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간 성과 내기에 집착…한국 R&D의 '민낯'

인재풀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기초연구 개발비는 겨우 14.4%
응용·개발 분야 비중은 83.6%…산업생산 목적 연구 쏠림 심해
"행정 업무 부담 줄여 연구 중심 생태계 조성 나서야"
  • 등록 2019-07-24 오전 5:00:00

    수정 2019-07-24 오전 7:40:04

[이데일리 이연호 기자]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부품 산업의 국산화까지 전문가들은 20년 정도를 보고 있습니다”
GDP 대비 연구개발비 비중 TOP10 [이데일리 이동훈 기자]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지난 15일 국회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이하 과방위) 업무보고에서 일본에 대한 의존을 벗어나 우리나라가 자체적으로 소재·부품 연구·개발(R&D)에 나서더라도 앞으로 20년은 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투입 비용 대비 성과 낮은 ‘코리아 R&D패러독스’…단기 압축 성장 전략 탓 장기적 안목 R&D 실종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이 지난 1월 발행한 ‘2017년도 연구개발활동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17년 우리나라의 총 연구개발비는 78조7892억 원으로 세계 5위 수준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구개발비 비중은 4.55%로 세계 1위다. 연구참여비율을 고려한 상근상당연구원(FTE) 수는 38만3100명으로 세계 6위다. 더욱이 경제활동 인구 천 명당 연구원 수는 주요국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현실은 사뭇 다르다. 연구개발단계별 연구개발비의 경우 기초 연구개발비 14.5%, 응용 연구개발비 22.0%, 개발 연구개발비 63.6%로 기초 연구개발비의 비중은 주요국 대비 낮은 편이다. 연구개발비를 경제사회목적별로 분류한 것을 봐도 산업생산 및 기술 분야의 비중이 60.26%로 압도적으로 높다. 기초연구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는 지식의 일반적 진보를 위한 목적은 고작 2.6%에 불과하다.

이런 현실은 결과물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KISTEP의 ‘2018년 국가 과학기술혁신역량평가’에 따르면 우리나라 연구원 1인당 SCI(과학기술논문 인용색인) 논문 수(0.167편)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국 중 33위다. 지난 2013년에서 2017년까지 논문 1편 당 피인용 횟수는 5.84회로 최하위인 35위다.

이 같은 수치들은 우리나라의 R&D가 그동안 어떤 식으로 흘러왔는지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투입 비용 대비 질적 성과가 낮은 ‘코리아 R&D 패러독스’의 민낯이다.

우리나라는 소위 ‘한강의 기적’으로 불릴 정도로 단기간에 고도의 집약적 성장을 이뤄냈다. 진득하게 오랜 시간이 걸리는 소재·부품 같은 R&D 분야에 투자하는 것은 우리에겐 맞지 않았다. 그럴 여유가 없었다. 짧은 시간에 인력과 자본을 집중 투입해 당장 기업체가 써먹을 수 있는 실용적인 기술 개발에 집중하는 것이 우리의 성장 전략에 맞았다. ‘노벨상이 왜 나오지 않느냐’, ‘소재·부품을 왜 그동안 수입에만 의존했느냐’는 등의 개탄은 그간 우리나라의 경제개발 방식을 봤을 때 어쩌면 당연한 결과라는 분석이다.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올라서며 조금 여유를 갖게 된 우리나라는 이제 낡은 R&D 패러다임을 바꾸자는 논의가 활발하다. 이른바 R&D 혁신이다.

“연구자 중심 연구 생태계 조성 절실”…‘국가 R&D 혁신 특별법’ 연내 입법 추진

이와 관련 지난 2일 국회 과방위 회의실에서는 ‘국가 연구개발 혁신을 위한 특별법안’에 대한 공청회가 열렸다. 이날 공청회에서 진술인으로 참여한 김연수 충남대학교 신약전문대학원 원장(교수)은 이데일리와 통화에서 R&D 혁신을 위해 연구자 중심 연구 생태계 조성을 위해 연구자의 부담을 한층 더 덜어 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 원장은 “지나친 행정업무, 사업별·부처별 연구비 집행·관리 법규의 상이함 등으로 인해 연구자가 연구 외적인 일로 부담이 큰 상황”이라며 “R&D 생태계의 핵심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플레이어는 연구자 뿐 아니라 주관연구기관, 연구관리기관, 부처 등 다양한데 그 중 유독 연구자에게만 책임과 부담이 집중되고 있는 현실을 바꿔나가야 할 것 ”이라고 말했다.

시스템 개선 뿐만 아니라 정부와 연구자가 서로 신뢰할 만한 성숙한 연구 문화 역시 국가 R&D 혁신을 위한 디딤돌이라는 게 연구계의 중론이다. 이날 공청회의 또 다른 진술인이었던 임현의 한국기계연구원 나노자연모사연구실장은 “소수의 연구비 부정행위를 바로 잡기 위해 너무나 많은 비용을 투입하고 있는 게 현실”이라며 “자율을 최대한 보장해 주되 그만큼 제재도 강화하는 투트랙 전략을 취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이어 특별법 통과를 전제로 추진 중인 ‘연구비 및 과제지원시스템’ 통합 구축과 관련, 임 실장은 평가의 공정성을 위해 인공지능(AI) 접목의 필요성도 제기했다.

그나마 연구계에서 지적해 온 국가 R&D 문제점과 개선방안이 정부가 지난해 7월 수립한 ‘국가 R&D혁신방안’에 포함됐다. R&D 혁신방안은 연구자들이 하고 싶은 연구에 몰입할 수 있도록 연구에 걸림돌이 되는 것들을 최대한 모두 제거해 주겠다는 것이다. 여기에다 연구자들의 행정부담을 완화해 주고 부처마다 제각각 운영 중인 연구비 관리시스템을 통합하는 것 등이 포함됐다. 이와는 별개로 정부는 R&D 혁신을 위해 연구자 주도 자유공모형 기초연구비를 오는 2022년까지 지난 2017년 대비 두 배 이상 증가한 2조5000억원으로 늘릴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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