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 포장재에 재생원료 사용에 대해 문을 단단히 걸어 잠궜던 식약처는 지난 2월 비로소 빗장을 풀었다. 순환경제를 강화하는 정부 기조에 발맞춘 행보다. 그러나 열린 문조차 비집고 들어갈 틈은 너무 좁다.
우리나라의 식품용 재생용기 사용 규정을 보면 △‘보틀 투 보틀’용 시설을 별도로 구축해야하고 △수거·운반 시에도 다른 재질의 플라스틱과 혼합되지 않아야하며 △별도 보관·압축·선별한 투명페트병만을 사용해야 한다. 여기에 최종적으로 재활용 공정을 거쳐 생산된 재생원료는 △라벨 등 이물질 △폴리올레핀(PO) 및 접착제 함량 △폴리염화바이닐(PVC) 함량 등 품질기준에 적합해야 한다.
물론 식품 포장재에 재활용 소재를 사용하는 것이 몸에 해로울 것이란 우려를 쉽게 봐선 안된다. 하지만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 막는 격이다. 품질기준만 통과하면 가능한 해외 기준에 비해 공정까지 세세하게 정부가 지정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라는 게 업계의 전언이다.
석유업계 관계자는 “해외에서는 품질 기준만 통과하도록 하는데 반해 시설기준까지 적용하는 것은 지나치게 까다로워 공장 가동을 현재로선 포기한 상태”라고 말했다.
그동안 고품질의 폐페트를 주로 활용해 친환경 옷을 만들었던 재생섬유업계에서 이제 국내 폐페트는 바라보기 힘들만큼 높은 존재가 됐다. 결국 가격이 비싼 한국, 일본산에 비해 월등히 가격이 저렴한 중국산 재생 플라스틱이 재생섬유 시장을 점령하고 있다. 재생원료 의류용 원사를 생산하는 섬유기업 한 관계자는 “국내 폐페트병은 보틀 투 보틀용으로도 품귀를 맞을 상황이라 섬유업계엔 소위 ‘넘사벽’이 됐다”고 전했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재생페트 시장은 향후 성장세가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시장조사기관 테크나비오(Technavio)는 전 세계적으로 재생페트 시장이 연평균 5% 이상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재생원료 의무화가 국제적으로 추세로 자리잡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내년부터는 플라스틱 제조품에 대해 재생원료를 사용하도록 했다. 특히 플라스틱 페트를 생산하는 업체의 경우 2030년까지 30% 이상 재생원료를 사용해야 한다.
이에 재활용 업계는 가격안정 등을 위해 폐페트 수입 제한 조치를 한시적으로 유예해달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재생화이버협회는 ‘재생화이버 산업계의 위기 극복을 위한 의견서’를 환경부에 전달, 국내 페트병 압축 물량이 증가하지 않은 상태에서 수입금지 조치로 폐페트 수급불안정과 가격 급등을 초래했다는 것이 골자다. 출고가에 원가상승분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으며, 국제 원자재 가격과 물류비 폭등 등으로 경영난이 가중되고 있다는 호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