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달 25일 오전 9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 되면 필자에게 깍듯이 카톡 메시지로 인사를 건네오는 곳이 하나 있다. 첫 문장은 늘 이렇다. “○○○님, 오늘은 △△은행 통장으로 국민연금이 지급되는 든든한 날입니다.” 자칭 ‘나 대신 부모님 챙겨주는 너의 이름’이라는 국민연금공단이 연금이 통장에 입금됐음을 알려주는 착한 인사다. 메시지를 대할 때의 느낌은 묘하다. 인생에 꽃길만 있는 줄 알았던 시절의 월급 통장에 찍히던 숫자와 비교하면 쓴웃음이 나올 때도 적지 않다. 하지만 이런 감정은 곧‘감사’‘감동’으로 바뀌고,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 때도 많다. 아직 일을 하고 있는데 많은 금액은 아니어도 연금 받기가 멋쩍어서다.
연금공단 통계에 따르면 지난 3월 기준 872조원대의 적립금을 쌓아놓고 있는 국민연금의 가입자 수는 약 2200만명이고 수급자는 545만여명, 평균 수급액은 54만8000여원이다. 일부에서는 용돈에 불과한 수준이라고 푸념한다지만 그래도 한국의 노인빈곤율(2018년 43.4%)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평균의 3배에 이르는 상황에서 고령자들을 보듬어 주는 확실한 안전판임이 틀림없다. 65세 이상의 평균 금융자산이 가구당 3212만원(2020년 노인실태조사)에 불과하고 자식에게 의지하기가 쉽지 않은 현실에 비춰 본다면 국민연금의 존재는 그야말로 수호천사에 가깝다.
하지만 외부 시선은 크게 엇갈린다. 세대에 따라 다르고, 연령이 낮아질수록 좋은 인상을 갖기 어렵다. 기금 곳간의 불안한 장래가 주원인이다. 그리고 그 근거는 고령화와 저출산이 세계 최고의 속도로 동시 진행되는 이 땅에서 이대로라면 미래 세대는 쪽박만 찰 수 있다는 암울한 전망에 뿌리를 두고 있다.
심지는 타들어 가도 곧 터질 폭탄이 아닌데다 수급자들에게 따박따박 돈이 들어오니 누구든 연금의 위기를 실감하기 어렵다. 경보가 계속 울리고 있다지만 어렴풋이나마 실상을 아는 이들은 침묵하고, 연금받는 사람은 통장이 축날까 싶어 입을 다무는 셈인지라 파국 앞에서 서로 모른 체하는 격이나 다름없다. 이런 가운데서도 그나마 연금 전문가들이 양심을 담아 내놓는 메시지는 섬뜩하다. “수술을 더 미루면 더 센 폭탄이 터질 수밖에 없다”는 경고와 함께 “미래 세대의 반란이 일어날 것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다단계 금융사기 같다는 고백도 나왔다.
파국을 막을 셈법이 없는 건 아니다. 윤석명 한국연금학회장에 따르면 2090년 재정안정 목표를 달성하려면 내년에 당장 국민연금 보험료율을 19.38%로 올리거나 내년부터 2042년까지 단계적으로 올릴 경우 22.4%까지 인상해야 한다. 연금 연구의 권위자인 그가 지난해 하루 1400억원, 1년 기준 50조원의 미적립부채가 쌓여 있는 국민연금의 위기 진행을 막고 노후 안전판 역할을 지켜내기 위해 꼭 필요하다고 본 최소한의 수치다. 그러나 현재 납부하는 9%의 보험료도 버겁다는 직장과 개인이 널려 있는 상태에서 이런 신통술이 먹혀들 리 만무하다.
국민연금의 위기 앞에 우리는 모두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더 내고 덜 받는 것이 최선의 답이지만 이를 외면하는 한 누구 하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수술을 미룬 정부와 표심을 의식해 입으로만 개혁을 외친 국회는 직무유기를 인정하고 깊이 반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나라를 이끄는 지도자에게 가장 큰 책임이 있음은 물론이다. 자기 몫을 희생하고, 고통을 분담하는 일을 더 미룬다면 어른 세대는 나라 곳간엔 빚만 가득 채우고, 연금은 빈 깡통으로 만들어 버린 ‘먹튀’ 죄인이 될 수밖에 없다. 잘못을 인정하는 데는 어느 조직보다 굼뜬 곳이지만 정부도 이미 “2057년이면 기금이 소진될 것”이라고 3년 전에 밝혔음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