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독일마트서 산 물건 한국서 사면…플라스틱 쓰레기 3배

야채 과일 등 신선제품엔 포장없이 낱개 판매
빈용기 보증금, 일명 '판트'는 독일서 화폐처럼
1인당 플라스틱 폐기물량 차이 '생산 과정부터' 격차
  • 등록 2022-11-30 오전 5:35:00

    수정 2022-11-30 오전 5:35:00

독일 대형마트의 과일과 채소 등 신선제품은 대체로 무포장으로 낱개로 구매가 가능하다. 포도는 한송이씩 손잡이가 달린 종이백에 개별 포장되어 있고, 야채 묶음은 실을 이용해 포장의 부피를 최소화했다. [사진=이데일리 김경은 기자]
[프랑크푸르트=이데일리 김경은 기자] 독일에 도착해 가장 먼저 들른 대형마트는 재활용률 부동의 세계 1위답게 플라스틱 포장재 감축의 문지기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줄이고, 재활용하고 다시 쓰는 이른 바 ‘3R(Reduce·Reuse·Recycle)’의 손길이 제조, 유통, 소비 과정 모두에 녹아있다.

신선식품에 포장재가 없다

독일은 아무리 번화한 곳이라도 밤 8시만 되면 상점의 불이 하나 둘 꺼진다. 철학의 나라답게 밤은 한적하고 심심하다. 독일의 주재원에게 퇴근 후 무얼하는지 물었더니 “독일 사람들은 거의 매일 장을 보고 사람들과 어울려 간단히 음식을 해먹는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독일의 대형마트는 우리나라의 편의점과 기능이 비슷해 보였다. 신선식품과 각종 생필품을 판매하는 것부터 한 끼를 대체할 수도 있을 먹거리도 팔았다.

기자의 눈을 가장 먼저 사로 잡은 건 야채와 과일들이 진열된 신선제품 판매 공간이었다. 오이 한 개, 포도 한 송이를 집어들었다. 여기에서 발생하는 포장재는 포도를 싼 얇은 종이팩이 전부였다. 한국은 비닐과 플라스틱 박스가 따라왔겠지만.

분리배출을 철저하게 지키는 우리나라 국민들은 제품 구매 후 어쩔 수 없이 따라오는 겹겹의 플라스틱과 비닐류의 포장재에 무력감을 느낀다. 전 세계적으로 플라스틱 폐기물의 46%가 포장재로부터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우리나라는 이 비율이 60% 이상이다. 즉 그만큼 생산단계의 포장재 감축 노력이 더디다는 말이다.

실제 독일에서 산 제품들을 한국의 마트에서 똑같이 사봤다. 최대한 포장재가 간편한 제품을 우선적으로 골랐다. 한국과 독일의 대형마트에서 동일한 5개 품목(오이, 포도, 생수, 빵, 인스턴트 커피)을 구매한 후 발생한 폐기물은 독일이 2개, 한국이 6개였다. 우리나라에선 커피 포장재에 따라오는 빨대와 뚜껑(마개)이 더해지면서 구매한 물품개수보다 플라스틱 쓰레기수가 더 늘었다. 독일에선 구매한 빈 생수병을 반납할 수 있다. 보증금 0.25유로를 돌려받았다.

한국(오른쪽)과 독일(왼쪽)의 대형마트에서 동일한 5개 품목(오이, 포도, 생수, 빵, 인스턴트 커피)을 구매한 후 발생한 폐기물이다. 최대한 포장재가 간편한 제품을 우선으로 골랐다. 플라스틱류 폐기물은 독일이 2개, 한국이 6개였다. 우리나라에선 커피 포장재에 따라오는 빨대와 뚜껑(마개)이 더해지면서 구매한 물품개수보다 플라스틱 쓰레기수가 더 늘었다. 독일에선 구매한 빈 생수병을 반납하고 보증금 0.25유로를 돌려받았다.
독일의 마트 대부분 농산품이나 과일을 플라스틱 포장재에 담지 않고도 판매한다. 소비자들은 선택적 구매가 가능하다. 이는 주요 유통업자인 대형마트의 포장재 감축 자발적 노력의 결과다. 독일의 프랜차이즈 할인 마트인 알디(ALDI)가 2019년 4월부터 유럽 전역의 매장에서 오이에 비닐을 씌우지 않고 팔기 시작했는데, 당시엔 반대도 많았다. 이제는 대부분의 마트가 적용하고 있다. 유럽 내에서 독일과 친환경 정책을 함께 주도하는 프랑스는 세계 최초로 올해 1월 1일 소매업체에서 30여가지 과일과 채소를 플라스틱으로 포장해서 판매하는 것을 법적으로 금지하기도 했다.

그 외에도 독일 마트에서 판매하는 커피나 요거트는 플라스틱 두께를 얇게 제조하는 대신 제품이 일그러지지 않도록 두꺼운 종이로 감싸서 판매했다. 냉동식품은 물 흡수를 방지하는 특수 종이로 포장재를 제조·판매하는 기업도 있다. 냉동 식품 기업인 프로스타(Frosta)는 기름과 습기에 강한 종이봉투 사용으로 플라스틱 봉투를 대체해 판매하고 있다. 독일에서 만난 한국 냉동제품의 비닐 포장재 두께가 현지 제품들 사이에서 유독 두꺼운 것과 뚜렷하게 대비됐다. 심지어 물건을 고정하는 플라스틱 코팅 철심마저 종이로 코팅한 것도 있었다. 일회용 비닐봉투는 전면 퇴출됐다. 다회용 장바구니나 종이봉투를 구매해야 한다.

독일의 대형마트에 설치된 빈용기 보증금 반납기. 기기 뒷켠으로 상당한 저장 공간이 마련되어 있으며, 주기적으로 회수가 이뤄진다. 판트 대상 캔, 페트병, 유리병을 집어넣으면, 매장에서 화폐처럼 쓸 수 있는 환급 영수증이 나온다.
화폐같은 빈용기 보증금(Pfand)…‘폐기물=자원’

기대를 모았던 빈 용기 보증금 제도 일명 ‘판트(Pfand)’를 체험할 기회는 예상보다 훨씬 많았다. 판트는 독일어로 보증금이란 뜻이다.

페트병 뿐만 아니라 캔, 유리병 등 대부분의 빈 용기는 0.25유로(300원) 내외의 보증금을 지불해야한다. 독일에선 빈용기가 마치 화폐처럼 개념화한 모습이다. 식당에서 빈용기를 두고 나오는 것은 ‘팁’으로 여겨지고, 노숙자가 빈 병을 줍도록 공공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은 적선행위로 생각한다.

2003년 판트 제도 도입 이후 일회용 빈용기 회수율이 97%에 달하는데도, 독일 정부는 이에 만족하지 못해 다회용 용기 사용을 촉진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무거울텐데도 다회용 유리병에 담긴 생수물을 가방 한 켠에 꽂아 다니는 현지인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2019년에는 보증금 대상 음료의 총 41.8%가 재사용이 가능한 음료 포장재였고, 이를 70%까지 끌어올리는 것이 목표다.

나아가 판트제도가 독일사회에 주요 습관처럼 자리잡자 독일 정부는 용기란 용기엔 다 확장하려 하고 있다. 당장 내년부터 독일의 카페, 배달업계는 일회용 용기를 제공하는 대신 보증금을 받고 재사용 가능 용기로 제공해야 한다. 음료뿐만 아니라 음식 용기도 판트를 내고 다회용기로 주문해야 된다.

독일은 100% 재생원료로 만들어진 세제나 화장품 용기를 다양하게 찾아볼 수 있다. [사진=이데일리 김경은 기자]
이밖에 세제나 화장품 용기 등에 재생원료를 100% 사용한 제품도 흔하게 찾을 수 있다. 독일의 재생 플라스틱 생산량은 2019년 200만t으로 연간 플라스틱 생산량의 약 10%를 차지한다. 이는 같은 기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집계한 재생 플라스틱 공급의 전세계 평균 6%와 비교해 높다. 우리나라는 0.6%다.

이예나 코트라 프랑크푸르트무역관은 “경영과 투자 분야에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개념이 화제라면, 독일 소비시장에서는 ‘지속가능성’이 대표 키워드”라며 “친환경·유기농·착한기업 등으로 이전에는 개별적으로 존재하던 가치소비 트렌드가 지속가능성을 중심으로 통합된 모습”이라고 말했다. 독일에서 지속가능성은 소비재 산업에서는 피할 수 없는 핵심 키워드로, 생산·유통·판매과정에서 지속가능성이 명확히 드러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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