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 김수헌기자]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사장단 회의 때면 빠뜨리지 않고 주문하는 사안이 있다. 삼성을 국민들로부터 존경받고 사랑받는 기업으로 만들자는 것이다.
진정한 글로벌 기업, 초일류 기업이 되려면 기술개발도 좋고 시장 점유율을 키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도경영, 고객만족경영, 윤리경영"으로 국민의 존경을 이끌어 내야 한다는 것이다.
제품과 서비스의 질이 아무리 높아져도 기업의 경영철학 그 자체가 질적으로 업그레이드시켜 국민의 사랑을 받지 못하면 초일류 기업 대우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익많이 내도 존경 못받는 기업은 "사상 누각"
이회장은 지난해 5월 삼성생명 등 금융계열사 사장단 회의에서 "정도경영"을 강조했다. 당시 카드사들의 무리한 영업경쟁과 이로 인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사실을 질타하는 것이었다. 이회장은 "금융업의 본질은 국민들의 경제생활에 도움을 주는 것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특히 "정도경영"에 힘써 국민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관행처럼 행해지던 경영방식 가운데 문제가 있는 것들을 즉각 고쳐나가야 한다"고 강조한 이회장은 "금융사들도 삼성다운 일류의 스마트한 경영을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앞서 4월 삼성전자(05930) 등 전자계열사 사장단 회의에서 이회장은 "삼성은 국민기업"이라고 단언했다. 국민기업으로서 역할과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고 지시했다. 그는 "삼성이 국가경제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커짐에 따라 우리가 어떻게 미래에 대비하느냐가 국가적으로 미치는 영향이 어느 때보다 크다"며 "국가경제의 주축을 이룰 국민기업으로의 역할과 사명감을 깊이 인식해 더욱 분발하자"고 사장단에 촉구했다.
이회장이 "존경받는 기업상"을 계속 주문하는 것은 그가 지난 93년 이래 삼성의 대변화를 강조하면서 주창한 질위주 신경영도 국민의 존경을 얻지 못하면 기업은 사상누각이나 다름없다는 경영철학과 무관치 않다.
제품의 질을 바꾸는 것만이 신경영이 아니라, 경영의 질, 그리고 경영을 하는 사람을 질도 완전히 바꿔야 한다는 게 이회장의 생각이다.
지금은 카드발 금융위기, 카드채 대란 등으로 카드사들이 수세에 몰여있지만 지난해까지만해도 당시 카드사들이 엄청난 이익을 올렸다. 각 그룹마다 카드사 사장들이 회장들로부터 칭찬을 받았을 때 삼성은 카드 경영진을 전격교체했다. 사회로부터 비난받는 기업은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용납 못한다는 것이었다.
모그룹 카드사 사장이 사장단 회의에서 회장이 유도하는 박수를 받고, "모두 A사장을 본받도록 하자"는 극찬까지 받았다는 사실과는 너무나 대조적인 사건이었다.
◇"신경영 초심과 IMF 당시 위기의식으로 돌아가자"
오늘(7일)은 이회장이 지난 93년 독일 푸랑크푸르트에 전 경영진을 모아놓고 질위주 신경영을 선포한지 딱 10년이 되는 날이다. 삼성은 이를 기념해 지난 5일 신라호텔에서 이회장이 주재하는 만찬 겸 사장단 회의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이회장과 사장단은 2기 신경영 핵심전략 과제 중 하나로 사회친화적 경영을 성정했다. 경제불황 극복의 의지를 다지면서, 천재급 인재 양성을 통한 나라살리기에도 앞장서겠다고 다짐했다.
삼성은 자체 분석한 신경영의 성공요인 중 하나는 "사회와 함께 하는 경영실천"이다.
삼성구조조정본부 이순동 부사장(홍보팀장)은 "93년 신경영 선언이후 경영이념의 근간으로 인간미, 도덕성을 설정하고, 기업시민으로서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국내 기업 최초로 사회공헌활동을 본격적으로 시행해왔다"고 말한다.
삼성은 지난 9년동안 총 1조 3110억(연평균 1450억원)을 사회복지, 문화예술, 학술교육, 환경보전, 국제교류 등 5대 사회공헌분야에 투입해왔다. 국민과 함께하는 기업으로서 이윤창출 뿐만 아니라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활동을 수행하면서 나눔의 기업 이미지 실천에 노력해왔다.
99년부터 4년 연속 이웃돕기 성금 100억 기탁이나 지난해 수해 긴급복구 지원금 80억원 기탁 등 "양적인" 사회기여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순동 부사장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 수행과 더불어 임직원들도 사회봉사 활동에 참여하기 위해 94년 국내기업 최초로 창단한 사회봉사단의 활동은 더 적극적이었다"고 소개한다.
일상화 된 사회복지 활동 외에 대형참사현장에 연인원 수천명 이상이 수십일 이상 뛰어들었던 사례도 많다.
삼성은 5년전인 98년만해도 신라호텔에서 이른바 "생존대책회의"를 열어야만 했다. 이회장은 그 해 창립 60주년 기념 메시지에서 "우리는 지금 생존마저 확신할 수 없는 창업 이래 최대의 위기에 맞고 있다. 위기극복을 위해 생명과 재산, 명예까지 내놓겠다"면서 비장한 각오를 밝혔었다.
삼성은 신경영 10년을 맞은 사장단이 지난 5일 국내외 경영여건이 결코 현재의 성과에 자만하거나 안주해서는 안될 상황이라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신경영 당시의 초심과 IMF직후의 위기의식으로 재무장해 지금의 경제 불황 극복과 미래를 대비해 나가자고 다짐했다고 밝혔다.
이회장은 이 자리에서 "신경영을 안 했으면 삼성이 2류, 3류로 전락했거나 망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등골이 오싹하다"고 회고하고,"신경영의 성과를 어려운 국가 경제위기 극복과 국민 생활에 도움이 되도록 확산시켜 나가자"고 당부했다.
그는 "이를 위해 국가 차원에서 인재를 발굴하고 양성하는데 삼성이 적극 나서야 한다"면서 "제2신경영은 "나라를 위한 천재 키우기"에 중점이 두어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불확실한 미래에 생존할 수 있는 길은 인재 양성 밖에 없다는 신념을 다시 한번 역설한 것이다.
◇나라살리기, "인재양성"으로 실천..10년 뒤 다시 삼성을 평가한다
이회장은 지난 2001년 7월 신경영의 성과에 대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이제 겨우 8년이다. 지난 몇십년동안 굳어진 관행과 관습을 바꾸기에는 부족한 기간이다. 그러니 적어도 10년은 지나서 평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나름대로 의미는 있었다. 임직원들의 마인드가 양보다는 질을 중시하는 쪽으로 많이 바뀌었다. IMF라는 어려운 기간에도 삼성은 계속 좋은 성과를 냈는데, 이는 정부와 국민이 도와주고 우리 임직원들이 헌신적으로 노력한 결과다.
하지만 반도체를 비롯해 몇몇 주력제품의 세계경기가 좋았던 것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런데도 우리가 다 잘해서 그런 것으로 착각하고 경쟁력이 생겼다고 자만할까 걱정된다. 지금 불안한 세계경제 여건을 보면 한시도 긴장을 풀 수 없는 상황이다"
그로부터 2년이 더 흘렀고, 신경영은 "성공적"인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리고 삼성은 2기 신경영을 선포, 중단없는 개혁과 준비경영, 인재육성으로 초일류 기업 삼성 존경받는 기업 삼성상을 세우겠다고 다짐했다.
10년 뒤 다시한번 삼성의 신경영이 평가받을 때 삼성은 자신에 대해 어떤 평가를, 바깥에서는 어떤 평가를 내릴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