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 제품의 재활용을 늘리기 위해 도입된 제도인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가 제도적 효과를 거두지 못하면서 기업들이 플라스티 오염을 초래한다는 비판에도, 기업들과 EPR 제도 운영기관들은 철저한 비밀주의와 외부감시의 사각지대에서 비판받지 않는 깜깜이 운영을 지속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보공개를 거부할 수 있는 사유는 ‘법인·단체 또는 개인의 경영상·영업상 비밀에 관한 사항으로서 공개될 경우 법인등의 정당한 이익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정보’에 한해서다. 이덕순 한국환경공단 포장재EPR운영부 과장은 “개인정보로 제공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정보가 국민들의 알권리에 우선하는 영업비밀로서의 가치를 지녔는지 여부를 판단할 권한은 환경공단에 있지 않아 보인다. CJ제일제당, 롯데칠성 등 일부 기업은 플라스틱 출고량을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 공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해당 사유로 정보제공을 거부할 권한은 공단 및 공단이 의뢰한 제3자에게 있지 않다는 말이다.
환경공단이 과거에 보여온 행태에 비춰서도 업체의 이익보호보다 국민의 알권리나 플라스틱 오염에 대한 해결의지, 정보공개의무 준수 의지가 있는지 의구심이 드는 만큼 이데일리는 개별 기업의 정보제공 불가 의견 입증 자료 제출과 함께 정보공개를 재요구했다. 환경공단은 과거 2015년 이후 4년간 적발되기 전까지 재활용업체10곳의 EPR 분담금 86억원 부당수급을 눈감아주고 허위 조사서를 써주기도 했다. 환경공단은 종합청렴도 평가에서 매년 4~5등급으로 최하위등급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직무와 관련해 개인 직원이 물품 구매나 용역 계약, 공사 계약 관리·감독을 하는 과정에서 금품·향응을 받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어서다.
|
정보 제공을 거부한 기업은 거부사유로 “해당 정보는 기업의 영업상 비밀에 해당돼, 외부에 공개될 경우 기업의 정당한 이익을 해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정보”라고 밝혔다.
정보제공을 거부한 상위 기업으로 추정되는 곳은 △농심 △오뚜기 △제주특별자치도개발공사(삼다수) △롯데제과 △오뚜기 △코카콜라코리아 △빙그레 △매일유업 등으로 추정된다.
그린피스가 3년째 진행 중인 시민참여 방식으로 플라스틱 사용량을 조사한 결과를 담은 ‘2022년 내가 쓴 플라스틱 추적기’에 따르면 시민들이 쓰고 버린 플라스틱 쓰레기는 롯데칠성음료가 4.3%로 가장 많았고, 이어 농심 2.9%, 제주특별자치도개발공사 2.8%, 동원F&B 2.3%, 롯데제과 2.2%, CJ제일제당1.8%, 오뚜기 1.8%, 코카콜라 1.7%, 빙그레 1.5%, 매일유업 1.4% 순이다. 이번 조사는 지난 8월22일부터 8월28일까지 7일 동안 3506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것이다. 이 기간 시민들이 사용한 일회용 플라스틱 중 식품 포장재가 10만6316개(73.2%)로 가장 많았다.
출고량 정보 공개가 기업의 이익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와 달리 향후 기업들에 대한 정보공개 요구는 더욱 강화될 것이 자명하다. 이같은 비밀주의가 오히려 기업들의 환경에 대한 낮은 인식을 드러내면서 기업 이미지 악화에 기여할 가능성을 고려할 필요가 더 커진단 이야기이다.
글로벌 최대 순환경제 비영리단체인 엘런 맥아더 재단에 따르면 내년 1월부터 재단의 글로벌 공약 프레임워크를 기반으로 CDP(탄소정보공개프로젝트, Carbon Disclosure Project)의 환경정보에 플라스틱이 추가된다. 이에 따라 향후 수 천개의 기업들이 플라스틱 정보를 공개해야 할 것으로 전망했다. CDP는 엘렌 맥아더 재단의 플라스틱 보고 프레임워크에 기반해 △불필요한 플라스틱 품목 제거 △100% 재사용, 재활용, 퇴비 가능한 플라스틱 혁신 △순환경제 등 세 가지 조치에 초점을 맞춘다. 기업들은 플라스틱 판매 총량, 재활용·재생가능한 내용물 비중 등 수치화된 데이터를 입력해야 한다.
CDP는 약 90개국에서 글로벌 기후변화 대응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영국의 국제기구로 전 세계 1만8700개 기업의 환경경영정보를 글로벌 금융기관 등 800여 투자자에게 제공하고 있다. 미국 백악관은 미 연방정부와 거래하는 계약자에게 CDP를 통해 환경 데이터를 공개하고 과학기반 탈탄소 목표를 설정하게 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