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21일 미세플라스틱 문제 대응을 위한 다부처 협의체가 출범했다. 지난 2019년 7월 관계부처 합동으로 수립된 ‘과학기술 기반 미세플라스틱 문제대응 추진전략’ 이후 무려 3년 5개월만이다.
그동안 해외에서는 다양한 규제 논의가 진전된 반면, 우리나라의 미세플라스틱 관련 논의는 이제 첫 걸음을 겨우 뗐다. 우리 정부는 오는 2024년 플라스틱 국제협약에서 미세플라스틱에 대한 세부 방안이 나오기까지 지켜 본단 입장이다.
환경부 고위 관계자는 최근 이데일리와의 전화통화에서 “협의체 구성 이후 1차 회의에서는 사례조사와 다른 부처와의 사안 공유 등을 통해 많은 과제를 살폈다”며 “다만 (미세플라스틱 규제 논의는) 해외 규제 논의와 연계되는 만큼 2024년 플라스틱 국제협약에 미세플라스틱이 안건으로 논의되는지 여부를 지켜봐야한다”고 말했다. 상당기간 다부처 협의체는 관계부처의 정책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수준에 머물 것으로 파악된다.
아직 미세플라스틱의 위해성이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은데다, 국내 정부 조직상 미세플라스틱 소관 부처나 위원회 등 컨트롤 타워가 존재하지 않아 정책 추진 동력도 떨어진다. 국민들의 미세플라스틱에 대한 정책 인지도도 높지 않단 점 역시 적극적 규제 논의로 이어지지 않는 주요 요인 중 하나로 지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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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제품 규제의 틀 안에서 미세플라스틱이 논의되려면 우선 인체에 위해하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입증돼야한다. 그러나 미세플라스틱의 위해성 입증은 현재 연구수준에선 한계가 커 입증이 쉽지 않다. 다만 동물실험 결과에서 미세플라스틱의 생체에 위해하다는 것이 밝혀지는 등 규제 필요성을 높이는 연구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지난해 상반기 실험쥐에 미세플라스틱을 투입한 결과 암세포의 성장 및 전이를 가속하고 자폐스펙트럼장애를 유발한다는 것이 국내 연구진에 의해 세계 최초로 규명돼 유력 학술지에 등재됐다.
이후 암환자들과 임산부들 사이에서 미세플라스틱이 발생하는 제품에 대한 정보가 소셜네트워크상에서 활발하게 퍼지며 대응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높이고 있다. 최근 미세플라스틱 연구 가운데서는 플라스틱이 아니여서 안심하고 사용해도 된다고 믿었던 일회용 종이컵과 담배필터에 대한 연구가 화제를 모았다.
담배꽁초에서는 매년 약 30만톤의 미세섬유가 수환경으로 유입된 것으로 추정된다는 논문이 지난 2021년 한 연구진에 의해 발표됐다. 이는 세탁을 통해 발생한 유입량(28만톤)과 유사한 수준이다. 앞서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은 전 세계 해양에 분포하는 미세플라스틱의 35%가 세탁과정에서 발생한 미세섬유로, 조사된 발생원 중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고 공개한 바 있다. 대표적 미세플라스틱 발생원이었던 세탁만큼 담배꽁초가 환경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 추가로 드러난 셈이다.
이 외에도 자외선차단제, 마스카라, 보건용 마스크, 생리대, 티백차, 껌, 생수, 치아광택제, 콘택트렌즈, 도료 및 페인트, 인조잔디, 타이어, 농업용 폐기물 등 미세플라스틱 발생원은 다양하다. 바다와 담수에 무분별하게 버려진 각종 매크로(Macro) 플라스틱이 마모되면서 먹이사슬을 따라 인체에 유입되기도 한다.
국립환경과학원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연간 미세플라스틱 발생 잠재량은 연간 6만2780~21만5500톤으로 추정되며, 이는 해외에 비해 발생량이 매우 높은 수준이다. △높은 플라스틱 사용량 △국토 면적당 인구밀집도 △미세플라스틱 저감 정책 미흡 등이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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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플라스틱 문제는 단순히 해양 쓰레기로 규제하는 논의를 넘어서고 있다. 캐나다는 플라스틱을 인간의 보건을 위협할 화학물질로 규정했고, 유럽연합에선 광범위한 제품에 미세플라스틱 사용을 금지하는 논의를 진행 중이다. 이들의 규제 근거는 생태계에 미치는 악영향과 플라스틱 유출 폭증에 따른 환경 위협이다. 위해성 입증 한계에도 불구하고 선제적인 미세플라스틱 대응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미세플라스틱 규제 논의는 제조 과정에서 의도적으로 투입된 1차 미세플라스틱과 마모 등에 따라 비의도적으로 유출되는 것을 2차 미세플라스틱으로 구분된다. 1차 미세플라스틱은 기업의 사용을 제한하고 천연제품이나 대체물질을 사용토록 하고, 2차 미세플라스틱 규제는 한번 쓰고 버려지는 일회용 플라스틱에 대한 사용량 감축과 연계해 이뤄진다.
캐나다는 지난 2021년 4월 플라스틱을 환경보호법 부칙 1에 독성물질로 지정했다. 이 법에 따라 장관은 플라스틱 제조 품목에 위험 관리 조치를 개발할 수 있게 됐다.
실질적 규제조치가 논의되고 있는 유럽연합은 2018년 1월부터 5년여에 걸쳐 이해관계자 논의, 초안 마련, 회원국 협의·투표 등을 거쳐 올해 최종 합의안을 공개한단 계획이다.
아울러 비의도적 유출인 2차 미세플라스틱에 대한 규제는 해양쓰레기 현황조사에서 확인된 일회용 플라스틱 품목을 중심으로 △일회용 면봉 △포크·수저 등 커트러리 △음료용기 및 식품용기 △물티슈 △위생패드 △풍선 및 풍선막대 △필터를 포함하는 담배필터 등이다. 10개 제품에 대해 일회용 플라스틱 지침에 따라 사용을 금지하기로 했다.
심지어 일회용컵 보증금제가 시행되기로 했으나, 제주와 세종에서 선도적으로 도입하기로 하면서 전국 시행 시기는 요원하다. 일회용비닐 금지는 1년여의 계도기간을 부여키로하는 등 일회용품 규제정책은 뒷걸음질하는 중이다.
이에 대해선 미세플라스틱에 대한 문제를 다룰 위원회 등 컨트롤 타워가 없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해양은 해양수산부, 육상은 환경부, 개별 제품은 법령에서 정하는 소관부처가 담당한다. 철저하게 부처 칸막이가 존재하는 한국 정부조직에서 미세플라스틱에 대한 종합적 관리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
박정규 한국환경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지난달 15일 보고서를 통해 “미세플라스틱 관리 정책 추진의 원동력이 될 수 있는 위계화된 정책 전략이나 비전을 제시하고 중장기적 방향성을 가이드할 수 있는 컨트롤 타워가 부재하다”며 “이런 이유로 우리나라는 관리부처의 정책적 우선순위나 판단에 따라 특정 제품군 또는 발생원에 한정해 부분적으로 추진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지적이 나온지 일주일 후 다부처 협의체가 만들어졌으나, 종합 정책을 개발할 컨트롤 타워가 부재하긴 마찬가지다. 다부처 협의체의 위원장은 환경부 환경보건국장으로, 산업통상자원부·보건복지부·농립축산식품부·과학기술정보통신부·해양수산부·식품의약품안전처·농촌진흥청 등 8개 부처 과장이 위원으로 참여한다. 각 부처별 정책 목표가 다른 만큼 미세플라스틱 감축을 중심으로 중장기적 정책 아젠다를 개발할 동력은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기획기사는 이데일리 독자의 미세플라스틱 취재요청에 따라 한국환경연구원의 ‘미세플라스틱의 건강 피해 저감 연구 Ⅲ’ 및 ‘미세플라스틱 발생 저감을 위한 담배필터 관리방안’ 보고서를 중심으로, 유럽연합집행위원회와 캐나다 정부 웹사이트 등을 참고해 작성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