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훈의 마켓워치]<28>채권수익률곡선은 다시 가팔라질까

연준 코로나 부양에 한동안 수익률곡선 예측력 실종
6월엔 파월 YCC 언급으로 장단기금리 차 확대 막아
죽었던 수익률곡선의 부활…4분기 스티프닝 가능성
연준 AIT 도입에 인플레 기대…국채 매입규모도 축소
국채 발행물량 증가도 한몫…스티프닝 땐 이머징 기회
  • 등록 2020-09-12 오전 7:16:43

    수정 2020-09-12 오전 7:16:43

워싱턴D.C에 있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본부 건물


[이데일리 이정훈 기자] “채권수익률곡선(yield curve·일드커브)이 아무런 소용 없다고 말하는 건 아닙니다. 다만 역설적으로 이 수익률곡선의 예언능력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니 향후 경기를 가늠하는 선행지표로서의 신뢰도가 오히려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와 재무부에서 이코노미스트를 지낸 뒤 현재는 PGIM 픽스트인컴에서 일하는 네이선 시츠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한 인터뷰에서 이같이 주장하며 수익률곡선의 경기 예측력을 너무 맹신하지 말라는 당부를 했습니다.

그의 얘기를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만약 단기금리가 상대적으로 더 오르고 장기금리가 내려와 장-단기 금리가 역전된다고 하면 다들 머지 않아 경기 침체(recession)가 올 것이라며 호들갑을 떤다. 그러면 연준은 통화정책을 다소 느슨하게 가져가고, 이 덕에 금융시장 여건이 완화돼 수익률곡선 역전과 경기 침체와의 관계가 사라져 버린다`는 겁니다.

사실 이와 유사한 일이 올 6월 초에도 있었습니다. 미국 내 주요 도시들의 락다운이 일시에 해제되자 장기금리가 더 빠르게 뛰며 2년과 10년만기 국채 간 스프레드(=금리 차이)가 지난 2018년 2월 이후 2년 4개월여 만에 최대폭으로 벌어지는 일이 있었죠. 이를 두고 `앞으로 경기가 V자형 회복을 보일 수도 있다`는 기대가 커지고 장기금리가 본격적으로 뛸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왔더랬습니다.

알다시피 장-단기 금리 차이는 경기선행지표 구성요소일 정도로 경기 방향성을 보여주는 지표 중 하나인데요. 일반적으로는 장-단기 금리 차이가 벌어지는 건 향후 경기가 좋아질 것이라는 신호로 받아 들여집니다. 통상 인플레이션이 뛸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거나, 그로 인해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인상할 것이라거나 위험자산 선호가 높아져 채권 보유심리가 약해지면 장기금리는 오르기 마련입니다. 특히 단기보다 장기금리가 더 오른다는 건 경기가 좋아지고 총수요가 살아나 인플레이션이 뛸 때 나타나곤 하죠.

그러자 그 다음 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를 주재했던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기자회견에서 “우리 솔직해지자”며 “연준의 정책목표 달성을 위해 미국 경제와 고용이 가야할 길은 멀다”라는 냉정한 발언을 내놓습니다. 그도 모자라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여러 정책수단을 검토하고 있고, 수익률곡선관리(YCC)도 그 중 하나”라고 밝혔죠. 그 덕에 장-단기 금리 차이는 곧바로 좁혀지면서 수익률곡선의 기울기도 금세 다시 평탄해졌습니다.

(☞6월13일 기사: [이정훈의 마켓워치]<9>파월은 어쩌다 증시에 찬물 끼얹었나)

파월 의장이 이렇게 YCC라는 제도를 도입할 수 있다고 천명한 뒤 한동안 미 국채시장에서 수익률곡선이 가팔라지는 일은 없었는데요. 8월에 공개된 7월 FOMC 의사록을 통해 정책위원들이 당시 회의에서 YCC의 부작용과 문제점을 한껏 성토한 것이 알려지고서야 수익률곡선은 다시 아래 위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이처럼 죽어 버린 듯 했던 수익률곡선이 최근 다시 꿈틀대고 있습니다. 이제 시기상 4분기(10~12월) 진입을 앞두고서 수익률곡선이 어느 방향으로 움직일 것인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습니다. 그동안 `슈퍼 플랫(Super flat)` 상태에서 오래 머물렀던 만큼 다소 가팔라지는(steepen) 쪽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높아 보이긴 합니다.

지금으로부터 1년 전으로 시계를 돌려 보면 당시 미 국채 2-5년물 구간을 중심으로 수익률곡선이 역전되는 현상이 벌어졌습니다. 이를 두고 당시 월가에서는 향후 경기 침체에 대한 시그널이 온 것이냐 아니냐 논쟁이 나름 뜨겁게 벌어졌었는데요.

미 국채 2년과 5년, 2년과 10년물 간 스프레드(=금리 차이) 추이


특히나 당시 경기 침체를 점칠 만한 뚜렷한 징후가 전혀 없을 만큼 미국 내 거시경제지표는 양호했었죠. 이런 상황에서 5년물 금리가 2년물 아래로 내려갔다는 건, 앞으로 2년물 금리가 내려가야 하고 이를 위해 연준이 기준금리를 내려야할 지 모른다는 시그널이 반영돼 있었으니 말이죠. 흥미로운 건, 이 당시 역전된 2-5년물 수익률곡선이 코로나19 팬데믹(전 세계적 대유행)을 예견하진 못했지만, 결과적으로 1년이 지난 뒤 (코로나19로 인해) 나타난 실제 경기 침체를 예고했다는 점입니다.

그 때와 비교해 지금 나름 긍정적인 건, 국채 2-5년물 구간이 역전되지 않았다는 겁니다. 반면 부정적인 건 이 구간이 거의 플랫(flat)해져 있다는 점입니다. 현재 스프레드는 10~12bp 정도를 오가고 있습니다. 연준이 마이너스(-) 기준금리를 쓸 생각이 전혀 없는 상황이라 더이상 기준금리가 내려갈 수 없다는 전제 하에서 보면 아주 근소한 차이로 좁혀져 있는 셈입니다.

수익률곡선이 이렇게 평탄하게 유지되고 있었던 건, 기본적으로 채권시장이 연준의 정책 스탠스를 충실히 반영해온 결과물이라고 봅니다. 즉, 연준은 적어도 2022년까지는 기준금리를 올릴 의도가 전혀 없음을 누차 확인시켜줬으니 단기물 금리가 위로 올라갈 일은 없겠죠. 또한 연준은 YCC 도입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으면서 5년물 이상 금리가 급작스럽게 위로 움직이는 것도 차단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제 연준의 YCC 도입에 대한 기대치가 크게 낮아진 상황이라 5년 이상 구간에서는 수익률곡선이 스티프닝 쪽으로 갈 수 있을 겁니다. 현재 5-10년물 간 스프레드는 40bp 수준이고 10-30년 스프레드도 거의 비슷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수익률곡선이 가팔라진다는 건, 향후 시장금리가 반등할 것이라는 얘기고, 이는 미국 경제가 더디지만 최소한 더블딥(Double dip)으로는 가지 않을 것이라는 신호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수익률곡선이 스티프닝으로 갈 수 있는 이유는 어떤 것들이 될까요.

미국 경제지표에 대한 기대치가 빠르게 높아지는데도 연준의 정책 효과로 인해 10년-2년 스프레드는 크게 반등하지 못하고 있다. 앞으로 스프레드가 더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일단 연준이 평균물가목표제(AIT)를 도입하기로 한 것이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높여 장기금리를 위로 끌어 올리는 역할을 할 것으로 보입니다. AIT는 최대한의 고용이 달성될 수 있도록, 인플레이션이 일시적으로 연준 목표인 2%를 웃돌더라도 이를 인내하겠다는 정책입니다. 이는 미국 경제가 코로나19 충격으로부터 더 서둘러 빠져나올 수 있는 기회를 높여줄 겁니다. 이 때 (실물경제지표가 살아나는) 그 반대급부로 치러야할 비용이 바로 인플레이션이 됩니다.

지난 5월에 락다운 조치가 미국 전역에 내려지면서 근원 소비자물가지수(CPI) 기준으로 전년동월대비 -0.1%까지 내려갔던 미국 인플레이션이 7월에는 +1.0%로 회복됐는데요. 간밤에 발표된 근원 CPI는 1.7%까지 상승폭을 키웠습니다. 이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최대 상승폭이었습니다.

이뿐 아니라 앞으로의 인플레이션을 기대하는 눈높이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시장참가자들의 기대 인플레이션을 보여주는 지표로 흔히 브레이크이븐 레이트(BIR·Breakeven Inflation Rate)를 사용하는데요. 이는 일반적인 국채와 물가연동국채(TIPS) 간 수익률 차이입니다. 쿠폰금리는 고정돼 있지만, 인플레이션이 높아지면 그에 따라 원금 지급액이 늘어나도록 설계된 TIPS 금리가 일반 국채금리보다 더 빠르게 오른다는 게 인플레 기대심리가 높다는 뜻이기 때문이죠. 바로 이 10년만기 미 국채의 BIR은 지난 3월에 0.55%까지 내려갔다가 현재 1.70%까지 올라와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미 국채를 비롯한 연준의 자산 매입규모가 줄어들고 있다는 점도 금리 상승이 나타날 수 있는 이유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연준은 올 봄 이후처럼 정신없이 자산을 매입해왔지만 과거 고점이던 지난 2014년에 비해서는 전체 국채규모대비 낮은 국채 보유비중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2014년 당시엔 연준이 제로금리 정책을 썼어도 10년물 국채 금리는 2%가 넘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러나 현재 10년물 금리는 0.6%대까지 내려와 있어 연준으로서도 적극적 국채 매입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고 있습니다.

미 전체 국채시장 중 연준이 보유하고 있는 국채 비중이 코로나19 팬데믹 초기 급증하다가 최근 완만해졌다. 이는 2014년에 비해서도 낮은 수준이다.


이와 함께 미 정부가 발행하는 적자국채 규모가 늘어나면서 장기금리가 상승압력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실제 최근에도 10년과 20년, 30년만기 국채 발행을 위한 입찰이 있을 때마다 낙찰금리가 시장에서의 유통금리보다 다소 높아지는 부진한 결과로 인해 수익률곡선이 가팔라지는 상황이 반복적으로 나타나고 있는데요.

지난 2분기에 2조7530억달러라는 역대 최대규모의 적자국채를 발행했던 미 재무부는 3분기에도 9470억달러 어치 국채를 찍어 냈습니다. 이는 앞서 5월에 발표한 금액보다 2700억달러 더 많았습니다. 이런 가운데 의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추가 재정부양책이 합의될 경우 연말과 내년 초 쯤 또 한 번의 국채 물량폭탄이 채권시장에 몰아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건, 이렇게 시장금리가 위로 올라가고 수익률곡선이 가팔라질 때 증시에는 어떤 변화가 생길까 하는 대목인데요. 사실 이는 금리 상승이나 장-단기 금리 차 확대 폭과 속도에 따라 달라질텐데요. 불안해지는 상황을 연준이 제어한다고 본다면 증시에는 비교적 우호적 영향을 줄 듯 합니다.

일단 시세흐름을 주도하던 대표 성장주들의 높은 밸류에이션은 다소 조정쪽으로 갈 가능성이 있습니다. 특히 저금리에 싼 값에 회사채를 찍어 그 돈으로 자사주 매입과 배당 등에 쏟아 부었던 기업들의 주가가 비싸 보이기 시작할 겁니다.

반면 수익률곡선이 가팔라진다는 건 향후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를 높이는 대목이라 그동안 소외 받던 경기민감주가 다시 살아나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아울러 리플레이션(reflation) 기대가 커진다면 이는 이머징마켓이 강해질 수 있는 위험선호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이머징 자산 매력이 높아질 수 있고, 원자재 값이 뛰면서 자원이 많은 이머징 국가 경제가 회복세로 갈 수 있기 때문이죠. 나스닥을 비롯한 뉴욕증시가 조정을 받을 떄 이머징 증시가 대안으로 주목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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