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면]③ "냉면 맛 세월따라 변해도 내게는 늘 '고향'의 맛"

실향민 김병삼 씨가 본 냉면
고향서 부담없이 먹은 서민 음식
"요즘 식당 가면 않을 자리 없어
젊은 세대도 좋아하는 음식된 듯"
  • 등록 2018-04-13 오전 5:57:00

    수정 2018-04-13 오전 5:57:00

평안남도 대동군이 고향인 김병삼(86)씨가 6일 서울 중구 한 카페에서 이데일리와 인터뷰하고 있다(사진=장병호 기자 solanin@).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우리 실향민들은 고향 음식 생각이 나면 평양냉면을 먹으러 가. 그런데 요즘 식당에 가면 앉을 곳이 없어. 젊은 세대들이 늘 줄을 서 있더라고. 냉면이 이제는 젊은 세대가 좋아하는 음식이 됐구나 싶어.”

평안남도 대동군이 고향인 김병삼(86)씨는 실향민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평양냉면을 먹으러 간다. 우래옥, 필동면옥, 평래옥, 평양면옥 등 유명하다는 평양냉면 식당을 가리지 않고 찾는다. 식당마다 맛이 조금씩 다르다지만 김 씨에는 늘 한결 같은 맛이다. 죽기 전 한번은 꼭 가보고 싶은 ‘고향’의 맛이다.

김 씨는 지난달 31일부터 3일까지 평양공연을 위해 찾은 우리 예술단과 관련한 기사들을 보면서 또 한 번 고향을 떠올렸다. 예술단이 평양의 유명한 평양냉면 식당인 옥류관을 찾았다는 소식에 오래 전 추억에 빠졌다. 6일 오전 서울 중구 한 카페에서 이데일리와 만난 김 씨는 “어릴 적 어른들을 따라 옥류관에서 냉면을 먹은 기억이 있다”며 “북에 있을 때 냉면은 지금처럼 값비싼 ‘사치 음식’이 아니라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는 ‘서민 음식’이었다”고 말했다.

김 씨가 남한에 내려온 것은 한국전쟁이 일어난 뒤였다. 18세였던 1950년 12월 4일 아버지와 형제들과 함께 고향을 떠나 12월 17일 인천에 도착했다. 할아버지, 할머니와 어머니는 함께 오지 못했다. “1주일 정도만 남쪽으로 내려갔다 오면 된다”는 말을 듣고 남쪽으로 내려왔지만 그 뒤로 다시 고향에 돌아가지 못했다.

처음 남한에 내려왔을 때만 해도 북에서처럼 냉면을 즐길 수 없었다. 이북에서 내려온 실향민들이 남한에 정착해 냉면 전문식당을 열면서 다시금 고향의 맛을 느낄 수 있게 됐다. 김 씨는 “냉면도 조금씩 맛이 달라지기는 했겠지만 내게는 북에 있을 때나 지금이나 큰 변화없는 맛”이라고 강조했다.

냉면은 남한에 내려오기 전부터 즐겨 먹던 음식이었다. 곡식이 잘 자라지 못하는 평안도 일대에서 유일하게 잘 자라던 곡식이 메밀이었다. 메밀로 만든 국수에 동치미 국물에 닭고기, 소고기로 만든 국수를 섞어 먹었다. 집마다 ‘분틀’(국수틀)이 있어서 식당에 가지 않더라도 냉면을 만들어 먹을 수 있었다. 김 씨는 “밤이 긴 겨울 일찍 저녁을 먹고 자기 전 배가 고파지면 야참으로 냉면을 먹었다”며 “혈기왕성한 청년들이 ‘오늘 밤은 누구네 집에서 국수 해먹자’며 모여 먹는 걸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고향에서 냉면을 먹을 때는 ‘다대기’ 같은 양념을 따로 넣어 먹지 않았다. 지금처럼 조미료가 없던 때라 ‘냉면에 양념을 해서 먹는다’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김 씨는 “육수에 국수를 말아 간편하게 먹는 것이 냉면”이라며 “아무 것도 안 넣어 먹을 때 냉면의 순수한 맛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씨는 냉면을 먹는 방법이 특별히 정해져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김 씨는 “옛날에는 조미료가 없어서 냉면에 양념을 안 해서 먹었을 뿐”이라며 “사람 입맛에 따라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방식대로 냉면을 먹는 게 제일 좋다”고 말했다. 이번에 가수들이 먹은 옥류관 냉면에 대해서는 “과거에는 다대기 같은 양념이 없었다고 들었다”며 “북에서도 시대 변화에 따라 음식을 먹는 방법이 달라지고 있는 것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김 씨는 이번 평양공연을 보면서 “감개무량한” 기분을 느꼈다. TV로나마 고향의 모습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김 씨는 “북한이 앞으로 어떻게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의 남북 관계가 화해 분위기로 흐르니까 실향민으로서는 기대가 상당히 크다”고 말했다. 잊지 못하는 고향의 맛을 죽기 전 다시 한 번 느껴보는 게 꿈이다. “지금까지 살고 있는 이유가 딴 게 없잖아. 이북에 있는 고향에 한 번 가고 싶어서 여태까지 살고 있는 건데. 허허허.”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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