머스크의 계열사 C2X는 연간 30만t 규모의 선박용 그린 메탄올 생산 플랜트를 건설한다.
또 머스크는 메탄올 연료 공급을 위해 재생에너지 회사인 유럽 에너지, 중국의 CIMC ENRIC 등과 생산 협력을 맺고 있으며 각국 항만에서도 친환경 선박 연료 공급(벙커링) 인프라 투자에 나서고 있다. 스페인과 덴마크, 그리고 최근 이집트에 이어 아시아 주요 운송 허브에도 메탄올 생산시설 건설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아시아는 동남아시아가 유력하다. 빈센트 클레르 머스크 CEO는 동남아를 아시아태평양의 가장 빠른 성장률을 기록하는 나라로 지목하며 “미래 친환경 선박 함대를 지원하기 위해 녹색 연료 인프라를 구축할 기회를 모색하기 위해 지역 당국과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선 산업 경쟁력 1위의 한국은 청정 연료 공급망에선 배제되는 형국이다. 선박용 친환경 연료 공급망 확보를 위해서는 우선 바이오매스, 풍력 등 친환경 재생에너지 전력을 활용해 메탄올, 암모니아 등 친환경 연료를 생산할 수 있는 여건과 기술이 필요하다. 아울러 친환경 연료를 저장·유통·공급이 가능한 항만 인프라도 확충돼야 한다.
정부 관계자는 “차세대 연료에 대한 항만운영사들의 낮은 이해 등으로 항내 벙커링에 소극적이고 행정절차 진행에도 장기간이 소요된다”며 “해외 선사들은 한국 항만을 친환경 연료 벙커링이 불가능한 곳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내 공급 부족에 대한 우려가 현실화하자 정부는 2027년까지 국내 수요의 최소 25%를 공공부문이 선제로 공급해 마중물을 대겠다는 계획을 지난해 11월 ‘친환경 선박연료 공급망 구축방안’을 발표한 바 있다.
업계 관계자는 “항만이 연료의 공급지 역할을, 석유화학 에너지 기업이 대체연료 공급을 해야 하는 공급망 구축이 주요 과제로 떠오른 상태로 국내 생태계 확보가 시급하다”며 “그러나 아직 국내 정유사들은 선박용 연료에는 거의 관심이 없다. 앞으로 선사들은 한국을 친환경 연료 공급이 어려운 곳으로 인식해 항로 변경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