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품은 어느 시대에나 금융시장의 한 모습이다. 시대는 다르지만 수많은 투자자들이 이 거품의 덫에 걸려 더 높은 가격에 팔 수 있으리라는 희망으로 고점에 매수해 결국, 투기적 광기가 결코 영원히 지속될 수 없다는 뼈저린 교훈을 배워야 했다.
투기적 광기에서 비롯되는 거품과 그에 뒤따른 금융위기에 관한 역사를 다룬 고전(古典) 최신판이 국내 처음으로 번역돼 나왔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새뮤엘슨 MIT교수가 "이 책을 읽고, 또 읽지 않는다면 5년 안에 후회의 순간을 맞을지 모른다"고 평한 바로 그 책이다.
새책 `광기, 패닉, 붕괴: 금융위기의 역사`(사진)는 17세기 화폐 변조시대와 네덜란드에서 벌어진 튤립 광기부터 2001년 아르헨티나 페소화 위기까지, 지난 400년간 전세계적으로 발생한 수십차례의 거품을 분석했다.
이 책이 다루는 주제는 금융위기를 야기하는 광기와 패닉, 붕괴의 진행과정과 궁극적 대여자(貸與者, the lender of last resort)의 역할 및 그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저자인 킨들버거는 광기가 나타나는 과정을 상세히 설명한다. 새로운 혁신이나 발명과 같은 변위요인(變位要因, displacement)이 경제전망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오면 엄청난 이익을 가져다줄 기회가 생겨난다.
이같은 투기붐은 계속 이어지다가 보다 영리하거나 운이 좋은 친구가 시장에서 빠져 나간다. 가격 상승세는 멈추고, 점점 더 많은 투자자들이 이제는 팔 때라고 결정한다. 패닉이 시작된다. 투자자들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사건이 터지고 투자자들은 지금까지 투자 결정을 부추겼던 광기에서 깨어난다.
패닉은 더욱 강화돼 붕괴로 이어진다. 투자자들은 대출상환 요구에 시달리고, 결국 가격은 불문하고 팔아 치우기에 급급해진다. 붕괴는 더욱 가속화 한다. 마침대 궁극적 대여자의 개입으로 패닉이 멈출 때까지 금융위기는 경제전반에 가공할 충격을 미친다.
저자는 시장이 때로 비합리적일 수 있으며, 언제나 스스로 치유하지는 못하므로 궁극적 대여자가 반드시 개입해야 하는 시기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궁극적 대여자의 개입은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를 야기한다.
이에 "금융위기가 닥치더라도 궁극적 대여자가 개입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대중들이 무모한 투기에 나서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킨들버거는 강조한다. 아울러 어느 한 가지 논리에만 집착하는 교조주의적 접근방식은 단지 잘못된 것일 뿐만 아니라 매우 위험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 책이 전하는 메시지는 과거에 일어난 금융위기로부터 진정으로 배우고 미래에 발생할 금융위기를 진지하게 대비하지 않는 한 거품은 다시 발생한다는 것. 로버트 솔로 교수는 서문에서 "광기와 패닉, 붕괴가 늘어나면 우리 모두가 곤경에 빠지겠지만, 적어도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예방접종을 맞은 효과를 얻을 것이다"고 단언한다.
생전에 30여권의 저서를 냈을 정도로 왕성한 저술활동을 전개한 킨들버거의 대표작인 저작으로는 `광기, 패닉, 붕괴`외에도 `국제경제학` `대공황의 세계` `서유럽 금융사` `경제 강대국 흥망사` 등이 있다.
이 책의 초판은 1978년에 나왔고, 이번에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번역 출간되는 로버트 알리버 공저판은 2005년에 나온 제5판이다. 이 책은 개정판이 거듭될 때마다 새로운 금융위기가 추가됐다.
1989년에 출간된 제2판에는 다우존스 평균주가가 하루에 20%이상 폭락했던 1987년 10월17일 `검은 월요일`의 세계 금융시장 붕괴위기가 서술됐다. 1996년 출간된 제3판에는 1990년부터 붕괴가 시작된 일본의 거품경제와 1994년의 멕시코 경제위기가 나왔고, 2000년 출간된 제4판에는 1997~98년의 아시아 경제위기와 러시아 금융대란 등이 새로 추가됐다.
이번에 새롭게 펴낸 제5판에 추가된 내용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20세기의 마지막 15년 사이 발생한 세 차례의 거품과 붕괴에는 체계적인 상호 관련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찰스 P. 킨들버거·로버트 Z. 알리버 지음. 김홍식 옮김. 1만9800원>