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에 꼬리를 무는 폐페트병 문제[플라스틱 넷제로]

'보틀 투 보틀' 한국선 왜 아직…"기준 너무 까다로워"
국내 폐페트 공급, 수요에 한참 못미쳐
중국산 페트 플레이크 '그린워싱' 문제도
  • 등록 2022-10-03 오전 9:00:00

    수정 2022-10-03 오전 9:00:00

[이데일리 김경은 기자]코카콜라는 전 세계 30개국에서 100% 재활용 플라스틱병을 사용하고 있다. 여기에 한국은 제외다. 재활용을 통해 다시 병으로 재탄생한 ‘보틀 투 보틀(bottle to bottle)’이 한국에선 아직 희귀한 이유는 무엇일까.

식품 포장재에 재생원료 사용에 대해 문을 단단히 걸어 잠궜던 식약처는 지난 2월 비로소 빗장을 풀었다. 순환경제를 강화하는 정부 기조에 발맞춘 행보다. 그러나 열린 문조차 비집고 들어갈 틈은 너무 좁다.

국내 석유화학업계와 재활용업계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미국 식품의약국(FDA)을 통과하는 게 차라리 쉬울 만큼 조건이 까다롭다. 국내에서는 단 한 곳이 지난 7월 적합성 확인을 받아 운영 중이지만 개점휴업 상태나 마찬가지다. 다른 재활용 업체는 설비를 갖추고도 정부에 적합성 확인 신청을 하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의 식품용 재생용기 사용 규정을 보면 △‘보틀 투 보틀’용 시설을 별도로 구축해야하고 △수거·운반 시에도 다른 재질의 플라스틱과 혼합되지 않아야하며 △별도 보관·압축·선별한 투명페트병만을 사용해야 한다. 여기에 최종적으로 재활용 공정을 거쳐 생산된 재생원료는 △라벨 등 이물질 △폴리올레핀(PO) 및 접착제 함량 △폴리염화바이닐(PVC) 함량 등 품질기준에 적합해야 한다.

물론 식품 포장재에 재활용 소재를 사용하는 것이 몸에 해로울 것이란 우려를 쉽게 봐선 안된다. 하지만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 막는 격이다. 품질기준만 통과하면 가능한 해외 기준에 비해 공정까지 세세하게 정부가 지정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라는 게 업계의 전언이다.

관련 재활용 업계의 현실이 반영되지 못해 시장은 혼란하다. 우리나라에서 발생하는 폐페트병은 이렇게 별도의 생산라인을 구축할 만큼 발생량이 충분하지 않다. 연간 우리나라의 페트병 재활용량은 2021년 기준 약 26만t으로 별도의 분리배출을 거쳐 ‘고급’으로 분류되는 것은 이 중 약 11%인 3만t가량이다. 하지만 현재 식품용으로 사용할 만큼의 국내 고품질 폐페트는 1만t 남짓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공장 한 두어 곳만 가동하면 소화되는 물량이다. 결국 전국의 모든 폐페트병이 경기도의 한 공장으로만 모여야 한다는 말이다.

석유업계 관계자는 “해외에서는 품질 기준만 통과하도록 하는데 반해 시설기준까지 적용하는 것은 지나치게 까다로워 공장 가동을 현재로선 포기한 상태”라고 말했다.

‘보틀 투 보틀’용 폐페트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분리배출된 페트병은 몸값이 천정부지로 뛰고 있다. 압축 페트 판매가격은 지난 6월 현재 1kg당 400.6원으로 2년 전과 비교해 86.2% 급등했다.

그동안 고품질의 폐페트를 주로 활용해 친환경 옷을 만들었던 재생섬유업계에서 이제 국내 폐페트는 바라보기 힘들만큼 높은 존재가 됐다. 결국 가격이 비싼 한국, 일본산에 비해 월등히 가격이 저렴한 중국산 재생 플라스틱이 재생섬유 시장을 점령하고 있다. 재생원료 의류용 원사를 생산하는 섬유기업 한 관계자는 “국내 폐페트병은 보틀 투 보틀용으로도 품귀를 맞을 상황이라 섬유업계엔 소위 ‘넘사벽’이 됐다”고 전했다.

그러나 여기에도 문제는 있다. 중국산 재생 플라스틱의 순도다. 너무나 깨끗하다. 실제 사용 후 수거·회수된 플라스틱이 아닐 수 있다는 우려가 섬유업계 내부에선 공공연히 나돈다. 이른바 ‘그린워싱(Green Washing·위장 환경주의)’에 대한 우려다. 그러나 그린워싱은 규제가 적용되지 않는 영역이다. 정부나 업계 모두 어쩔 수 없다는 이유로 한쪽 눈을 질끈 감을 뿐이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재생페트 시장은 향후 성장세가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시장조사기관 테크나비오(Technavio)는 전 세계적으로 재생페트 시장이 연평균 5% 이상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재생원료 의무화가 국제적으로 추세로 자리잡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내년부터는 플라스틱 제조품에 대해 재생원료를 사용하도록 했다. 특히 플라스틱 페트를 생산하는 업체의 경우 2030년까지 30% 이상 재생원료를 사용해야 한다.

이에 재활용 업계는 가격안정 등을 위해 폐페트 수입 제한 조치를 한시적으로 유예해달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재생화이버협회는 ‘재생화이버 산업계의 위기 극복을 위한 의견서’를 환경부에 전달, 국내 페트병 압축 물량이 증가하지 않은 상태에서 수입금지 조치로 폐페트 수급불안정과 가격 급등을 초래했다는 것이 골자다. 출고가에 원가상승분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으며, 국제 원자재 가격과 물류비 폭등 등으로 경영난이 가중되고 있다는 호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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