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아직 전국에 남아 있는 쓰레기산은 넘쳐난다. 정부는 100여 곳, 환경단체는 400여 곳으로 집계한다. 그런데 한 영화의 대사처럼 ‘뭣이 중할까’. 치워도 치워도 늘어나고, 심지어 청정공간인 국립공원에도 쓰레기를 불법 매립하는데 말이다.
국립공원공단 태백산국립공원은 지난 7월 30일 주민 신고를 받고 현장을 확인한 결과, 반재 주변 땅속에 묻혀 있는 2∼3t의 라면·과자 봉지, 음료수병, 폐비닐 등 쓰레기를 발견했다. 가로 5m·세로 5m·깊이 1m의 공간이다. 주변에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밖에 폐공장, 폐컨테이너 박스 등 우리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쓰레기산도 수두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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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전문가들은 쓰레기산을 처리 중심으로 접근할 것이 아니라 발생을 막을 근본적 해법에 초점을 모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무분별한 투기가 문제가 아니다. 주먹구구식의 ‘플라스틱’ 재활용 시스템이 문제다.
쓰레기산은 우리나라 플라스틱 재활용 시스템이 가진 문제의 총체적 결과물일 뿐이다. 저개발국가의 운영방식과 비슷한 우리나라의 재활용 시장을 자본 집약적인 선진국처럼 변화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쓰레기산에 버려진 것들은 ‘폐플라스틱’
쓰레기산에 있는 것은 그냥 쓰레기가 아니다. 우리나라는 쓰레기를 나름 잘 관리하는 국가다.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도입해 시행하는 ‘쓰레기 종량제 봉투’ 사용 제도 덕이다. 순수한(?) 쓰레기들은 이렇게 종량제 봉투에 버려져 매립지나 소각장으로 이동해 처리된다.
우리가 쓰고 버린 생활폐기물의 59.5%는 재활용된다. 국제적으로 보면 나름 높은 수치다(OECD 평균이 20% 수준이다). 그런데 왜 국제적 망신을 산 쓰레기산 문제는 아직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 걸까.
불법투기하는 브로커들의 탄생 경로는?
매립지로 가지도 소각되지도 않고 제품으로 팔리지도 않는 마치 유령처럼 떠도는 폐플라스틱이 있다. 공식 통계에 잡히지도 않는다.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갔을까.
재활용 폐기물은 ‘수집→선별·분리→매립 or 소각 or 재활용’의 과정을 거친다. 수거는 주택밀집지역은 지자체가 맡고 아파트 등 수거가 쉬운 공동주택은 민간업체가 맡는다. 이 수거단계까지는 무난한 편이다. 문제는 아직도 상당부분 수작업에 의존하는 선별·분리 단계다.
폐플라스틱에는 계급이 있는데, 페트(PET)병 등 고급 폐플라스틱은 없어서 못 판다. 하지만 저급 폐플라스틱을 사가는 곳이 많지 않다. 소각·매립지로 보내는 물류비용도 만만찮다. 유가 등에 따라서 재활용 업계는 고사 위기를 맞기도 한다. 이런 재활용 업체의 경영 위기를 틈타 처리비용보다 더 싸게 떠안아주는 전문 브로커들이 등장한다. 이들 브로커들이 저급 폐플라스틱을 수입하는 저개발국가로 넘기거나, 폐공장이나 노지 등을 저렴하게 임대해 무단으로 투기한 것이다.
음식물이 묻었거나, 덜 쓴 세제가 든 플라스틱 포장재 등 더러운 것들이 저급 폐플라스틱이다. 폐지나 캔, 유리병 등에 비해 폐플라스틱은 재활용제품으로써 상품성이 떨어지는 ‘저급’의 비율이 높다. (반드시 꼼꼼히 씻은 뒤 분리 배출해야 한다! 재활용 절차가 너무 복잡하다면 가정에선 이것 하나만 지켜도 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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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ECD에서 발표된 보고서를 보면 저소득국가와 고소득국가의 재활용 처리시스템을 조사해 분석한 결과가 있다. “대부분의 고소득 국가는 정부 주도의 공식적인 분리수거 제도를 가지고 있으며, 자본 집약적 처리를 거친다. 반면 저소득 국가에서는 저숙련 노동자나 비공식 재활용 부문(폐기물 수거업자)에 의해 수행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이어 “비공식 재활용 부문에서는 상대적으로 비효율적이고 환경적으로 유해하며, 종종 위험 물질의 배출을 막지 못하고 건강 및 환경 위험을 초래한다는 심각한 우려가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은 폐플라스틱 관리 문제만 놓고 보면 사실상 저소득국가나 다름없다.
독일, 미국, 일본 등은 지자체별로 한 두 곳의 업체가 수거와 선별을 맡고있는 것과 달리 우리나라는 생활폐기물 재활용업체로 등록된 업체수가 2020년 기준 426곳이다. 업체 당 연 8억9189만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재활용 시장규모는 2010년 4조원에서 11조1000억원으로 3배 가까이 성장했으나, 업체의 45.2%는 개점휴업 상태다. 매출액이 100억원 이상인 업체는 전체의 2.8%, 10억원 이상 판매업체수는 전체의 20.4%에 불과하다.
이 같은 영세성은 우리나라 재활용 시장의 경쟁력 저하로 이어진다. 선별·분리 고도화를 위해 자본 투입이 요구되지만 영세업체들은 투자가 쉽지 않다.
그런데 다른 한쪽에선 글로벌 재생시장 확대로 폐플라스틱 수요가 커지고 있다. 국내 플라스틱 원료 대기업들은 재생 플라스틱 원료 공급 부족을 호소한다. 폐기물 처리 과정이 요즘 대세로 떠오르고 있는 ‘순환경제(Circular Economics)’ 시스템과는 맞지 않다는 방증이다.
이에 선진국처럼 공공 주도의 폐기물 관리 체계로 시급히 전환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계형산 목원대 신소재화학공학과 교수는 “글로벌 주요국을 보면 공공이 폐기물을 안정적으로 공급한다. 또 선별-분리-물리·화학적 재활용 및 소각 등 전단계 처리 시스템이 지리적으로 집약돼 있어 물류비용을 우려하지 않는 구조”라고 말했다.
이에 “우리나라도 공공과 민간의 협업에 의한 폐기물 순환 단지 조성과 관련 산업의 집적화 처리 시스템이 필요하다”며 “저급 폐플라스틱을 활용한 최종생산품도 늘어나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