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통화전쟁에 임하는 자세

  • 등록 2023-07-31 오전 6:15:00

    수정 2023-07-31 오전 7:45:22

[이철환 전 금융정보분석원 원장]지금 국제 금융질서는 치열한 통화패권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혼란을 겪고 있다. 무엇보다 중국 위안화가 달러의 기축통화 패권에 도전장을 내면서 치열한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 제2기축통화인 유로는 유럽연합(EU)내부 문제에서 비롯된 여러 요인으로 인해 제대로 힘을 못 쓰고 있다. 엔화도 잃어버린 30년의 함정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퇴조 현상을 나타내고 있다.

더욱이 이런 혼돈의 틈바구니에서 금과 비트코인을 위시한 암호화폐가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각국이 개발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디지털 화폐는 향후 통화질서를 송두리째 바꾸어 놓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사실 중국은 그동안에도 세계 제2의 경제대국으로 커진 경제력을 바탕으로 위안화의 국제화 및 위상 제고를 위해 지대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 결과 2016년에는 위안화가 SDR 통화바스켓에 편입됐다. 이는 위안화가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국제통화로 인정받게 됐음을 의미한다. 2022년에는 편입 비중이 더 높아졌다. 이후 실제로 위안화의 국제거래에서의 활용도 비중은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중국 위안화의 위상 제고는 2022년 초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더욱 탄력을 받고 있다. 러시아가 전쟁발발 책임의 대가로 금융제재를 받으면서 미국과 척을 지게 되자, 이 틈을 헤집고 들어가 러시아로부터 위안화 지지를 받아낸 것이다. 나아가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등 신흥 경제국들과도 연대를 강화함으로써 ‘탈달러’ 현상과 위안화의 부상을 획책하고 있다. 여기에 최근 미국과 소원한 관계에 있는 사우디아라비아도 ‘페트로 달러’(petro dollar) 대신 ‘페트로 위안’ 체제 구축을 논의하는 상황이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중국은 종국적으로는 자국 통화인 위안화를 기축통화로 부상시키려는 꿈을 가지고 있다. 허무맹랑한 생각만은 아니다. 중국의 경제력은 앞으로 계속 커질 것이고 이 과정에서 위안화의 위상도 계속 높아질 것이다. 더욱이 사실상 중국이 주도하는 BRICS 체제가 앞으로 더 견고해지고 확장될 가능성도 크다.

물론 아직은 달러패권을 넘어서기 어려울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그러나 존재감이 점점 커지면서 기존의 국제 통화질서에 잔잔한 파장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견해 또한 적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경제와 통화정책 운용이 커다란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미국과 중국은 우리나라 1~2위의 대외거래 파트너이다. 양국의 통화가치 변동은 자연히 환율과 수출 뿐 아니라 외환보유고 구성 등 외환 정책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처럼 거세게 휘몰아치는 통화전쟁의 파고를 슬기롭게 헤쳐 나가기 위해선 기본적으로 원화의 내재가치인 우리의 경제력을 키워나가야 한다. 다시 말해 경제의 펀더멘털을 튼튼히 하는 일이 정공법이라는 얘기다. 그 방편은 기술력을 강화하고 경제사회 시스템을 혁신하는 것이다. 기술력 강화를 위해서는 이공계 고급 인재를 대폭 키우는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한다. 또 기술력과 아이디어를 지닌 스타트업(startup)들을 육성해야 한다. 경쟁국에서 우리 전문인력과 고급 기술을 빼돌리는 행태에도 적극 대처해 나갈 일이다.

경제 기초체력을 강화하기 위해선 각 경제 주체들이 장기적 시야를 통해 시대의 구조적 변화에 대비하고, 능동적으로 대응해 나가야 한다. 이 과정에서 전략적 사고와 세련된 외교역량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지정학적으로 경제문제와 안보문제를 동시에 고려해야 할 특수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한한령 사태에서 보듯이 미국과의 안보동맹 관계를 견고히 구축하는 과정에서 중국으로부터의 경제보복을 예상할 수 있다. 이래저래 운신의 폭이 넓지 않은 지정학적 한계를 염두에 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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