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스 그 자체 ‘억새숲’…20년 만에 다시 살아나기까지

■연속 기획-숲, 지역과 산촌을 살린다(13)
울산시 울주군 신불산 억새숲, 대한민국 100대명품숲 선정
영남알프스 자락 간월재에 국내 최대규모 억새군락지 조성
기후변화에 위기…울주군, 10여년 넘게 억새복원사업 추진
산악영화제·오디세이 등 문화예술 연계한 경제활성화 효과
  • 등록 2024-10-10 오전 5:10:00

    수정 2024-10-10 오전 7:16:38

산과 숲의 의미와 가치가 변화하고 있다. 가치와 의미의 변화는 역사에 기인한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황폐화한 산을 다시 푸르게 만들기 위해 우리는 어렵고 힘든 50년이라는 혹독한 시간을 보냈다. 산림청으로 일원화된 정부의 국토녹화 정책은 영민하게 집행됐고 불과 반세기 만에 전 세계 유일무이한 국토녹화를 달성했다. 이제 진정한 산림선진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산림을 자연인 동시에 자원으로 인식해야 한다. 본보는 지난해 산림청이 선정한 대한민국 100대 명품 숲을 탐방, 숲을 플랫폼으로 지역 관광자원, 산림문화자원, 레포츠까지 연계해 지역 경제 활성화에 미치는 영향을 모두 100회에 걸쳐 기획 보도하고 지역주민들의 삶을 조명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울산 울주군 간월재 가을 전경. (사진=울산 울주군 제공)
[울산=이데일리 박진환 기자] 끝이 없을 것 같이 이어지던 폭염이 마침내 끝나고 찾은 울산 울주의 신불산과 간월산에는 가을의 전설이 시작되고 있었다. 신불산과 간월산은 영남알프스의 한 자락이자 ‘우마고도(牛馬古道)’의 코스로도 유명하다. 이 길은 해안지방인 울산의 해산물과 내륙지방인 밀양의 농산물을 교역하는 통로로 간월산과 신불산, 영축산 등 해발 1000m 이상 봉우리들로 이어져 있다.

울산 울주군 간월재 가을 전경. (사진=울산 울주군 제공)
영남알프스, 울산·밀양 일원 해발 1000m 이상 9개의 산…수려한 산세와 풍광

영남알프스는 울산과 밀양, 양산, 청도, 경주의 접경지에 형성된 가지산을 중심으로 해발 1000m 이상의 9개의 산이 수려한 산세와 풍광을 자랑하며, 유럽의 알프스와 견줄만하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다. 언론이나 등산 애호가들 사이에서 비공식적으로 붙여진 영남알프스는 2015년 울산시 울주군 상북면 등억리에 알프스를 붙여 ‘등억알프스리’라는 지명이 생기면서 공식 명칭으로 탄생했다.

영남알프스는 가지산(1241m)을 중심으로 천황산(1189m), 운문산(1188m), 신불산(1159m), 영축산(1081m), 간월산(1069m), 고헌산(1034m) 등으로 구성돼 있다. 이 중 신불산과 간월산은 산과 산 사이에 들어선 억새 숲이 환상적인 절경을 만들면서 전국적인 관광 명소로 급부상하고 있는 명산이다. 신불산(神佛山)은 신과 부처가 있는 산이라는 의미로 이 지역에서는 신성한 산으로 알려져 있다. 간월산(肝月山)은 1540년 전에 이 산기슭에 간월사라는 사찰이 있어 간월산으로 불린다.

드론의 촬영한 울산 울주군 간월재 전경. (사진=울산 울주군 제공)
간월산·신불산·영축산 4㎞ 능선에 338㏊ 억새 군락지…국내 최대 규모

선선해진 가을바람을 맞으면서 시작한 산행은 배내고개에서 시작했다. 배내고개는 배가 많이 열리는 배내골(梨川洞)로 가는 길목이라는 의미로 붙여졌다고 한다. 초입부터 계단이 적지 않지만 영글어가는 가을 풍경에 지루함을 느낄 틈은 없었다. 먼 옛날 밀양과 언양을 넘나들던 장꾼들이 봇짐을 지고, 힘겹게 오갔던 배내고개의 이야기를 들으니 고단하면서도 정겨웠던 그들의 흔적이 느껴졌다.

배내봉에서 간월산으로 접어드는 길은 우거진 숲을 따라 굵은 바위가 즐비했다. 숲에 들었는가 싶으면 다시금 펼쳐지는 시원한 풍경과 눈길 닿는 곳곳이 모두 절경이었다. 2시간 남짓 이어진 산행 끝에 다다른 곳은 간월산과 신불산 사이에 오목하게 자리한 간월재였다. 달이 넘어가는 마루고개란 뜻의 간월재는 간월산과 신불산 사이 평평한 고원으로 간월재에서 신불산, 영축산으로 이어지는 4㎞의 능선에는 338㏊에 달하는 국내 최대 규모의 억새 군락지가 있다.

울산 울주군 간월재. (사진=박진환 기자)
시시각각 금·은빛으로 변하는 억새 풍경에 곳곳서 탄성…10월 최고 절정

억새숲은 희끗희끗해지고 있었고, 보는 각도와 햇살에 따라 은빛과 금빛으로 시시각각 변하고 있었다. 적당히 시원한 날씨와 싱그러운 능선의 바람, 초록 평원을 타고 밀려오는 억새 물결에 가슴이 벅찼다. 산허리와 정상부에 은빛 융단을 두른 듯 펼쳐져 있는 억새는 거센 바람에 허리가 휘청휘청했지만 결코 꺾이지 않았다. 완벽한 황금빛 물결을 이루기 전인 9월에도 이미 간월재에는 등산객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전문 산악인들은 물론 젊은 연인들, 아이와 함께 온 가족들에 노부부까지 남녀노소 모두 인생 샷을 남기기 위해 여기저기에서 연신 사진을 찍고 있었다. 선선한 가을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를 바라보고 있으니 내 안의 작은 근심 걱정은 한없이 작게 느껴질 만큼 경이롭기까지 했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기후변화는 국내 최대 규모의 억새 군락지인 이곳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토양침식과 세굴(洗掘)현상, 산악경주용 차량 등에 의한 훼손과 잡관목 침범 등으로 억새자원이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울산 울주군은 2004년부터 억새 보존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신불산 억새평원과 재약산 사자평원 등 영남알프스 일대 억새를 ‘숨어있는 자원 명품화 사업’ 대상으로 정하고, 매년 잡목을 제거하고, 비료를 주는 등 억새복원에 10여년 넘게 정성을 쏟았다.

울산 울주군 간월재에서 봐라본 동해 바다. (사진=박진환 기자)
기후변화에 억새 자원 감소…울주군, 20여년 넘게 억새복원 사업에 심혈 기울여

이유락 울산 울주군 산림휴양과 주무관은 “신불산과 간월재 등 영남알프스 일원 억새는 전국 최대 면적을 자랑하고 있지만 여러 요인들로 점점 면적이 줄어들고 있다”며 “억새군락지의 쇠퇴를 막기 위해 2014년 영남알프스 산림생태(억새)복원사업 기본계획 수립했으며, 매년 잡관목제거, 억새식재, 비료주기 등 복원사업을 실시해 지역주민 및 국민들의 산지관광을 통한 소득증대 및 휴양문화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늘이 내린 천혜의 산림자원을 활용해 관광자원화 및 문화상품을 만들어 지역경제 활성화도 이제 결실을 맺고 있었다. 울주군은 2022년부터 영남알프스가 있는 4개 시·군과 힘을 합해 해발 1000m 이상 영남알프스 아홉 산 정상을 완등하고 ‘인증샷’을 올리면 메달과 인증서를 주고 있다.

영남알프스의 핵심 시설인 영남알프스 복합웰컴센터를 중심으로 영화제와 각종 문화공연도 이어지고 있다. 캐나다 벤프, 이탈리아 토렌토 영화제와 함께 세계 3대 산악영화제를 목표로 시작한 울주세계산악영화제는 올해 9회째로 전 세계 28개국에서 보낸 산악영화 97편의 영화가 상영됐다. 울주군은 울주세계산악영화제 기간에 맞춰 9~10월 이 일대에서 울주 산악 텐(10) 페스티벌도 같이 개최한다.

영화제 및 산행을 위해 찾아온 전 세계 방문객들에게 지역을 알리고, 축제간 시너지 효과를 만들기 위해 기획된 이 페스티벌은 울산울주세계산악영화제를 기점으로 △울주오디세이 △전국 직장인&동호인밴드 페스티벌 △영남알프스 완등인의 날 △한우 불고기 축제 △울주군수기 전국스포츠 클라이밍대회 △영남알프스 전국 하프마라톤 △울주 트레일 나인피크 대회 △울주 드론라이트쇼 △언양번영회 한우 먹거리장터 등 10개 행사가 각각 진행된다.

이 중 울주오디세이는 영남알프스 일대에서 펼쳐지는 공연으로 유명하다. 이색적인 공간에서 펼쳐지는 시각·청각적 체험으로 차별화된 경험을 제공해 아름다운 산악 관광 자원을 홍보하는 동시에 자연을 문화예술이 공존하는 공간으로 변모시킨 울주군의 대표적인 문화행사이다. 또 복합웰컴센터에서는 캠핑과 힐링산악트레킹, 히말라야 베이스캠프 체험, 익스트림스포츠 시범공연, 산악 전시, 어린이 미술대회, 음악공연 등 다양한 프로그램도 선보이고 있다.

울산 울주군 간월재 억새숲 전경. (사진=국립신불산자연휴양림 제공)
세계산악영화제·울주 오디세이 등 다양한 문화예술 행사로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

산림청도 울산 울주군 신불산 억새숲을 대한민국 100대 명품숲에 지정한 데 이어 숲의 관광자원화 및 산촌경제 활성화를 위해 각종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신불산 억새숲의 경제적 효과도 지역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울주군이 조사한 신불산 억새숲 경제적 효과 분석 자료에 따르면 연간 방문객은 지난해 기준 13만 5276명으로 생산유발효과는 554억원, 고용효과는 518명에 달한다. 또 산림의 공익적기능은 138억 7000만원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유락 주무관은 “울주군은 억새숲을 지역의 중요한 생태관광 자원으로 인식한다”며 “영화제와 울주 오디세이 등 문화·체험 행사를 연계해 주변 숙박시설 및 식당 등 지역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는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본격적인 억새 관광 시즌에 맞춰 인근에 있는 신불산자연휴양림도 방문객 맞이 준비에 한창이다. 김명종 국립자연휴양림관리소장은 “신불산자연휴양림은 영남알프스 9봉 중 신불산, 영축산, 간월산을 병풍처럼 끼고 있어 상단 휴양림에서 1시간 정도만 오르면 전국 최대의 억새평원인 간월재와 신불산 억새평원을 마음껏 누릴 수 있어 인기가 좋다”며 “자연 속 편안한 쉼터 국립자연휴양림에서 은빛 억새도 감상하고 가을 산행의 즐거움도 만끽하며 힐링하시길 바란다”고 전했다. 시원한 가을 바람을 맞으며, 간월재에서 내려오는 산행은 못내 아쉬웠지만 언제가 다시 올 것이라는 기대감에 또 다른 행복한 기억이 되고 있었다.

2022년 10월 울산 울주군 간월재에서 열린 울주오디세이가 열린 가운데 관람객들이 공연을 보고 있다. (사진=울산 울주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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