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슴’이라 불리던 입양아...결국 아버지 살해 [그해 오늘]

11살에 입양...학교도 못 가고 머슴처럼 부려져
소 키우고 밭일...뱃일
뱃일하다 오른쪽 팔 절단되며 불만·원망 폭발
법원 "착취당한 정황 있지만 계획적 살인"
  • 등록 2025-01-15 오전 12:00:00

    수정 2025-01-15 오전 12:00:00

[이데일리 홍수현 기자] 2024년 1월 15일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다”라는 말을 듣고 격분해 양아버지를 살해한 50대에게 항소심 법원이 중형을 선고했다.

기사와 무관한 일반 이미지 (사진=게티 이미지)
광주고법 형사1부(재판장 박혜선)는 살인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18년을 받은 A(59)씨의 항소를 기각하며 원심을 유지한다고 밝혔다.

A씨는 친부모에게 버림받고 고아원에서 자랐다. 11살에 양아버지 B씨를 만나며 새로운 보금자리를 얻는가 싶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당시 B씨는 A씨 말고도 어린아이를 여럿 입양했다. 모두 고아였다. 이들은 부모님의 보살핌은커녕 어린 시절부터 부족한 일손을 보태는데 동원됐다. 소를 키우고 밭을 매거나 뱃일을 나갔다.

학교조차 다니지 못했다. 이런 아이들을 두고 마을에서는 이들을 ‘머슴’이라 불렀다고 한다. 주민등록조차 성인이 될 무렵에야 할 수 있었다.

A씨 마음속에서는 모순된 ‘양가감정’(兩價感情)이 싹텄다.

자신을 자식으로 거둬준 양아버지에 대해 고마움을 느끼면서도 그의 친자녀들만 등교하는 모습을 볼 때면 원망스러웠다. A씨는 자신도 그들처럼 인정받고 싶은 마음에 더욱더 열심히 일했다.

A씨는 17살이 되며 B씨가 선장으로 있던 배에 선원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26살에는 어여쁜 신부를 맞아 독립했지만 양아버지를 도와 일하는 삶은 계속됐다.

부단히 노력한 삶의 보상인지 A씨는 독립 후 7억원 상당의 선박을 보유하는 등 경제사정도 한결 나아졌다.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2021년 배에서 일하던 A씨는 어망 기계에 팔이 빨려 들어가 오른팔이 절단되는 큰 사고를 당하고 말았다.

한쪽 팔을 잃은 A씨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까지 겪으며 어린 시절부터 켜켜이 쌓아온 양아버지에 대한 불만이 커졌다.

결국 2023년 2월, 술에 취한 A씨는 흉기를 품고 양아버지 B씨를 찾아갔다.

그는 “아버지가 나한테 뭘 해줬냐”며 “20년 전에 배도 주고, 집과 땅도 주기로 해놓고 왜 안 주느냐”고 소리 내어 따졌다.

A씨의 술주정에 B씨가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라더니…”라고 말하자, A씨는 흉기를 휘둘러 40여년 인연의 양아버지를 살해했다. 흉기에 찔린 B씨는 다음날 끝내 숨졌다.

살인죄 수사 과정에서 그는 “평소에도 고아라고 말해 화가 났는데, 아버지한테 ‘짐승’이라는 말을 듣자 참을 수 없었다”고 진술했다.

A씨는 재판과정에서 팔 절단 사고 이후 정신과 약물 치료 중이었다며 심신미약을 주장했다. 그러나 1·2심 재판부 모두 이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범행 당시 A씨가 술에 취해 있긴 했으나 B씨와 약 30분간 정상적인 대화를 하다가 범행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1심 재판부는 “A씨가 범행 직후 피해자를 구조하지 않고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이 보이는데,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모습이 아니다”며 계획적인 살인이라고 봤다.

징역 15년을 선고한 1심에 항소한 A씨에게 재판부는 “양아버지의 학대나 착취 의심 정황이 있는 등 참작할 점이 있지만, 계획적 살인죄에 중형을 선고한 원심을 변경할 이유가 없다”고 판시했다. 이 판결은 대법에서 그대로 확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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