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플라스틱의 기습…위해하지 않은게 아니다[플라스틱 넷제로]

혈액타고 이동하는 ‘나노 플라스틱’
환경선 검출 기술력 부족…얼마나 노출됐는지 인류는 '아직 모름'
미세플라스틱 유해성, 韓 연구진 세계 최초 규명
  • 등록 2022-08-12 오전 5:30:00

    수정 2022-08-12 오전 5:30:00

[이데일리 김경은 기자] “깃발을 꽂으면 세계 최초다.”

등반가 이야기가 아니다. 미세플라스틱 연구자들이 하는 말이다. 그만큼 미세플라스틱 연구는 불모지에 가깝다는 뜻이다.

롤프 할든 미국 애리조나주립대 교수는 그의 저서 ‘오늘도 플라스틱을 먹었습니다’에서 “인류는 최근에서야 미세플라스틱의 위험성을 깨닫기 시작했다”고 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 인류는 미세플라스틱의 공격을 받고 있지만, 미세플라스틱의 위해성을 제대로 연구하기 시작한 것은 불과 3년여로 평가된다.

그 결과 올 들어 미세플라스틱의 유해성을 세계 최초로 증명한 연구 결과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올 한해 발표된 개별 연구자들의 논문 모아보니 미세플라스틱이 우리 인체에 가하는 위협은 이미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데일리 문승용 기자]
인간의 혈액서 검출된 ‘나노 플라스틱’

미세플라스틱은 지난 2004년 영국 폴리머스대 톰슨 교수가 사이언스지에 5㎜(5000㎛) 이하 플라스틱으로 개념화한 이후, 최근 연구는 인체의 막을 지나 혈액에도 침투할 만한 크기인 ‘나노 플라스틱’까지 나아가고 있다.

지난 5월 국제환경저널에 게재된 암스테르담 대학 연구팀의 논문에 따르면 실험에 참가한 성인 22명 중 77%인 17명의 혈액에서 0.7㎛(1㎛=0.0001㎜) 이하의 미세플라스틱이 검출돼 충격을 주고 있다. 이는 지난해 이탈리아 산모의 태아쪽 태반에서 5~10㎛의 미세플라스틱을 검출한 것보다 작은 크기다. 신생아의 첫 대변(태변)에서도 검출돼 미세플라스틱이 태반을 침투하는 것이 입증된 데 이어, 혈액을 타고 우리 몸 곳곳을 미세플라스틱이 이동한다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 주삿바늘을 통해 유입됐거나, 신체 내에서 분해되며 장기 막을 뚫고 이동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호흡, 음식과 음료를 통한 섭취로 마이크로 미세플라스틱이 유입된다는 것도 밝혀졌다. 수술 중 분리된 폐조직에서도 검출됐으며, 특히 신생아 대변에선 성인보다 미세플라스틱이 10배 이상 많았다. 신생아의 경우 젖병 등 플라스틱류 사용이 성인에 비해 높으며, 자외선살균 소독 등의 과정에서 미세플라스틱으로 떨어져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이데일리 김일환 기자]


환경에선 검출 기술력 부족…‘위해한 수준’ 판단 일러

식약처는 지난 3월 우리나라 성인의 식품섭취량을 토대로 산출한 인체노출량(하루 평균 16.3개)과 알려진 독성정보를 비교해 “인체에 위해한 수준이 아니다”라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현재 기술력 수준에선 다소 이른 판단이란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미세플라스틱이 정의된 이후 진행된 연구들은 해양과 생선, 조개류 등 해양 생태계를 중심으로 연구돼왔다. 대부분 인체 흡입 시 배출되는 크기로, 수산물은 여러 번 세척하는 과정 등을 거치면 상당 부분 제거도 가능하다. 인체에 크게 위해하지 않다는 결론이 나온 배경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아직 인체 위해성 여부를 논할 단계는 아니라고 지적한다. 연구 결과가 아직 부족해서다.

식약처 분석 대상은 환경 샘플을 기반으로 나온 판단이다. 해양이나 담수 등 환경에서 체취 한 샘플에서는 나노플라스틱 검출이 불가능하다. 환경 샘플은 인체 샘플과 달리 오염도가 높아서 아직 나노플라스틱을 검출할 기술력이 없다. 즉 현재 기술력으로는 우리가 실제 환경에서 얼마나 많은 미세플라스틱에 노출돼 있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는 말이다.

박준우 안전성평가연구소 환경독성영향연구센터장은 “지난 2019년 세계보건기구(WHO)가 먹는 물에서 미세플라스틱의 위해성에 대한 신뢰성 있는 증거는 없으나 연구가 더 필요하다고 밝힌 이후 최근 3년간 위해성을 입증한 자료들이 축적되는 과정에 있다”며 “막연한 불안도 위험하지만, 위해성이 없다고 볼 근거도 현재로선 부족하다”고 말했다.

[이데일리 김일환 기자]
미세플라스틱 유해성, 韓 연구진 세계 최초 규명

미세플라스틱의 위해성은 아직 연구 초기 단계이지만, 유해성을 입증한 결과들이 속속 발표되고 있다.

한국원자력의학원의 김진수 박사 연구팀이 지난 4월 체내에 흡수된 미세플라스틱이 암세포의 성장 및 전이를 가속한다는 것을 세계 최초로 규명했다. 연구팀은 10㎛ 이하의 폴리스틸렌을 인체 세포에서 얻은 위암세포에 노출한 결과 노출된 세포는 최대 74%더 빨리 자랐고, 전이는 3.2~11배 많았다고 밝혔다.

또 김 박사 연구팀은 실험쥐들에게 미세플라스틱을 섭취시킨 이후 관찰한 결과 자폐스펙트럼 장애 유발을 규명하기도 했다. 미세플라스틱 섭취 후 실험쥐 전 연령대에서 사회성이 감소하고 강박적이고 반복적 행동이 증가하는 것이 확인됐고, 사회성 지수는 미세플라스틱을 섭취하지 않은 쥐보다 50% 낮게 나타났다.

플라스틱 자체에는 독성이 없어 그동안 미세플라스틱은 위해성이 낮다는 것이 공식적인 결론이었다. 다만 유해물질인 프탈레이트 등 플라스틱 첨가제나 해양 부유과정에서의 오염 등 부가적인 원인으로 우울, 자폐, 생식기능 교란 등의 문제를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에 반해 최근 연구 결과들에서 미세플라스틱 자체의 유해성이 입증되면서 미세플라스틱을 미세먼지처럼 유해물질로 지정해야 한다는 주장에 설득력을 더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국내 미세플라스틱의 환경 실태 조사와 인체의 위해성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미세플라스틱을 유해물질로 규정하는 등의 대책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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