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 배운다` 해외 가는 공무원, 행태는 30년 전 그대로

연간 300억 세금 투입 공무원 장기 해외연수, 관리 미흡으로 장기 외유 전락
  • 등록 2011-06-02 오전 7:27:52

    수정 2011-06-02 오전 7:27:52

[노컷뉴스 제공] 정부는 한해 300억원이 넘는 국민혈세를 들여 수백명의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해외연수를 실시하고 있지만 연수기간 중 또는 사후 연수자 관리가 미흡해 연수라기보다는 장기 외유로 전락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연수를 다녀온 공직자의 높은 이직률과 고위 직급에 편중된 연수생 선발은 공직사회 내부에 위화감을 조성하고 있다.

한 때 해외연수 공무원들의 골프 관광이 여론의 뭇매를 맞으면서 잠시 이같은 분위기가 사그라들기도 했었지만 미국에서 9년간 유학을 하고 최근에 돌아왔다는 김 모(39)씨는 "여전히 공부보다는 골프에 전념하는 공무원들이 적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씨는 "국민 세금 받아 공부하러 오는 사람들인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 공무원 장기 해외연수, 연간 300억 원 세금 투입

공무원들의 해외 연수는 단기와 장기로 나뉜다. 단기 연수 가운데 십중팔구는 '외유성'이라는 사실은 이미 숱하게 지적됐다. 그러나 1인당 지원금이 1억 원이 넘는 장기연수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적어 예산 감시의 사각지대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 해 장기연수를 떠나는 공무원은 대략 260~270명 가량. 외교통상부를 제외한 정부의 43개 부.처.청 등에서 평균 대여섯 명이 해마다 장기 연수를 떠나고 있으며 이는 행정안전부가 총괄 관리를 하고 있다. 이들에게 소요되는 비용은 연간 250~300억 원 사이다.

이와 별개로 외교통상부는 자체 연수 제도를 갖고 있어 해마다 35명 가량이 해외로 장기 연수를 나가고 있다. 보통 2년에서 3년씩 해외로 나가며 40억 원 안팎의 예산이 여기에 배정된다.

단순 계산만 해봐도 1인당 1억 원이 넘는 비용이다. 실제 정부는 2년간 미국 달러 기준 3만 6천 달러를 학비로 제공한다. 여기에 매달 지급되는 기본급과 체제비가 3천 달러 가량이며, 가족까지 포함하는 항공료, 의료보험비, 정착 및 이주비까지 지원된다.

김씨는 "대부분 유학생들이 RA(리서치 어시스턴트)나 TA(티칭 어시스턴트)를 하면서 빠듯하게 살림을 꾸려가지만 공무원들은 장학금에 대한 욕심이 없을 뿐만 아니라 비교적 여유롭게 사는 모습이었다"고 말했다. 말하자면 '도덕적 해이'다.

연수를 준비하고 있는 한 공무원은 "가서 공부를 잘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2년간 스트레스 안 받고 인생을 즐기며 살고 싶다는 생각도 많다"며 "먼저 간 선배들이 연수 때가 인생 황금기라고 말한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 홍성태 상지대학교 교수는 "말도 제대로 못하는 등 학위를 할 수 있는 능력도 갖추지 못하고 골프나 치러 다니는 공무원들이 태반"이라며 "공무원 사회에서도 노골적으로 '보상'이라고 표현하는 것을 보면 공무원들이 장기 연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다"고 지적했다.

홍 교수는 "SCI 논문 인용 횟수를 따지는 등 구체적인 관리 감독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기 해외연수를 다녀올 경우 100페이지 안팎의 연수 보고서를 제출해야 하지만 이는 강제 사항이 아닐 뿐만 아니라 내지 않아도 처벌 방법은 없다. 다만 송재환 행정안전부 교육훈련과 과장은 "귀국 항공권과 마지막 학기 비용은 귀국한 뒤에 지급하기 때문에 보고서를 제출하지 않으면 이 돈을 못 받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연수 결과물이 실제 업무에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측정할 수 있는 방법이 사실상 전무하다는 것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 해외 연수 급증…업무 연관성은 의문

공무원 해외연수가 도입된지 수십년이나 흘렀지만 예나 지금이나 해외연수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는 여전하다.

차영순 공무원노조 정책실장은 "행정고시를 통해 들어온 5급 사무관들이 대부분 유학 시스템을 많이 밟고 있다"며 "우리나라 안에서 현장을 이해하는 것이 더 중요한데 실무경험이 별로 없는 상태에서 유학을 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해외연수를 업무에 연관시키기 위한 실무 경험 자체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설명이다.

외교부 해외연수도 마찬가지로 외무고시를 통해 들어온 5급 공무원들 중 해외연수자 대부분이 입부 후 2~3년 안에 연수를 떠난다. 당연히 업무 이해도가 낮을 수밖에 없다.

이 때문인지 외교부의 경우 여타 공무원들처럼 장기 해외연수자들이 반드시 학위 과정을 이수해야 한다는 강제성마저 없다. 지난 2008년부터 2010년까지 3년간 떠난 63명의 5급 공무원 가운데 영어권과 비영어권을 합해 1~2년간 어학 연수 코스만 밟는 사람도 6명이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미 외무고시를 통해 영어와 제2외국어 능력을 검증하면서도 돈만 내면 들어갈 수 있는 어학 연수에 적지 않은 나랏돈을 지원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실제 외교부 소속의 한 공무원은 "욕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학위를 하려고 한다"며 "제2외국어라면 몰라도 영어 연수만을 위해 미국이나 영국에 가는 사람은 솔직히 좋게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공무원은 "솔직히 놀려고 가는 것 아니겠냐"고 반문했다.

해외연수와 업무의 연관성을 의심케하는 부분은 또 있다.

지난해 이석현 민주당 의원실이 장기 해외연수자들 가운데 의무복무 기간 이전에 퇴직한 공무원을 파악한 결과 2007년부터 2009년까지 모두 17명이 퇴사한 것으로 드러났다. 2007년 경찰청 소속 경감이 복귀 뒤 3개월만에 모 대학 교수로 자리를 옮겼으며, 2008년 국세청 세무주사도 5개월만에 김앤장 법률회사로 소속을 바꿨다. 이밖에 공정거래위원회, 기획재정부 등을 비롯한 다양한 부처의 공무원들이 1년에서 2년 사이에 퇴직했다.

특히 취업시장에서 인기가 좋은 MBA 과정이나 로스쿨로 진학한 뒤 그만두는 경우도 종종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다만 외교부의 경우 MBA나 로스쿨 출신의 퇴직이 내부적으로도 문제가 돼 이같은 과정은 밟지 못하도록 내부 규정을 두고 있다.

공무원국외훈련 업무처리 및 복무관리에 관한 지침에 따르면, 공무원은 연수 기간의 2배에 해당하는 기간동안 의무복무를 해야하며 이를 어길시 그간 지원받은 비용을 반납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 차영순 실장은 "연수기간 중 중간중간 보고서를 작성하게 돼있지만 그런 것들이 제대로 되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연수와 업무가 밀접하게 연관돼있다면 이들이 중간에 다른 곳으로 한눈을 팔지 않을 것이란 지적이다.

차 실장은 "본인의 커리어를 쌓은 뒤 다른 직업으로 옮겨 간다면 국가가 돈을 들여 교육시킬 필요가 없다"며 "이직을 막기 위한 제도 차원의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반납하는 돈을 2배로 하는 등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홍성태 교수도 "독일의 학자들이 한국의 공무원들은 왜 독일에 와서 통일 연구만 하냐며 한국 공무원들은 정보를 공유하지 않느냐고 물어와 낯이 뜨거웠다"고 말했다. 대다수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적지 않은 수의 공무원들이 해외 연수에 성실한 태도로 임하고 있지 않으며 정부도 관리에 큰 괌심을 기울이고 있지 않음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말이다.

◇ 영어권 집중…영어만이 살 길?

공무원들의 영어권 집중 현상도 심각하다.

지난해 해외연수를 떠난 257명 가운데 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 영어권 국가로 떠난 사람만 154명으로 60% 달한다.

자원외교 등이 강조되면서 정부는 훈련국가 다변화를 독려하고 있지만 공무원들의 영어 선호 현상은 좀체 나아지지 않고 있다. 내부적으로 영어권에 130명 이상을 보내지 않겠다는 가이드라인도 있지만 정부는 이를 철저히 지키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2009년과 2010년 연속 비영어권 연수자는 재선발 과정을 거쳐야했다. 송재환 과장은 이와 관련해 "비영어권에 대한 인기가 낮은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선진국을 배우러 가는 것이고, 그런 면에서 영어는 우리는 발전전략이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외교부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연수를 다녀온 외교부의 한 공무원은 "특정 지역 전문가로 인식이 되면 해당 지역과를 제외한 다른 곳에 가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실제 외교부 해외연수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장연주 외교안보연구원 외국어교육과 과장도 "아랍어나 러시아어를 하고 오면 그쪽만 계속 가게 되니까 자꾸 기피하게 된다"고 말했다. 장 과장은 "동남아시아는 특히 언어가 여러개이지만 한 언어에 특화된 사람이 아닌 이상 동남아 경제를 공부하려고 해도 미국으로 간다"고 덧붙였다.

연수가 5급 이상, 고등고시 출신 공무원에만 집중돼있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되는 부분이다. 지난 2007년부터 2009년까지 장기 해외연수를 떠난 공무원 가운데 5급 이상은 매년 73%, 76%, 75%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누구라도 공무원 해외연수의 필요성 그 자체에는 공감한다. 그러나 연수자 선발에서부터 관리 및 업무 활용에 이르기까지 후진적 구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을 보며 해외연수의 효용성에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

행안부 한 공무원은 "한국의 입장에서 선진국을 배우기 위해 국외 훈련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G20 성공적 유치 등을 내걸며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고 홍보를 하는 정부와 달리 그 속의 공무원들은 여전히 스스로를 선진국민이 아닌 것으로 인식해서인지 일을 하는 수준도 30년 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은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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