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덕연구개발특구의 한 정부 출연연구기관에서 근무했던 김모씨는 지난 3월에 연구원 실험실에서 발생한 사고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김씨는 당시 사고로 손가락 2개를 잃었지만 학생-연수생(학연생)이어서 산업재해로 인정받지 못해 병원비조차 스스로 책임져야 했다. 학연생은 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학생 중 각 연구원에서 프로젝트 사업을 위해 채용하는 새로운 형태의 비정규직이다. 이들은 정규직 연구원 급여의 3분의 1 수준을 받으며, 4대 보험은 물론 건강검진 등 기본적인 복지혜택도 없다.
한 과학계 관계자는 “해당 연구원은 학연생에게 위험한 업무를 맡기지 않도록 한 규정마저 위반했지만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 출연연구기관의 비정규직 비중은 절반이 넘는다. 1~3년간의 프로젝트 기간에만 연구자를 채용했다가 연구용역이 끝나면 해고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비정규직 해고로 발생하는 업무 공백은 비정규직보다 처우가 열악한 학연생이나 박사후연수생들이 채우고 있다.
비정규직 정원제 도입 후 학연생으로 빈자리 채워
특히 정부가 출연연 등 공공기관의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처방보다는 근시안적 대책을 내놓으면서 상황은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신명호 한국공공연구노동조합 정책위원장은 “정부가 공공기관의 비정규직 해법으로 ‘비정규직 정원제’를 도입한 이후 대부분의 출연연이 정규직을 채용을 늘리는 대신 비정규직을 해고하고 빈자리를 학연생 등으로 채우고 있다”며 “이들은 학생 신분이라는 이유로 4대 보험은 커녕 최소한의 노동3권마저 보장받지 못한 채 사고 가능성이 상존하는 위험한 실험현장에 내몰리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미래창조과학부 등 정부부처가 공공연구기관에 대한 손쉬운 관리를 위해 공모방식의 연구과제를 경쟁적으로 진행하면서 각 출연연이 단기성 프로젝트 사업에 집중했고, 그 결과 출연연이 학생 연수생과 같이 비정규직보다 더 열악한 채용 형태를 선호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신규채용 10명 중 7명이 비정규직
박근혜 대통령은 공공기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대선공약으로 내걸었지만 정부 출연연의 경우 딴나라 얘기다. 2012년부터 2015년 6월까지 출연연에서 뽑은 연구직 인력 5903명 중 4197명(71.1%)이 비정규직이다.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조해진 의원(새누리당)이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자료를 분석한 결과다. 25개 출연연이 제출한 2014년 정규직 전환 현황 자료에 따르면 전체 직접고용 비정규직의 2.1%인 197명만 정규직화됐다.
이에 대해 과학기술계 관계자는 “정규직 정원이 워낙 적다보니 학연과 인맥 등 배경이 좋은 박사들만 정규직으로 채용되고, 나머지 연구원들은 학연생 신분으로 정규직의 3분의 1 수준의 급여만 받은 채 각종 산재와 노동권의 사각지대에 머물고 있다”며 “이런 근무환경에서는 절대 ‘알파고’와 같은 연구성과를 나올 수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