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고발자에 3700억원 포상금…5조원 개미 피해 막았다

주가조작 없는 미국서 배운다①
금융위기 '도덕적 해이'서 반면교사
제재금 최대 30% 제보자에 포상금
내부고발 활성화법 후 제보 55배 늘어
  • 등록 2023-12-11 오전 6:00:00

    수정 2023-12-11 오전 6:00:00

[워싱턴 D.C.=이데일리 최훈길 기자]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지난 5월 주가조작과 같은 증권범죄에 대한 정보를 사전에 알린 내부고발자에게 2억7900만달러의 포상금을 지급했다. 우리돈으로 3700억원에 달한다. SEC가 지급한 포상금으로도 역대 최대 규모다. 놀라운 숫자지만, SEC는 이 같은 내부고발로 40억달러, 5조원이 넘는 투자자 피해를 막았기 때문에 성공적인 조치였다고 평가했다.

헤스터 피어스(Hester Pierce) SEC 위원은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워싱턴 D.C. SEC 집무실에서 이데일리와 만나 “주가조작을 하려는 사람은 많지만, 미국엔 내부제보(휘슬블로잉·whistleblowing)와 같은 이를 규제할 법이 잘 돼 있다”며 “한국 정부가 이를 도입한다면 정책 조언을 해줄 수 있다”고 말했다. 피어스 위원은 위원장 포함 5명으로 구성된 위원회의 고위급 위원(commissioner)이다.

피어스 위원이 소개한 법은 미국이 지난 2011년 도입한 ‘도드-프랭크법(Dodd-Frank Act)’이다. 금융위기 이후 자본시장 비리가 늘자 제재부과금의 10~30%를 제보자에게 포상금으로 지급하는 내용을 담아 만들었다. SEC에 따르면 포상금을 강화하며 334건에 불과했던 제보건수는 올해 1만8354건으로 늘어났다. 특히 제보의 질이 달라졌다. 처벌을 받느니 포상금을 챙기겠다는 내부고발자들이 늘어나면서다. 피어스 위원은 “포상금을 강화하자 SEC가 접근하기 어려운 내부 정보들을 많이 입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헤스터 피어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 위원(Hester Pierce SEC commissioner)이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오전 미국 워싱턴 D.C.에 위치한 SEC 집무실에서 이데일리와 인터뷰를 했다. 피어스 위원이 한국 언론과 인터뷰를 한 것은 올해 들어 이번이 처음이다. (사진=최훈길 기자)
미국은 올해 5000억원 넘게 포상금을 지급했지만, 주가조작 등 자본시장 불공정거래 제보자에게 지급한 우리나라 포상금 연간 총액은 재작년 1185만원, 지난해 0원, 올해 1억850만원에 불과했다. 1건당 최대 지급 한도는 20억원이다. 익명 제보는 불가능하다. 포상금 재원은 금융사가 부담하는 감독분담금이기 때문에 재원이 한정돼 있다. 내달 19일부터 자본시장법 개정안 시행에 따라 주가조작 등에 대한 과징금이 강화되지만, 과징금은 주가조작 피해보상금으로 사용되지 않고 국고로 전액 환수된다.

강석훈 조지워싱턴대 경영대학 교수는 “미국의 자본시장 제도는 강력한 SEC 권한 및 제보를 통한 선제적 적발, 적발시 엄벌, 집단소송이나 SEC 제재금을 통한 피해보상 및 투자자 보호까지 완비돼 있다”며 “특히 배신자 프레임 때문에 미국도 내부 제보가 힘들었지만, 파격적인 제보자 포상금 등 자본시장 생리를 잘 반영한 제도 덕분에 SEC가 증권범죄를 효과적으로 잡아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 시민이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오전 미국 워싱턴 D.C.에 위치한 증권거래위원회(SEC) 앞을 지나가고 있다. (사진=최훈길 기자)


1988년~2009년 당시 SEC에 접수된 제보는 매월 1~2건에 수준이었다. 현재 우리나라의 자본시장 불공정거래 포상금 한도(건당 20억원), 제보 상황과 비슷한 셈이다. 파격적 포상금 도입 이후 SEC에 접수된 제보는 제도 도입 직전인 2010년 334건에서 올해 1만8354건으로 55배 늘었다. 2023년 SEC 연례 의회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가장 많이 접수된 제보는 주가조작 관련 내용이었다.(그래픽=이미나 기자)
※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제작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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