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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계가 대혼란에 빠졌다. 25일 국회 본회의에서 상시 근로자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에 중처법 시행을 2년간 유예하는 방안이 무산되면서다. 인력난과 재정난에 시달리는 대다수 중소기업은 중대재해 발생시 대표 처벌로 인한 폐업 공포에 사실상 대책 없이 노출됐다는 게 현장 목소리다. 또한 음식점 등 자영업자들도 준비는커녕 법 적용 대상이 되는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적지 않다.
중처법은 산업현장에서 근로자가 1명 이상 사망하거나 동일한 사고로 6개월 이상 치료해야 하는 부상자가 2명 이상 발생하면 사고예방 의무를 다하지 않은 사업주와 경영책임자를 1년 이하 징역이나 10억원 이하 벌금에 처하는 법이다. 50인 이상 사업장 대상으로 2022년 1월 27일부터 시행됐던 중처법은 이번 유예 불발로 오는 27일부터 50인 미만 사업장에서도 본격 시행된다. 중소기업계가 준비 부족을 이유로 추가 유예를 호소하자 여당 중심으로 ‘2년 추가 유예’ 방안을 논의해왔지만 결국 야당과의 입장차를 좁히지 못했다.
중소기업계가 가장 많이 지목하는 문제점은 ‘준비 부족’이다. 정부 지원책 역시 현장에서 먹히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번 중처법 확대 적용으로 5인 이상 음식점 등을 하는 자영업자 역시 법 적용 대상이 됐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21년 기준 5~49인 사업체 수는 71만2697개로 이 가운데 자영업자는 26만4908명이다. 하지만 상당 수 소상공인은 법 시행 자체를 잘 알지 못했다.
서울 마포구에 있는 고깃집 대표 김씨(가명)는 “뭐가 중대재해냐”면서 “주방에서 칼질하다 다치거나 불판을 갈다가 데이는 경우까지 사업주가 처벌받게 되느냐”고 반문했다.
제조업 현장에서도 중처법 확대 적용으로 기업을 운영하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크다. 충남 공주에서 근로자 35명과 함께 폴리스티렌 발포 성형제품을 만드는 안 모 대표는 “현재 규제로도 근로자 보호가 가능하고 미흡한 것이 있으면 보완하는 선에서 개선해야지 사업주를 감옥으로 보내는 게 정상적인 나라인가”라며 “중처법은 기업활동 포기법이다. 중소기업 하는 사람들이 다 내려놓고 머리띠 두르자는 얘기가 나온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중처법에 따른 사업주 등이 해야 할 의무는 상당히 방대하다. 때문에 관련 지식이나 정보가 부족한 중소기업은 민간 컨설팅 업체나 노무법인에 의존하는 경우가 늘었다. 실제 약 150만명이 가입한 자영업자 카페에도 관련 문의 및 홍보 게시글이 부쩍 증가했다. 특히 재해 발생 위험이 높은 건설·제조 중소기업에서는 부랴부랴 대응 방안을 찾느라 분주하다.
경기 광교에서 전기 설비 공사업체를 운영하는 김 모 대표는 “50억~100억원 규모의 공사를 수주해 현장에 안전관리자를 채용하고 있는데 이들 급여는 부르는 게 값이라 임원 연봉 수준을 줘야 한다”면서 “그나마 뽑히면 다행이다. 대기업이 안전관리자를 독점하고 있다”고 했다.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일각에서는 법 접촉을 피하기 위한 궁여지책으로 감원이나 폐업을 고려하겠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강서구 소재 중식당 이씨(가명)은 “중처법에 걸리면 폐업은 물론 인생이 나락으로 가는 건데 차라리 직원을 내보내 법망을 벗어나는 게 낫겠다”고 말했다. 경북 경주에서 비철금속 제조업체를 운영 중인 강 모씨는 “회사 직원이 10명인데 전부 50~60대”라며 “나이가 들면 움직임이 둔해져 사고 위험에 노출되기 쉬워 젊은 인력은 구하기 어려우니 사업을 포기하는 게 낫겠다”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