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가부는 시대적 소명을 다했나…해외에선 '어떻게'

여성정책전담부서 확대 추세…191개국 운영
성평등 수준 가장 높은 스웨덴…양성평등, 정치적 아젠다의 주류로
젠더갈등 넘어 여가부 건설적 개편방안 논의 필요
성주류화 본연 기능 부족한 여가부…강화하거나 없애거나
  • 등록 2022-03-17 오전 5:30:00

    수정 2022-03-17 오전 5:30:00

[이데일리 김경은 기자] 윤석렬 제20대 대통령 당선인이 여가부 폐지 공약을 내놓으며 ‘(여가부는) 시대적 소명을 다했다’고 언급하면서, 성평등 정책을 수행하는 여성정책전담기관으로서 여성가족부의 역할론이 우리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여가부의 필요성은 코로나19로 인한 여성의 경제단절, 구조적 저성장·저출산·고령화 등으로 커지고 있으나, 현재 여가부가 제대로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첨예하다.

여성의 경제참여 확대가 노동력 저하의 대안으로 떠오른지는 오래다. 하지만 이를 가로막는 고정적 성역할, 미흡한 돌봄서비스의 사회화 등은 현재 한국의 낮은 성평등 수준을 드러내고 있다.

이번 대선 과정에서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쟁점인 젠더(Gender)가 젠더 갈등을 넘어 실질적인 성평등 정책 수립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뉴스1
◇해외에서는 여성정책전담기구 운영 어떻게…


여성정책전담기구는 전 세계적으로 대부분의 국가에서 운영 중이다. 2020년 기준 191개국에서 운영하고 있으며, 유형은 크게 4가지 형태로 분류할 수 있다. △헌법적 지위를 보장받는 위원회 방식 △대통령 등 최고통수권자 직속기구 △장관급 단일행정부처 △부처 내 국·청으로 전담기구 분산 등이다. 이 중 절반 이상인 137개국이 현재 한국 여가부와 유사한 독립부처 형태이며, 각 부처 하부에 존재하는 경우가 23개국으로 그 다음으로 많다.

개별 국가별로 보면 미국은 부처는 아니지만 의결권, 발언권을 지닌 하위부처로서 다른 부처 내의 국이나 청의 형태로 존재하고, 독일(가족·노인·여성·청소년부), 스웨덴(사회통합·양성평등) 등은 여성문제와 더불어 가족, 청소년, 아동 등을 아우르는 통합부처방식으로 존재하고, 영국(여성·성평등부), 프랑스(성평등·다양성·기회균등부) 등은 여성정책만 전담하는 부처를 두고 있다.

이같은 여성전담기구의 전 세계적 설치는 지난 1995년 유엔이 ‘베이징여성행동강령’에 따른 권고 조치 이후 강화했다. 베이징여성행동강령은 각국의 여성정책전담기구에 양성평등(gender equality)을 이루는 성주류화 전략을 위임하고, 기구의 설치·강화와 정부와 여성단체의 파트너십 구축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각 국가의 여성정책전담기구의 위상은 여성의 이익이나 필요에 대한 국가적·정치적 지지의 정도에 따라 상징적 기능만 수행하거나 관료사회에서도 주변에 머무르는 경우도 많은 것으로 분석된다.

워낙 광범위하고 복합적 문제를 다루고 있는 만큼 정치·사회적 성평등 수준에 따라 조직의 존립이 좌우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여성전담기구는 노동, 국방, 재난, 재정 등 특정 기능 수행을 위해 존재하는 다른 정부부처들과 달리 성평등이라는 가치지향적 목표를 추구한다. 젠더에 대한 태도, 이념을 비롯해 우리사회의 기본조직으로서 삶의 방식 전반을 아우르는 문제를 다룬다. 여성정책은 여성을 위한 정책이라는 인식이 확산될수록 사회적 반발(백래시)도 강하게 작용한다.

성평등 수준이 가장 높다는 스웨덴의 경우를 보면 1968년 사민당이 의회 과반수를 획득하며 정치사상 최초로 2인의 여성장관을 임명하면서 여성이 정치의 전면에 나서기 시작한 것이 양성평등의 주계기가 됐다. 1990년대 초 정치적 아젠다로 양성평등이 자리잡으면서 의회와 권력기관내 여성 비율이 50%까지 확대, 양성평등정치는 스웨덴 주류정치로 자리잡게 됐다. 여성부장관은 정부 내 주요 부서로 부각됐고, 실질적 양성평등이 뿌리를 내리며 독립된 여성부의 필요성은 상실됐으나, 여전히 통합평등부에서 양성평등업무는 주요업무 중 하나로 다뤄지고 있다.

여가부, 어차피 이대로는 어렵다…건설적 개편 방안은

성평등 정책은 우리사회가 저출산·고령화 사회로 진입함에 따라 사회·경제적으로도 필요성이 적지 않다. 남녀간 임금격차, 돌봄 서비스 사회화, 선진적 성역할의 정립, 의사결정기구의 여성참여 확대 등에서도 아직 우리사회가 나아갈 길은 멀다.

1995년 베이징여성회의 이후 여성정책 패러다임은 여성만을 대상으로 하는 여성정책이 아니라 남성과 여성 모두를 정책대상에 포함시키고 남녀가 함께 참여하고 함께 책임을 담당하자는 ‘성주류화’ 전략을 추진했다. 하지만 출범 20년을 맞은 대한민국 여성부는 이같은 본연의 기능과는 거리가 먼 모습이다.

미니부처였던 여가부는 인력과 예산 등 조직은 꾸준히 성장했으나, 가족, 청소년, 다문화 등 정책 기능 확대를 통한 양적팽창에만 집중해온 측면이 있다. 1조4000억원 규모의 여가부 예산 90% 이상이 가족·청소년에 집중돼 있으며, 각 지자체와 부처의 성평등 인지에 대한 조정 및 감시 기능, 젠더 정책의 국정과제화 등에서는 소극적 위치에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최근 전문가 델파이 조사에서 여성가족부의 한계로 제한적 권한과 위상, 성차별 시정기능의 부재, 성주류화라는 본연의 기능 부족 등이 지적됐다.

윤 당선인은 이같은 여성가족부를 없애 저출산 고령화, 인구 문제 등을 다룰 가족부를 신설하는 한편 여성정책에 대해서는 각 부처 내에 분산하는 미국식을 검토하고 있다.

다만 이 경우 큰 틀에서 성평등 정책을 조정하고 감시하는 기능이 약화할 수 있다는 단점이 지적된다. 이를 위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백악관 젠더정책위원회’를 설치하면서 성평등한 국가로의 발전을 목표로 여성과 성소수자 등에게 영향을 주는 정책을 조정하는 기능을 강화한 바 있다.

한 여성학자는 “교육, 복지, 고용, 주거 등 사회정책 전반에 양성평등 목표를 위해 부처내 여성정책 하위 부처를 두면서, 정책 조정 및 중장기 계획수립 등은 정책개발전문가 중심의 의사결정기구로 대통령 직속 위원회를 두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별도 행정부처는 의결권, 발언권, 정책 조정 및 집행의 효율성 등의 측면에서 다른 유형에 비해 장점을 지니고 있는 만큼, 여가부를 없애기보다 기능을 보완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여가부 장관을 부총리급으로 격상해 여가부의 낮은 위상을 정상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국민의힘 일각에서도 제기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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