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경은 기자]“잘못 관리된 플라스틱 2200만t이 2019년 한 해 동안 환경으로 유출됐다. ”
올 상반기 발표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글로벌 플라스틱 전망(Global Plastics Outlook)’은 플라스틱의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이렇게 각종 지표로 정량화하고, 정책입안자들에게 당면 과제와 플라스틱 순환성을 개선할 솔루션을 탐색하는 권위있는 보고서다. 앞으로 플라스틱 규제동향의 좌표가 어느 지점에서 찍힐 지 엿볼 수 있다.
아쉽게도 국내선 주로 세계 플라스틱 발생량이나 재활용률을 인용하는 자료로만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201쪽 분량에서 겨우 2~3쪽 정도에 그친다. 보고서는 상당 부분이 플라스틱 ‘누출(leakage)’의 위험과 이를 통제하기 위한 ‘전주기(full life cycle) 관리’의 필요성을 역설하는데 할애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플라스틱이 국제 규제 대상 품목으로 떠오른 이유도 해양 오염이 발단이다. 플라스틱 규제에 관한 다양한 국제 거버넌스 논의를 보면 1994년 해양법에 관한 유엔협약, 런던의정서(1996년), MARPOL협약(해양오염방지협약, 1996년) 등 주로 해양오염 방지나 생물다양성 보호를 목적으로 한 국제협약에서 플라스틱에 대한 규제를 직간접적으로 포함하고 있다.
이는 생태계와 인간에 대한 미세플라스틱 노출 위험을 경고한 ‘글로벌 플라스틱 전망’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잘못 관리된 플라스틱 쓰레기가 플라스틱 누출의 주요 원인이며, 88%가 주로 부적절한 수집 및 처리로 인해 발생한다. 또 나머지 12%를 차지하는 미세플라스틱은 타이어 마모, 브레이크 마모 또는 섬유 세탁 등 다양한 원인에서 비롯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어 “담수 및 지상 환경뿐만 아니라 여러 음식 및 음료에서 이러한 작은 입자가 존재하며, 이는 생태계와 인간의 건강 위험에 실질적으로 기여한다”고 경고했다.
미세플라스틱은 직경이 5mm보다 작은 플라스틱이다. 전 세계적으로 강에 1억900t, 해양에 3000만t 축적돼 있고, 한 해에만 610만t이 강, 호수, 바다로 유출된 것으로 추산된다.
안전성평가연구소에 따르면 가리비 1g당 1.0개, 젓갈 6.6개, 티백류 4.6개, 홍합 0.84개 등 우리가 주로 섭취하는 음식 대부분에서 미세플라스틱이 검출됐다. 이같은 식품 검출량을 한국인의 음식 섭취량을 토대로 계산해 보면 1인당 하루 16.3개씩 섭취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생수와 수돗물, 종이컵에 뜨거운 음료를 담아 마실 경우에도 미세플라스틱을 마시게 되고, 공기중 호흡을 통해서도 흡수할 수 있다.
건강한 성인 22명 중 17명의 혈액 표본에서 미세플라스틱이 검출됐으며, 수술 중 폐 조직에서 채취한 13개 조직 중 11개서 39개의 미세플라스틱이 확인됐다는 보고도 있다.
미세플라스틱은 장내 조직 찰과상을 입히거나 유전자 손상을 일으키기도 하고, 첨가제 등 독성 유해물질을 흡수하는 경로가 되기도한다.
설치류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미세플라스틱은 위암과 인지장애, 유전자 변이로 인한 주의력결핍과다행동장애(ADHD) 등을 유발한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되기도 됐다.
인간뿐만 아니라 해양 생태계의 직접적 위협도 심각하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해안쓰레기(2008~2018년)의 42%는 플라스틱 쓰레기 포장재이고, 21.5%는 어구, 13.8%는 플라스틱 기타, 10.6%는 플라스틱 노끈, 7.8%는 플라스틱 부표 등으로 약 70%가 플라스틱 제품이 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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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우리가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양의 미세플라스틱을 섭취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불확실성’이다.
OECD 보고서는 “하천에 플라스틱이 쌓이는 것은 잘못 관리된 플라스틱 폐기물이 크게 줄어든다고 해도 앞으로 수십 년간 바다로 유출되는 일이 계속될 것임을 암시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OECD는 “누출된 플라스틱의 발생원과 유형이 다양하고 의도치 않은 이유로 환경으로 배출되는 플라스틱 누출 양에는 상당한 불확실성이 존재한다. 충분한 데이터를 이용할 수 있는 배출원만 정량화한 보수적인 추정치”라고 언급한다.
또 “미세플라스틱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에 대한 이해는 여전히 제한적이며, 미세플라스틱의 운명에 대한 현재의 이해 또한 제한적이다. 오염 수준과 위험에 대한 철저한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쉽게 말해 플라스틱의 생애(Life)는 현재로선 사실상 통제가 불가능한 영역이라는 말이다. 보고서는 “전 세계 폐기물 관리, 특히 플라스틱과 같은 개별 폐기물의 관리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다. OECD내 국가에서도 국가마다 이용 가능한 데이터, 측정 방법론 등이 크게 다르다”고 언급했다. 플라스틱 전문가들이 플라스틱 통계의 신뢰도에는 항상 고개를 내젓는 이유다.
이는 2024년 플라스틱 국제협약에서 ‘보고(Reporting) 의무’가 논의되고 있는 강력한 이유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내용을 종합하면 지난해 9월 르완다·페루 결의안 초안과 같은 해 12월 일본 결의안 초안을 토대로 ‘목차’ 정도만 나온 상태다. △플라스틱 전 주기에 걸친 통합적 접근과 국가별 보고(Reporting) 의무 △다자기금 등 재원 조달 메커니즘 △개도국에 대한 역량 배양과 기술, 재정지원 등에 관한 사항 등이 포함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페루·르완다 결의안 초안은 플라스틱 전 수명주기에 걸친 관리를 협약에 담는 것과 달리 일본 결의안은 해양 플라스틱 폐기물 관리로 범위를 좁혀 규제 수준이 다소 약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페루·르완다 결의안 공동 제안국으로 참여를 추진하고 있는 반면, 외신 보도에 따르면 미국, 중국 등은 해양 플라스틱 폐기물에 국한된 국제협약을 지지하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립환경과학원은 국제적 환경현안으로 떠오른 미세플라스틱 오염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미세플라스틱 집중연구 중기 이행계획(2022~2026)을 수립해 올해부터 실행과제 연구를 본격 추진할 계획이다. △발생원 관리 △분석법 표준화 △환경 중 실태조사 △유해특성 조사 등 4개 분야에 걸친 전과정 통합 기반 연구의 19개 세부과제를 추진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