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응급실마저 응급 상황... 정부 해법이 자제 당부뿐인가

  • 등록 2024-08-27 오전 5:00:00

    수정 2024-08-27 오전 5:00:00

의료 개혁을 둘러싸고 정부와 의사들 사이 갈등에서 비롯된 의료 공백이 위기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특히 사람 생명과 직결된 골든타임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병원 응급실이 인력 부족 등을 이유로 속속 진료 제한에 나서면서 환자들의 피해와 불편이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 지난 2월 전공의들이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정책에 반발해 의료 현장을 이탈하면서 시작된 의료 공백이 마침내 응급 의료 체계 붕괴 사태까지 초래한 것이다.

세브란스병원 응급실은 위장관 응급 내시경 시술이 필요한 환자를 비롯한 신규 환자를 받지 않고 있다. 한양대병원 응급실은 다른 병원에서 전원 오는 환자나 관상동맥 조영술이 필요한 환자는 돌려보내고 있다. 부산대병원 응급실은 감염내과를 비롯한 여러 분야에서 기존에 진료를 해온 환자만 받고 있다. 분당서울대병원은 정형외과 응급수술이 필요한 환자는 받을 수 없다고 한다. 이렇다 보니 전국 곳곳에서 응급실 뺑뺑이가 만연하고 있다. 일례로 지난 9일 서울 지하철 사고로 다친 작업자는 받아줄 병원을 찾아 수술을 받는 데 16시간이나 걸렸다. 상반기에 전국에서 119 구급차를 타고 뺑뺑이를 돈 환자는 2600여명이고, 그 가운데 41%인 1080여명이 병원의 전문의 부재 탓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보건의료노조가 조합원 91%의 찬성으로 29일부터 총파업을 벌이기로 결의했다. 보건의료노조는 전공의와 전문의 이탈로 발생한 공백을 일부 메우는 역할을 해온 간호사를 비롯한 의료 보조·지원 인력을 조합원으로 두고 있다. 이런 노조가 쟁의조정 기간에 사용자측과 임금·단체협상을 타결하지 못하고 총파업에 돌입한다면 의료 공백은 곧바로 대란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의료 공백과 응급 의료 붕괴가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위협하는 현실을 이대로 놔둘 수는 없다. 논란의 소지가 큰 의료 개혁을 강행하다가 사달을 낸 정부가 책임지고 실효성 있는 해법을 내놔야 한다. 의료인들에게 자제와 직업의식을 요구하는 식만으로는 지금의 사태를 수습할 수 없다.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는 말보다 실천가능한 대책을 내놓지 않으면 안 된다. 이대로라면 정부의 보건의료 정책을 국민이 더 이상 신뢰하지 않게 될 것이고, 개혁도 물 건너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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