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대 한국무역협회 통상연구실장] 전 세계의 관심을 끌었던 미국 선거가 도널드 트럼프 후보의 당선과 공화당의 연방의회 장악으로 끝났다. 선거 직후 대미통상 전략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개진되고 있다. 일각에선 트럼프 당선인이 선거기간 언급한 사항에 대해 우리 정부가 빨리 대책을 세워 속전속결로 미국과 협상해야 한다고 주장도 있다. 그러나 철저한 대책 마련으로 유비무환을 도모하는 것이 마땅하나, 우리가 먼저 나서 협상을 서두르는 모습은 자칫 양보 의사를 밝히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음에도 주의해야 한다. 준비는 서두르되 실행은 적기를 노리는 것이 국익에 맞지 않을까.
가장 많이 언급되는 보편관세만 해도 논의가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 예단하기 어렵다. 선거기간 내내 보편관세의 정의가 무엇인지 의문이 제기됐지만, 모든 수입품에 10% 혹은 20% 관세를 부과한다는 것 외에는 누구도 확언할 수 없다. 현행법에 근거한 것인지, 세계무역기구(WTO)의 관세양허 의무에 반하는 실행세율 인상인지도 봐야 한다. 당선인의 공약과 실제 적용할 구체적 수단 사이에 상당한 차이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앞선 트럼프 1기와 내년 1월 20일 출범할 2기는 여러 가지 면에서 상황이 다르기에 우리의 대응 태세도 달라야 한다. 트럼프 1기 우리 내부에서는 탄핵으로 국정관리에 공백이 있었고, 양국 간에도 여러 통상현안과 마찰요인이 있었다. 예상과 달리 자국 중심주의를 내건 트럼프 후보가 당선되며, 우리의 전략 수립에 다소 혼선을 빚기도 했다. 비즈니스 관점에서 국제관계를 판단하는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가 충분히 대비하지 못한 이슈를 제기하는 전략으로 본래 노리던 것을 얻어냈다.
8년 전 한국은 때려서 얻어낼 대상이었다면, 재집권에 성공한 트럼프 당선인에게 한국은 때려서 얻어낼 것보다 협력해서 얻어낼 것이 더 많은 나라로 볼 여지도 있다. 이미 많은 한국 기업이 미국의 첨단산업 공급망 확충과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돕고 있다. 당선인이 지향하는 ‘제조업 르네상스’에 한국과 한국 기업은 이미 상당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선거 기간에 한국 관련 구체적 통상 문제로 언급된 것도 트럭이 유일하다. 지난달 자신이 집권하면 멕시코와 유럽연합(EU)산 수입차에 광범위한 관세를 부과하겠다 주장하며 한국산 트럭을 언급한 것이 전부다. 물론 취임 후 무역적자 해소, 미국산 농산물 수입 확대 등을 제기할 수도 있다. 그러나 공식적인 언급도 없는데 통상 이슈를 예단하고 구체적 대응방안까지 언급하며 조속한 협상을 촉구하는 것은 국익 수호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다.
통상당국은 달라진 한미 관계를 바탕으로 과거 협상을 꼼꼼히 복기하며 트럼프 집권 2기 통상협상에 차분하고도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0일 긴급 경제·안보 장관회의에서 최상목 경제부총리를 컨트롤타워로 금융·통상·산업 3대 분야 회의체를 즉시 가동할 것을 지시했다. 특히 가장 큰 변화가 예상되는 통상 분야에 대해 탁상이 아니라 현장에서 정부와 업계 간 긴밀한 소통을 강조했다.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가 발 빠르게 업계와 현장 소통에 나선 것은 환영할 일이다.
당선인은 빠르게 집권 준비에 나섰다. 내달 초 내각 인선을 완료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고위직 기용이 예상되는 인사들은 임명절차 완료까지 외국 정부 관계자와 면담을 피할 것이다. 의회도 크리스마스와 연말 휴회에 들어간다. ‘속전속결’을 목표로 서둘러 통상현안을 워싱턴 DC로 들고 갔다가는 되려 예상치 못한 ‘숙제’를 안고 돌아올 수도 있다. 다른 나라도 트럼프 1기를 경험했기에 더 신중히 나설 전망이다
다양한 시나리오로 철저히 준비하되, 미국과의 접촉 시점은 전략적으로 결정해야 한다. 지금은 통상당국과 기업이 정중동의 자세로 긴밀히 소통하며 차분히 대응태세를 다듬을 때다. 많은 이들이 우려하고 경고하는 ‘트럼프 2.0’ 파고를 넘으려면 긴 호흡으로, 최적의 시점에서 기민하게 대응하는 지혜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