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72시간도 부족한데”…중기업계, 근로시간 제약에 ‘분통’

내달 1일부터 주 52시간제 계도기간 종료
“심각한 경영난 속에서 납기도 못 맞출라”
“범법자 전락 우려…사업장 쪼개기도 고민”
“근로자도 임금 줄어…외국인마저 고용 못해”
  • 등록 2024-12-29 오전 9:32:55

    수정 2024-12-29 오후 7:10:05

[이데일리 김경은 기자] “연초엔 주 72시간을 근무해도 부족합니다. 일이 가장 몰리는 시기인데 주 52시간만 일을 하라고 하는게 웬 말입니까.”

인천에서 정보통신공사업체를 운영하는 이 모 씨는 내년 1월 1일부터 전면 시행되는 주 52시간 근무제로 인해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새학기 개학을 앞두고 각 학교에 통신망 등 각종 공사를 마쳐야 하는데 근무시간이 턱없이 부족해서다.

이 씨는 “학교를 상대하다 보니 일을 할 수 있는 시기가 정해져있다”며 “방학 기간인 2월 안에 모든 공사를 마쳐야 하는데 법을 어겨가며 일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고 토로했다. 이어 “주변에서는 기업 쪼개기를 권유하는데 회사를 하나 더 세우면 각종 비용이 이중으로 발생해 걱정”이라고 하소연했다.

경기도 한 주물공장에서 근로자들이 분류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이데일리DB)
내년 1월 1일부터 30인 미만 중소기업에 대한 주 52시간제 계도기간이 종료되면서 중소기업계가 혼란에 빠졌다. 가뜩이나 경제 불확실성 심화로 어려운 상황에서 현실과 동떨어진 노동 규제가 겹치면서 경영난이 심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29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주 52시간제 계도기간이 오는 31일 종료된다. 지난 2018년 도입한 주 52시간제는 기업 규모에 따라 단계적으로 시행 중이다. 30인 미만 사업장에는 2021년 7월부터 제도를 적용하되 주 8시간을 추가해 주 60시간까지 일할 수 있는 추가연장근로제를 허용했다. 2022년부터는 이를 종료했으나 계도기간을 둬 예외를 유지했다.

지난 2년 연속 연장돼 온 계도기간이 종료되면서 현장은 어수선한 분위기다. 주 52시간제 시행은 이미 예고됐다고 하지만 현장에서는 예상치 못했다는 반응이다. 납기를 맞추기 어려워 기업 경영에 차질이 생기거나 법정 근로 시간을 어겨 범법자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인력난도 심화할 전망이다. 영세 중소기업은 급여가 최저임금 수준인 탓에 야근, 특근 등 연장수당으로 임금을 보전하는데 주 52시간제를 적용하면 이마저도 어려워서다. 중소기업 일자리 공백을 메우고 있는 외국인 근로자도 구하기 힘들어질 것이라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경기 안산의 기계 장비 제조 중소기업 A사 대표는 “지금도 억지로 잔업과 특근을 만들어 외국인 근로자들의 이탈을 막고 있다”며 “주 52시간 이상의 연장 근무가 불가능해지면 도저히 일할 사람이 없어 공장 문을 닫아야 할 것”이라고 호소했다.

실제 중소기업중앙회가 부산·울산 중소 제조업 근로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절반(50.7%)이 근로시간을 주 52시간보다 늘려야 한다고 답했다. 41.3%는 주 52시간제 확대 시행 이후 생활비 충당을 위해 투잡에 나서거나 동거가족이 경제활동(취업 및 아르바이트)에 나섰던 것으로 나타났다.

추문갑 중기중앙회 경제정책본부장은 “영세 중소기업은 근로자들도 주 52시간제 일괄 적용을 원치 않는다”며 “연장 수당 감소로 생계유지에 어려움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경직된 연장근로 단위 기간을 확대하는 등 노동규제를 개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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