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신용등급 강등될라"…환 리스크 무방비 노출된 기업들

[산업계 고환율 쇼크]④
달러로 사는 주요 원재료 비용 부담 급증
"그래도 제품값은 못 올려"…손실 커질듯
배터리업계 美 현지 공장 가동 부담 커져
"이러다 27년만 신용등급 강등될라" 불안
  • 등록 2024-12-30 오전 5:30:00

    수정 2024-12-30 오전 5:50:51

[이데일리 김정남 김성진 기자]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탄핵되는 헌정사상 초유의 정국 대혼란에 원·달러 환율이 치솟으면서, 기업들의 내년 사업전략 수립에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환율 폭등(원화 급락)으로 원재료 조달 비용이 치솟고 미국 현지 공장 가동 부담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이 강당 당하는 걷잡을 수 없는 위기가 올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원재료 부담 커도 제품값 못 올려”

환 리스크 헷지를 잘 해놓는 대기업들마저 요즘은 환율 폭등의 파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삼성전자는 그동안 달러화, 유로화 등 주요 통화별 자산과 부채 규모를 비슷하게 유지하면서 환율 변동 여파를 최소화해 왔다. 그러나 환율이 급변할 경우 리스크가 커지는 점은 막기 어렵다. 특히 국내외에서 조달하는 원재료 규모가 연 100조원을 넘다 보니, 환율이 뛰면 원재료 부담은 고스란히 커지는 구조다.

(그래픽=김정훈 기자)


업계에 따르면 올해 1~9월 삼성전자의 반도체(DS)부문, 완제품(DX)부문, 자회사 삼성디스플레이와 하만 등을 더하면 원재료 매입 규모는 79조8937억원이다. 특히 스마트폰, TV, 가전 등의 사업을 하는 DX부문만 52조5743억원에 달했다. 이를테면 삼성전자는 스마트폰 두뇌 역할을 하는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를 퀄컴, 미디어텍 등으로부터 달러화로 사들이는데, 그 규모만 8조7051억원을 기록했다. TV사업을 하는 VD사업부와 생활가전사업을 하는 DA사업부 역시 디스플레이 패널 등을 해외에서 조달한다. DS부문(올해 1~9월 12조3310억원)은 DX부문보다는 원재료 조달 규모가 작지만, 반도체 제조의 기본 소재인 웨이퍼의 일부 등을 해외 기업들에서 사들인다. 1200~1300원대에서 움직이던 원·달러 환율이 이번달 갑자기 1400원 후반대로 치솟으면 고스란히 조(兆) 단위 추가 손실이 날 수 있는 셈이다.

다른 기업들 역시 상황은 비슷하다. SK하이닉스는 반도체 웨이퍼를 미국, 독일 등으로부터 사들인다. LG전자 역시 TV, 전장 등에 필요한 칩을 퀄컴, 미디어텍, NXP 등으로부터 조달한다. 포스코, 현대제철 등 철강업계는 ‘내추럴 헤지’(철강 제품을 수출해 벌어들이는 외화로 유연탄과 철광석 등 주요 원재료를 사들이는 방식)를 통해 대응하고 있지만, 생산 원재료를 전량 수입하다 보니 비용 부담을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재계 한 고위인사는 “원재료 조달 비용이 올라도 업계 경쟁이 워낙 치열하다 보니 제품값을 올리지 못하는 게 문제”라고 했다.

“27년만 신용등급 강등될라” 불안감

또다른 환 리스크는 미국 현지 공장 가동 부담이 커진다는 점이다. 달러화로 현지에 투자하는 금액을 원화로 환산하면 투자비 부담이 커지기 때문이다. 이는 가뜩이나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부진)에 시달리고 있는 배터리업계에 직격탄이나 마찬가지다. LG에너지솔루션은 최근 전사 차원의 위기경영 메시지를 통해 “투자비 증가로 인한 부담이 높아 당분간 의미 있는 수익 창출에 어려움이 예상된다”고 했다. 미국 투자 속도조절을 고민하는 현실은 SK온, 삼성SDI 역시 다르지 않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의 미국 공장 건설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문제는 원·달러 환율이 더 폭등할 수 있다는 점이다. 지난 27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차액결제선물환(NDF) 시장에서 거래된 원·달러 1개월물은 1473.50원에 최종 호가됐다. 최근 1개월물 스와프 포인트(-1.00원)를 고려하면 전 거래일 서울외환시장 종가(1467.50원) 대비 7.00원 오른 셈이다. 30일 서울외환시장에서 원화가 추가 약세를 띨 수 있다는 의미다.

재계와 시장 일각에서는 한국 국가신용등급이 1997년 외환위기 이후 27년 만에 강등될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현재 S&P(AA), 피치(AA-), 무디스(Aa2) 등 3대 신용평가기관은 한국을 20위 안팎에 올려놓고 있다. 금융시장 한 관계자는 “피치가 지난해 8월 미국 신용등급을 AAA에서 AA+로 떨어뜨렸을 정도로 예외는 없다”며 “‘설마’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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