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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운동은 환경 거버넌스의 커다란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환경 거버넌스란 정부, 단체, 기관, 기업체, 주민 등이 자율적이고 상호 의존적인 관계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공동의 책임을 가지고 환경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말한다.
선진국은 1960년대부터 고도의 산업화와 경제성장으로 심각한 환경문제가 야기되기 시작하면서 환경운동도 본격화됐다. 1962년 출간된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은 폭발적 사회적 환경운동을 촉발시킨 자극제가 됐다. 그리고 1968년 개럿 하딘의 ‘공유지의 비극’까지 뒤이어 발간되면서 지구적 환경문제에 대한 세계적 관심이 고조됐다.
그러나 이 기간 한국은 심각한 권위주의가 등장한다. 군사정권이 등장하면서 모든 사회운동은 군부독재 타도와 민주화운동에 집중됐다. 환경운동 역시 정치경제적 불평등의 관점에서 민주화운동 인사들에 시작됨으로써 환경운동은 정부의 억압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제조업 중심의 경제구조, 전쟁 경험 등 비슷한 경제구조와 역사적 단절을 겪었지만 다른 길을 걸은 대표적 국가도 있다. 녹색당이 주류정당으로 자리잡은 유일한 국가이자 시민들의 환경에 대한 관심이 가장 높은 국가, 바로 독일이다. 독일의 국토는 남한 면적의 3.6배이며, 인구는 8300만명, 게르만족으로 독일어를 사용하며 오랜 분권 국가 경험으로 시장도 지역 특색에 따라 발달해 있다. 제조업 기반의 산업구조이며 주된 산업분야는 자동차, 기계, 화학, 첨단 기술 분야다. 미국, 중국, 일본에 이은 세계 4위 경제대국이다.
특히 독일 시민들의 환경 의식이 높아진 배경엔 1986년 체르노빌 사태 등으로 방사능 위험에 대한 공포가 자리잡고 있다. 1986년 체르노빌 원자로 사고는 독일에 매우 충격적 사건으로 다가왔다. 라인강이 30톤의 독성 오염물질이 유입되면서 반경 100㎞에 걸쳐 모든 물고기와 작은 동물들이 떼죽음을 당하면서 그 해 독일 연방 환경자연보호원자력안전부(BMU) 설립됐다. 집단 기억과 시민사회의 발달로 독일과 한국은 전후의 분단과 폐허에서 출발하였다는 유사성은 있지만, 환경정치는 큰 수준 차이를 보였다.
국내에서는 집단기억으로 각인될 만한 사건으로 낙동강 페놀 유출 사건, 천성산 사건 등을 꼽을 수 있지만 지역적 이슈로 전 국민이 유사한 감정적 경험을 했다고 할만한 사건이 부재하다. 국내 환경운동은 노동, 학생, 민주화, 여성, 농민운동 등의 여타 사회운동에 비해 가장 최근에 등장했으며, 전국민적 생활과 밀접한 운동은 1980년대 후반이후, 전지구적 환경운동과 전국적 환경운동으로의 확산은 1990년대초부터 나타났다(한국사회와 사회운동으로서의 환경운동, 정현석). 그러나 이런 가운데서도 우리나라의 환경운동은 여전한 성장제일주의 가치관과 무임승차의식 등으로 대중화 수준은 낮다는 평가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